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의 위험 앞에 놓여 있는 택배 기사
과로의 위험 앞에 놓여 있는 택배 기사
  • 이은진 기자
  • 승인 2020.11.09 17:23
  • 호수 16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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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I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올해만 10명의 과로사 피해자 발생

택배기사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이 오길

“우리 아들이 마지막 희생이길 바란다.” 지난달 14일,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과로사한 택배기사 고(故) 김원종 씨의 아버지가 슬피 외친 말이다. 올해에만 벌써 10명의 택배기사가 세상을 떠났다. 택배기사들에게는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들은 왜 이런 대우를 받고 있는 걸까.

점점 성장해가고 있는 택배 업계 하지만 …
한국의 택배 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2001년 6000억 원대에 불과했던 시장 규모가 지난해 6조 3300억 원으로 크게 성장했다. 숙명여대 경영학부 서용구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며 물류 업계가 더욱 성장했다”고 전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회장 최원혁)에 따르면 지난해 1월~6월 누적 국내 택배물동량은 13억 4200만 개였으나 올해에는 전년 대비 19.8% 증가하며 16억 770만 개로 급증했다. 

반면 택배기사의 삶은 고달파지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택배 업체 간 택배 단가 인하 경쟁으로 2000년에 3500원이었던 상자당 평균 택배 단가는 매년 꾸준히 낮아져 지난해에는 2269원으로 책정됐다. 그에 따라 택배기사의 수입도 줄어들며, 이들은 삶의 질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택배기사가 과로의 위험 앞에 쉽게 놓여 있는 이유
최근에는 택배기사가 직영 택배 업체와 직접 계약하는 경우가 줄어들며 업체와 택배기사 사이에 대리점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택배기사는 택배 업체와 직접 고용계약을 맺고 고정된 월급을 지급받았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전환되며 택배기사는 근로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 신분으로 업체와 계약을 맺게 됐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택배기사는 배송한 상품의 개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하지만 택배 단가가 점차 인하되면서 택배기사와 업체 사이에서 택배 수수료 금액에 대해 협상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이에 택배기사는 업체가 정한 수수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게다가 현재 대부분의 택배기사는 물량이 아닌 구역을 기준으로 대리점 사업자와 계약을 맺는다. 특정 구역을 맡으면 계약에 따라 그 구역에 할당된 물량을 모두 분류하고 배달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택배기사는 과도한 물량 요구를 받더라도 이를 스스로 조절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과로의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장시간 노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분류작업도 과로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받고 있다. 택배기사에게 적용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는 택배기사의 업무 범위에 대한 설명이 따로 규정돼있지 않다. 이러한 탓에 노사 간에 의견 차가 발생하고 있다. 노무법인 참터(대표 고경섭) 유성규 노무사는 “택배 업체 측은 택배기사에게 지급하는 수수료가 분류 작업비를 포함한 금액이라고 주장하나, 노측은 택배기사의 업무에는 분류작업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대응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지난 9월 10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택배기사들은 노동 시간의 평균 43%를 분류 작업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배기사는 노동 시간 규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 사업자는 주 52시간 상한과 같은 노동시간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택배기사들은 주 평균 71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택배기사들에게 가해지는 불합리한 처우
택배기사는 산재가 일어나더라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산재보험료의 전액을 사업주가 부담하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택배기사는 이를 대리점주와 각자 절반씩 나눠 부담해야 한다. 택배기사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본인의 의사에 따라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을 할 수 있는데, 택배 업계에선 당사자의 의사와 달리 대리점 측의 요구로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위원장 김태완) 김세규 교육선진국장은 “택배 기사는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 작성을 원치 않더라도 이를 거부할 경우 계약을 해지당할 수 있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산재보험 적용 제외와 같은 제도를 택배 업체가 악용할 여지가 많음을 지적했다.

한편 한 명의 택배기사는 상자 하나를 배달할 때마다 약 700원의 수입을 얻으며, 이들이 하루에 배송하는 물건은 300~400개에 달한다. 김 국장은 “각종 세금과 차량 유지비, 대리점 수수료 등을 납부하면 사실상 남는 돈이 많지 않다”며 택배기사들의 어려움을 전했다.
 

연이은 과로사에 관해 언급되는 해결책들
택배기사들의 잇따른 과로사를 두고 노동계에서는 △고용 형태 개선 △택배기사의 업무 범위 조정 △택배 단가 조정 등 구조적인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택배기사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 택배 단가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서 교수는 “택배 단가를 올려야 한다”며 “올린 비용은 사용자 또는 소비자가 부담하게 하거나 물품의 무게에 따라 택배 단가를 차별화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실제로 택배기사들에게 수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한편 택배기사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고용 형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일과 건강(대표 양길승) 한인임 사무처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면 주당 최대 52시간만 일할 수 있기에 택배기사들이 과로사로부터 안전할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택배기사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다면 산재보험의 의무가입 대상이 된다”며 노동 시간과 산재보험 문제를 고려했을 때 택배기사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택배기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 노무사는 “법에 택배기사의 업무 범위가 명시되지 않은 상태”라며 “명확한 업무 범위를 법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잇따른 과로 사고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대처
지난달 2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와 기업은 노동자의 건강권 및 생명권 위협의 문제가 지속되지 않도록 시급히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며 연속되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다양한 방안 마련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기업 측에서도 연이은 과로사 사태에 대한 공식 사과문과 대처 방안을 발표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택배 △CJ대한통운 등의 택배 업체 모두 산재보험과 택배기사 건강검진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으며, 분류 작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류 인력을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 노무사는 “기업 측에서 사과하고 대처 방안을 발표한 것은 긍정적이나, 이를 계약서에 반영하고 규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임시방편에 그치지 않는, 택배기사들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제공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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