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일러스트 I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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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이 이긴다. 적어도 마인 부우를 상대할 때의 손오공이라면 확실히 그렇다. 원펀맨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손오공처럼 태양계를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다음 문장 (1)은 참으로 보인다:

(1) 손오공은 원펀맨을 이긴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나는 (1)을 통해 정확히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는 “강호동과 서장훈이 싸우면 강호동이 이긴다.”라는 주장과는 다른 차원의 주장이다. 앞의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검증하기 위해서, 우리는 강호동과 서장훈을 찾아가 실제로 싸움을 시켜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1)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검증하기 위해, 손오공과 원펀맨을 찾아가 전투를 권유해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손오공은 다른 행성이 아닌, 지구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누구도 지구 어딘가에서 강호동이나 서장훈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손오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 손오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면 손오공이 존재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1)이 참이 될 수 있을까? 여기에서 혹자는, 손오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다음과 같이 의문을 표할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토리야마 아키라가 손오공이라는 캐릭터를 창조했다.”와 같은 참인 주장을 하지 않는가? 하지만 어떤 것을 창조했다는 것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 아닌가? 내가 의자를 만들었는데, 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렇다면 토리야마에 의해 창조된 손오공도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만화에서 나타나는 사실들이 참이라는 직관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손오공이 지구에 산다.”라고 말할 때, 우리가 실제로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드래곤볼>이라는 만화 속 세계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왜 누구도 우리 지구에서 손오공을 찾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것 같다. 즉 우리가 “손오공이 지구에 산다.”라는 주장을 할 때는, 엄밀히 말해 실제로는 다음 문장이 표현하는 내용을 주장하는 것이다:

(2)<드래곤볼>에 따르면, 손오공은 지구에 산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을 취하더라도, 여전히 (1)이 왜 참으로 보이는지 설명하는 데에는 문제가 남는다. (1)의 문장 앞에 “<드래곤볼>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붙인다고 하더라도, 원펀맨은 <드래곤볼>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그 문장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이 참이라고 주장할 때, 우리는 도대체 정확하게 무슨 내용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명민한 여러분이라면 지금까지의 글을 읽고, 이 문제에 대한 본인 나름의 논리적인 해결책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일견 아무 문제 없어 보였던 진술 (1)의 본성에 대해 큰 의문을 가지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하는 여러분의 그 행위가, 바로 철학함 외에 다름 아니다. 또한 여러분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해결책을 생각해 보고 있든지 간에, 장담컨대, 그러한 입장을 이미 굉장히 논리적으로 깊게 발전시킨 철학자가 있으며, 또 그러한 입장이 꼭 해결해야만 하는 반론들도 발전되어 있을 것이다. (픽셔널 캐릭터의 본성에 대한 이해는 지난 3~40년간 굉장히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철학적 주제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쟁에 참여해, 여러분이 본인의 논증을 더욱 치밀하고 깊게 발전시킨다면, 그것이 바로 학문으로서의 (분석)철학이 되는 것이다. 

철학적 주제, 개념, 논증들을 분석할 수 있을 만큼 분석하고, 논리적이고 정교한 논증을 구성하는 철학적인 방법론은. 앞서 내가 소개한 주제 외에도 다양한 다른 주제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 고전적인 주제인 “신이 있다면 고통이 왜 존재하는가?”, “죽음이 정말로 우리에게 나쁜 것인가?”부터, “낙태, 동물을 먹는 것, 세금을 내는 것들이 정말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가?”등과 같은 우리의 삶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주제들, 그리고 심지어, “우리는 비속어를 통해 정확히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가?”, “썸을 탄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여러분이 더욱 흥미 있어 할 만한 주제들도 역시, 이러한 철학적 방법론을 적용함에 따라, 모두 철학적인 탐구의 주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철학자들은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누구보다 치밀한 논증들과 그에 대한 반박들을 계속해서 발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흥미로운 주제들에 대한, 논리적으로 정교하고 치밀하며 치열한 논쟁들에 여러분도 참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강의 앞광고를 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겠다: 나의 <Analytic Philosophy> 강의를 열심히 듣는다면,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엄밀하고 정교하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정규 교수 철학과
이정규 교수 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