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N052: 난춘

 

 

어느 새 붙어서 자면 짜증이 솟구치는 날이 되었다. 맨 다리끼리 맞붙어 있으면 이제 그 감촉에 질색하며 깨는 아침이 잦아졌다는 뜻이었다. 같이 잠을 자는 날이면 늘 내가 손해였다. 이마 바로 위에 붙어 있는 창에서는 한 낮의 햇빛이 쏟아졌다. 미련하게 어젯밤 창문을 꼭 잠그고 자는 바람에 방 안이 후끈했다. 내 다리 위에 올려 둔 햇빛에 그을린 까만 다리를 치우고 일어서서 창문을 열었다. 그래도 아직은 봄이랍시고 바람이 살짝 불어와 커튼과 앞머리를 흔들었다. 시계는 정오를 조금 넘어 있었다. 창 밖에 보이는 거리에는 아직 사람이 없었다. 너무 구석진 곳에 틀어박혀 사는 느낌이 싫어 번화가 근처로 구했더니 저녁 때만 되면 사람이고 자동차고 전부 시끄러웠다. 이 집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나 말이 많고 자동차가 이렇게나 소음과 매연을 뿜어대는 기계라는 걸 새삼 깨닫고 있었다. 공기 중에 얼마나 많은 매연과 사람들의 숨이 섞여 있을 지 생각하다보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지구의 해수면 같은 게 납득이 됐다. 매일 저녁 편두통을 앓는 나를 미치게 하는 소음과 매연이 그냥 사라질리는 없으니까. 몸에 안 좋은 건 귀신 같이 알아본다고, 얼마전 내려간 할머니 집에서 그런 말 같잖은 잔소리를 들었다. 넌 꼭 너한테 안 좋은 것만 골라서 하더라? 머리를 탈색하고 나서 머리카락이 자꾸 끊어진다는 소리를 듣고 엄마는 날 타박할 틈새를 놓치질 않았다. 엄마는 꼭 내 성질을 돋구는 말을 했다. 내가 언제 또 나한테 안 좋은 것만 골라 했어? 살다 보니까 다 그렇게 되는 거지! 엄마는 말 한 번 잘 꺼냈다는 표정이었다. 너 집도 꼭 큰 거리 앞에 있는 걸로, 매연 다 마시게 그렇게 구했지? 너 담배도 피지? 술도 말은 안 하지만 너 거의 맨날 마시지? 그리고 뭐야, , 승이 만나지.

 

그렇게 꼭 싸움을 시작해야 엄마는 직성이 풀렸다. 그런데 엄마 말은 또 틀린 게 없었다. 새로 바꿔 피기 시작한 담배의 끝 맛은 화한 박하향이었다. 어젯밤 승이와 마시다가 그대로 팽겨쳐 두고 잔 술병들은 여전히 탁자 위에 굴러 다니고 있었다. 승이는 배개를 꼭 끌어안은 채로 자고 있었는데 그 꼴이 좀 우스웠다. 턱선에 맞춰 기른 머리를 하나로 틀어 올려 묶고 있는 승이는 더운 지 시끄러운 지 인상을 찡그리고 자고 있었다. 내 몸에 안 좋긴 하지. 나는 엄지 발가락으로 승이의 팔뚝을 찔렀다.

 

"? 차가워."

 

창문 좀 닫아. 칭얼 거리는 말투로 승이는 배개로 얼굴을 더 파묻었다. 키는 백팔십이 넘는 주제에 이렇게까지 애처럼 구는 게 가끔은 귀엽고 가끔은 짜증이 났다. 지금은 짜증이 더 났다. 아직도 방 안에는 술 냄새가 떠다니고 있었다.

 

"일어나. 지금 열두시 넘었어."

"싫어. 나 알바 가려면 한참 남았는데."

"너 알바 여섯 시 잖아."

대답이 없었다.

"밥 안 먹냐?"

"나 잘거야. 너 뭐 시켜 먹든가. 나 쿠폰 있어. 내 폰으로 해."

