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메타버스는 낙원이 맞다. 평택항 부두 월드맵에서 캐릭터가 300kg이 넘는 컨테이너 날개에 깔릴 일이 없다. 어쩌다 시스템 착오로 깔릴 일이 생겨도, 다시 캐릭터를 만들면 그만이다. 이에 따라 자신을 용서하지 않길 바라는 아버지의 눈물도 없다. 학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아버지가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현장에 함께 나와 일하다 사고를 당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속 삶의 기회는 무한하다. 서버 컴퓨터가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는 한 캐릭터를 무한히 재생성할 수 있는 탓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죽으면 끝이다. 가끔 죽음의 목소리가 남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너무 미미해 정치권에 가닿기 쉽지 않다. 수백 번의 시위와 고통의 단식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라는 모범 답안을 요구해도 결국 누더기가 되고 만다. 죽어야만 보였지만, 보이기만 해선 이후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메타버스 속 캐릭터들은 평등하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계급이 존재한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목숨을 잃은 하청 노동자와, 서울 반포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22살 의대생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뚜렷한 계급 격차를 드러낸다. 코난에 스스로를 대입하며 경찰 수사에 지장을 주는 대중을 차마 지켜보기 힘든 까닭이다. 
메타버스에는 언론’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뉴스의 가치를 재단하며 팔 일도, 캐릭터들이 소비할 일도 없다. 목숨을 잃은 두 대학생들로 울부짖는 두 아버지의 말들을 이리저리 저울추에 재볼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죽음의 무게가 다를 수 없다는 원리를 잘 실천하는 말 그대로의 유토피아다. 

이같은 메타버스라는 인류의 신대륙으로 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있다. 주된 연령대는 Z세대였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으로 메타버스가 확장되면서 연령층 또한 확대되는 추세다. 메타버스를 업무에 활용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업무에 가상현실이 도입된다면 직접 출근하지 않고 아바타로 미팅을 진행하면 된다니, 직장인들의 입장에서 말 그대로 네버랜드다. 
하지만 낙오자들은 언제나 생기기 마련이다.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걷기엔 네버랜드 항로는 너무 좁다. 본격적인 메타버스는 기존 IT 제품과 서비스 이상으로 훨씬 높은 벽이 될 텐데, 메타버스가 대세라면 더 늦기 전에 정부는 네버랜드 항로를 넓혀야 한다. 메타버스는 단순한 경험경제를 넘어, 실감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바라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기 때문이다. ‘안 하면 그만’인 메타버스가 아닐 수도 있다. 

메타버스로 향하는 항로를 넓혀도 입장권을 받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당연하게도 네버랜드로 들어가기 위해선 디지털 기기라는 입장권이 필요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가속화시킨 디지털 정보격차가 명백한 점을 미뤄볼 때, 입장권을 받지 못하는 계층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디지털 서비스는 필수재다. 당장 PC가 없어서 비대면 교육에 참여하지 못하는 디지털 취약 계층이 누리지 못하는 서비스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것이라 예상하는 건 기우일까. 

조금만 손보면 낙원은 있다. 하지만 낙원은 누구나 누리지 못한다. 

 

김지우 편집장wldn9705@skkuw.com
김지우 편집장
wldn9705@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