 

승이는 화면 유리가 다 깨져서 너덜너덜해진 핸드폰을 썼다. 이런 거엔 케이스도 아깝다고 종잇장만큼 얇고 작은 핸드폰을 그냥 들고 다녔다. 아무데나 막 던져 놓고 제대로 들여다 보는 일도 없었다. 알바를 하다가 그날 손님이나 사장이 좆같을 때, 나한테 문자로 욕하는 용도로만 썼다. 소셜 미디어에 보정 열심히 한 사진으로 피드를 채워둘 것 처럼 생겨서는 그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도 몰랐다. 오히려 사진 한 장 찍을 때에도 유난스러운 건 내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국 우리 둘 다 귀찮은 게 먼저라서 같이 어딜 놀러가도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건지기가 어려웠다. 승이의 핸드폰은 승이의 손바닥에 올려 놓고 보면 너무나 작았다. 손가락을 쫙 벌리면 하늘도 가려질 것 같이 커다란 손이었다. 그 손으로 가끔 내 손을 꽈악 잡거나 나를 끌어 당겨 안으면 사랑이라는 거대한 세상의 상술에 속아 넘어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도 승이도 이상하게 낭만적인 구석이 별로 없었다.

 

", 이거 유효 기간 지났잖아! 뒤질래 왜 이제 말해?"

"그냥 시켜. 나 돈 많아."

 

돈이 많기는 쥐뿔이. 그래도 치킨은 승이 핸드폰으로 주문했다. 웬 일인지 잔고에 찍혀 있는 0의 갯수가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편의점에서 수입 맥주 네 캔을 사고 나면 안주 선택의 폭이 여지 없이 작아지던 평소의 승이와는 다른 액수였다. 돈이 없으면 술을 좀 줄여. 이렇게 말하고 나서 나도 사과했다. 미안, 말이 잘못 나왔다. 그치? 승이가 코 끝을 찡긋했다. 돈이 없어도 술은 마셔야지. 그리고 돈이 없어도 술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 실연을 할 것 같으면 귀신같이 메세지를 보냈다. 헤어졌어? 그러면 그 다음은 굳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됐다. 집 앞이던, 평소 잘 다니던 상수 부근이던 그저 부르는 대로 나가면 그날 술값은 해결이었다. 헤어질 것 같은 친구가 없으면 전시를 한 사람은 없나 찾았다. 전시가 끝날 무렵이면 어디서든 술자리가 열리기 마련이니까. 그것도 아니면 한 끼, 두 끼를 굶고 승이가 알바 하는 술집에 놀러갔다. 안주 한 개는 사장이 주는 서비스, 우리는 소주만 마셔도 되니까.

 

당연히 엄마는 승이를 싫어했다. 엄마가 예고도 없이 집에 들이 닥친 날 우리 집에 승이만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옷가지들은 다 갖춰 입고 있었다. 엄마 말을 빌리자면 거지같이 입고 있었다. 아마 매일같이 입고 다니는 까만 락 밴드 로고가 박힌 티셔츠에 반 바지를 입고 있었을 것이다. 안 봐도 어떤 꼴로 있었을 지 알만 했다. 다행인 점은 그 날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있었단 사실이었다. 평소 같이 풀어헤치고 있었다면 엄마는 승이가 무단침입한 줄 알고 경찰을 부르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승이는 꼴에 독서를 즐겨 했기 때문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을 읽고 있었다. 나에게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그 종이의 질감과 표지가 틀림없이 민음사의 그것이라고 얘기했다. 내용도 기억 안나는데 뭐하러 읽니?

 

"그냥 시간 떼우느라."

 

우리 집에서 굴러다니는 민음사 책이라곤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이 전부이기 때문에 아마도 승이는 그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있었을 것이다. 승이는 차고 넘치는 시간들을 버거워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미룰 때까지 미룬 군대를 다녀온 후에도 승이는 대학원에 갈 돈을 못 모았다. 덜렁 가지고 있는 카메라 하나로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도, 서울에 집 하나 구하고 매일 밤 술을 먹고 나와 연애를 하고 돈 좀 부치고 나니까 늘 모이는 돈이 없었다. 나는 대출을 받으라고, 장학금도 있고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하니까 금방 갚을 수 있지 않냐고 말했지만 승이의 반응은 늘 시원찮았다. 가려면 갈 수 있을텐데, 그런 태도로 일관하는 게 화가 났다. 그래도 내가 보태줄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승이 보다 내 코가 석 자였기 때문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우리 미래의 주변부만 빙빙 겉돌았다. 우리는 먼 미래를 계획한 일이 없었다. 서로의 삶에서 떨어져 나갈 계획도 없었지만 함께 일궈 나가는 삶을 계획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차고 넘치는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하면 때울 수 있을 지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다. 한가한 일요일 낮에 승현이네 카페에 가자. 다음주 너 휴무날에 양재천에 가서 개들 구경을 하자. 그 새끼 여친이랑 헤어졌다더라, 내일 술 먹자는데 너도 와라. 대강 그런 얘기들을 주로 했다. 나와 승이는 어쩌면 한 없이 시시한 서로의 청춘을 연애라는 말로 때워주고 있는 지도 몰랐다. 누군가 스물 일곱 살 때 무슨 일을 했냐고 묻는다면 서로에게 그럴 싸한 답변이 되어주자고 암묵적으로 동의한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승이의 팔 한 쪽에는 꽤나 커다란 호랑이가 한 마리 살고 있다. 승이는 호돌이라고 불렀고 나는 생김새에 걸맞게 '두호씨'라고 불렀다. 두호씨는 승이가 제대 기념으로 큰 맘 먹고 새긴 타투로 아주 충동적인 결정의 산물이었다. 사실 호랑이 타투를 하고 싶다고 먼저 말을 꺼낸 건 나였는데 승이가 나를 배신해 버렸다. 그 때만 해도 나는 꽤 보수적인 사람이었고 한 번 몸에 새기면 돌이킬 수 없는 타투에 대해 굉장히 신중한 편이었다. 호랑이를 몸에 새긴다면 끝까지 그 친구를 사랑해 줄 자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엄마가 발견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엄마는 내 머리가 백금발이라는 걸 알게 된 날 '양아치 같다'는 말을 수 백번 반복했고, 나는 일시적으로 엄마와 천륜을 저버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에게 다시 전화 하기 까진 한 달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충동적인 결정에 엄마는 늘 브레이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글을 쓰러 예대를 가겠다는 내 말에 엄마는 몸져 누운 사람이었다. 지금이 조선시대니? 글로 사람이 성공하게? 나는 김은숙이 드라마 한 회당 얼마를 버는 지 말해줬고 겨우 가고 싶은 과를 진학할 수 있었다. 내가 죽었다가 깨어나도 '내 안에 너 있다' 같은 대사를 쓸 수 없다는 건 아직까지 엄마에게 비밀이었다. 오히려 나와 승이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이었다. 가끔 나는 하루에도 열 시간 씩 자는 승이를 보며 우리가 대체 어떤 날들을 보내고 있는 지 생각해 보곤 했다. 뭘 하더라? 우리는 날이 좋으면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강아지들을 구경했다. 그것도 아니면 카페에 앉아서 서로 노트북 화면을 쳐다 보며 말 없이 오래 앉아 있기도 했다. 나는 주로 앞으로도 뒤로도 갈 생각이 없이 꽉 막힌 글자들을 노려 보았다. 승이는 뭘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휙휙 마우스를 돌려 무언가를 클릭하고 심각한 표정이다가 이내 나를 툭툭 치고 별 우스꽝스러운 것들을 보여주고는 했다.

 

승이를 십 분도 채 만나지 않은 엄마는 내게 숨도 안 돌리고 전화를 걸었다. 너 남자친구니? 나는 좀 진정하시라고 대답했다. 내 긍정도 부정도 않는 대답에 엄마는 절대 진정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니 남자친구냐고? 맞아, 승이는 5년 째 만나는 내 남자친구였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중간에 헤어졌던 몇 개월씩을 빼고 34개월 정도를 만난 내 애인이었다. 나도 승이도 성실하지 않은 사람인데 서로에게는 퍽이나 진심이었다. 승이는 내 생일과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꼬박꼬박 챙겼고 나는 승이가 군대를 제대할 때까지 얌전히 학교를 졸업하고 기다렸으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짚신 같은 존재였다.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말의 살아 있는 증거 정도 되는 셈이다. 나는 사람에게 무심했고 승이는 세상에 무심했다. 엄마는 승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을 제대한 후에도 변변찮은 직업이 없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거기에다가 승이는 장발이었고 오른 쪽 팔에 두호씨도 키우고 있었다. 키는 큰데 말랐고, 눈만 커다래서 사람이 사나워 보였다. 대체 승이는 뭘 한다니? 여즉 일도 안하고 니 집에서 눌러 앉겠다니? 글쎄, 승이가 한 번 왔다 하면 좀처럼 제 집에 가질 않는 건 맞았지만 어쩔 때는 일주일 씩 보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리고 승이 성격에 누구 집에 눌러 앉는다는 건 말이 안됐다. 아무리 내 집이라고 해도, 승이는 올 때마다 데면하게 구는 재주가 있었다.

 

"승아, 일어나."

 

치킨은 오겠다고 약속한 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그 때까지도 승이는 자고 있었고 어제 나와 술 마신 일 빼고는 별 다른 일정이 없는 걸 아는 나는 어이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피곤하냐? 알바도 일주일에 두 번 밖에 안 나가면서. 나는 매일 나가는데.

 

"너는 좋은 데서 앉아서 일하잖아."

 

나는 시끄럽고 사람 많고 술 많은 데서 일하고. 승이는 좀 억울해 보였다. 포차에서는 죽어도 알바를 하기 싫다고 버팅긴 건 그만큼 우리가 포차에서 부린 추태가 많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술을 좋아하면서도 그곳의 온상을 피부로 알고 있는 우리는 술집 알바만은 하지 말자고 말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는 없었다. 내가 홍대 부근의 사무실에서 시덥지 않은 유튜브 대본을 휘갈길 때에, 승이는 늘어지게 자다가 집 근처의 포차로 출근 했다. 그나마 단골이던 승이를 받아준 포차의 사장님은 우리의 사정을 잘 아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실례를 무릅쓰고 승이를 본다는 핑계를 대고 매일 같이 놀러 가도 꼬박꼬박 서비스로 계란말이를 얹어주는 분이었다.

 

"근데 어쩐 일로 거지가 아니야? 월급은 다음주에나 받으면서."

", 카메라 팔았어. 좀 손해 보더라도 팔려고 했는데, 올린 날 바로 연락오더라."

"카메라를 팔았다고?"

 

치킨을 펼쳐 놓는 승이의 표정은 대수롭지가 않았다. 승이는 대학교 2학년 때 영화관 알바로 번 돈을 털어서 카메라를 샀다. 두고 두고 쓸 것이기 때문에 당시에 제일 최신형이고 제일 비싼 모델로 골라서 샀다. 재능이 없으니까 장비 빨이라도 받아야지. 쓸데 없는 말이었다. 왜 그런 말을 덧붙이여서 사람을 화나게 해? 나는 승이가 찍는 게 사진이어도 좋고 영상이어도 좋았다. 승이는 가끔 내가 쓴 글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나는 언제나 승이가 찍은 것들을 좋아했다. 그래도 승이는 언제나 부끄러워 했다.

 

"미친 거 아니니?"

"뭐가 미쳐? 팔 십 만원이야. 대박이지."

"대박은 뭐가 대박이야. 그걸 팔 십 밖에 안주고 팔고 넌 웃음이 나?"

 

팔십이면 중고가로 최고가인데. 내가 그런 것도 안 찾아보고 팔았겠냐? 내 피, , 눈물이 담긴 카메라인데. 승이가 우물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런 걸 고작 팔십 주고 파냐고. 이제 뭘로 찍을건데? 아니 대학원 가면 어떻게 찍을건데?"

"대학원 안가. 접었어, ."

 

또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다. 승이는 다리 안 먹을거면 자기가 두 개 다 먹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승이의 카메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다리 두 개 먹을거면 헤어지자고 대답했다. 그렇게 먹을 걸로 싸워봤자 둘 다 입이 짧아서 한 마리를 다 못 먹었다. 승이는 키도 백팔십이 넘는데 왜 치킨을 반 마리도 못 먹을까. 술은 한 자리에서 세 병도 마시는데, 안주는 집어먹지도 않았다. 기를 쓰고 안주를 주워먹고 중간에 화장실을 수십 번도 더 가야 나는 승이가 마시는 걸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러고도 항상 승이 등에 매달려서 집에 돌아왔다. 남은 치킨은 승이 손에 들려서 보냈다. 나 엄마가 얼마전에 왔다가서 반찬 있어. 승이는 치킨 다섯 조각과 어제 먹다가 남은 소주 반 병을 싸서 돌아갔다. 집에 가서 혼자 소주 먹지마! 청승 맞아. 나 꼭 불러야 돼! 아니면 맥주로 마셔. 승이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승이는 카메라를 팔았다. 왜 카메라를 팔았는지 말해주지도 않았다. 나는 써야할 글들이 남아있었다. 자질구레한, 한 바닥에 이 만원 하는 글들이었다. 평소에 관심도 없던 주제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척, 생기 넘치는 척 써야 했다. 어쩌면 그냥 눈 딱 감고, '내 안에 너 있다'고 쓰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나름 그안에는 사랑도 있고 낭만도 있고 예술성 비슷한 것도 있으니까. 내 삶에는, 그리고 승이의 삶에도 그런 것들은 없었다. 차라리 나는 상위 일 프로들이 다니는 학교에 전학 온 신데렐라 주인공이고 싶었고 눈 한 번 질끈 감고 입 바른 소리를 해대면 돈 많은 사람들이 내게 턱턱 반해서 사랑이건 기회건 돈이건 주머니에 찔러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승이에게 미안하다고 문자가 왔다. 혼자 소주 마셨어. 미안. 그리고 귀엽게 치킨 다섯 조각이랑 소주 병을 찍어서 보냈다. 나름 정성스럽게 찍은 건지 구도가 꽤 심미성이 있었다. 나는 한 번은 봐주겠다고 말했다. 여전히 글을 쓰기 싫었고, 내일이면 출근을 해야 했다. 열어 놓은 창으로 반가운 산들 바람과 전혀 반갑지 않은 소음이 함께 밀려들어왔다. 바람 속에는 차들의 클락션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임이 뒤섞여 있었다. 그 불순물 같은 바람이 자꾸만 앞머리를 흔들어 얼굴이 간지러웠다. 나는 노트북을 덮고 창문을 닫았다. 얇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 바깥과 나는 다시 아무 관계가 없는 사이가 되었다. 세상이 나를 담고 있다고 말하기에 나는 너무 혼자였다. 승이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래서 혼자 소주를 마셔야 했을까? 이렇게 창만 닫아도 답답한데, 승이네 집에는 창문도 없었다. 그 곳에서 승이는 뭘 보고 있을까? 나는 늘 바라볼 곳을 몰랐다. 어디를 바라보아야 괜찮은 풍경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안에서 나와 승이가 함께일 수 있을까? 다음주 주말 저녁에 우리는 성북천을 걷기로 했다. 그럼 그 다음 주말에는? 다음 다음 주말은? 아니, 다음 해는? 그리고 그 다음 해는? 우리가 밀어 넘겨야 할 날들이 너무도 많았고 함께 때워야 할 청춘이 길었다.

 

문정연(철학 16)
문정연(철학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