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시대를 역행하는 한국민족주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이대근 경제학부 교수

글로벌화 시대의 민족주의, 오히려 경제발전을 저해한다!
반미 - 친북의 민족주의냐, 반북 - 친미의 경제주의냐의 갈림길에 선 한국
북핵도, 경제발전도 민족주의 이전에 국제주의로 풀어야!


초기 진보적 부르주아 民族主義
민족주의가 역사발전을 추동하는 ‘進步的’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경우는 지금까지 두 번 있었다. 일찍이 서구에서 中世 봉건사회로부터 근대 자본주의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의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近代化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적 사명이 그 첫 번째이고, 근세에 들어 서구 제국주의적 침략을 받은 非서구 식민지 사회에서 그들의 민족해방운동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한 소위 ‘民解鬪’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적 사명이 그 두 번째라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서구 자본주의 경제는 현저한 생산력 발달을 가져온다. 한껏 늘어난 생산력 수준은 보다 넓은 市場을 필요로 하고, 이에 신흥 산업자본가(부르주아) 계급은 당시 封建 領主가 분할, 소유하고 있던 ‘莊園經濟’의 울타리를 과감히 허물고, 그것을 가능한 넓은 시장의 ‘國民經濟’로 통합코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내건 슬로건이 다름 아닌 民族主義(nationalism) 이데올로기였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처음 부르주아 계급에 의한 근대 사회로의 변혁 이념으로 나타난 것이었고, 그러한 면에서 그것은 분명 進步的 성격을 가졌다.
이러한 서구의 진보적 민족주의는 그러나 머지않아 非서구 약소 국가(지역)를 침략하는 대외팽창 이데올로기로 바뀌었다. 19세기 獨占化 단계에 들어선 서구 자본주의는 가일층 팽창하는 생산력을 위해 해외시장 개척의 길에 나섰다. 서구 민족주의는 곧 대외침략을 위한 제국주의, 식민지주의 이데올로기로 탈바꿈하였다.
다른 한편, 서구에 의한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非유럽 제국에서는 민족의 자주·자립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된다. 타민족의 침략,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이념은 곧 그들 자신의 民族主義일 수밖에 없었고, 식민지 시대 민족해방투쟁을 위한 이념적 기초로서의 피압박 민족의 민족주의, 이 역시 역사발전을 推動하는 또 하나의 進步的 성격임에 틀림없다.

전후 제3세계 民族主義
제2차 세계대전은 서구 列强간에 벌어진 제국주의 전쟁에 다름 아니었다. 다만 거기에 ‘獨­소戰’에서 보듯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간의 체제적 전쟁 성격과 ‘中­日戰’에서 보듯 민족해방전쟁 성격이 어느 정도 보태졌을 따름이었다.
제2차 대전은 서구의 대외침략적 민족주의(식민지주의)든, 피압박 약소민족의 해방을 위한 민족주의(민족자결주의)든 동시에 그것을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國際主義’ 이념을 들어 앉혔다. 전쟁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주의를 부정함과 동시에 또한 식민지 피지배 민족에게는 民族解放이란 값진 선물을 안겨다 주었다. 따라서 전후 많은 식민지 나라들이 독립을 가져온 것은 그들 스스로의 민족독립투쟁의 성과라기보다는 제2차 대전의 결과 타율적으로 주어진 것임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아무튼 이들 新生 제국은 어떤 역사발전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
자의든 타의든 소련(구) 사회주의권의 일원으로 편입되거나 中國, 베트남처럼 자주적 사회주의화의 길을 걸은 부류가 있고, 둘째는 국제주의 노선에 따른 親서방적 자본주의화의 길을 걸은 나라, 그리고 셋째는 스스로 민족주의 이념을 앞세운 독자의 길, 소위 非同盟 中立主義 노선을 걸은 진영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수적으로는 물론 셋째의 비동맹 중립주의 노선의 쪽이 단연코 많았다. 주로 아시아-아프리카에 자리잡은 그들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 ‘반둥회의’를 개최하고, ‘77그룹’을 결성하는 등 비동맹 중립화의 길로 나아갔다. 여기에는 당시 신생 제국을 주도한 인도, 파키스탄, 미얀마, 인도네시아, 유고슬라비아, 이집트 등 내로라 하는 나라들이 두루 포함되었다.
현 시점에서, 이들 세 가지 노선의 발전 경험을 돌이켜 볼 때 그나마 경제개발과 민주화에 성공한 케이스는 둘째의 親서방의 자본주의화의 길을 걸은 나라뿐이다. 첫째의 사회주의화 노선은 1989년 체제 자체의 붕괴로 귀결되고, 셋째의 제3세계 비동맹 노선 역시 그동안 경제개발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아직도 많은 국민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다만 親서방의 자본주의화의 노선만이 아시아 신흥공업경제(ANIEs)나 몇몇 ASEAN 나라에서 보듯이 급속한 경제개발에 성공함은 물론, 정치적 민주화도 그나마 달성한 셈이었다.

드세지는 한국민족주의 물결
수많은 제3세계 나라 가운데서, 한국은 국제주의 노선에 따라 경제개발에 성공한 대표적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한국은 OECD 등 국제기구에서 ‘東아시아의 奇蹟’이란 찬사를 받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은 왜 갈수록 민족주의 풍조가 드세지고 있는가. 그것은 현실의 첨예한 분단체제의 모순 때문이리라.
자기 나라 축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수백만의 젊은이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붉은 악마’의 물결을 이룬다든가, 아무리 억울한 죽음이라 하더라도 2명의 女中生 사망 사건으로 수많은 군중이 몇 달씩이나 거리에 나와 촛불시위를 벌인다든가, 또는 국가가 공식으로 결정한 이라크 派兵 문제를 놓고 몇몇 시민­종교단체가 국민의 대의기구인 國會 기능까지를 마비시키고자 한다든가 하는 일련의 사태는 아무래도 순수한 민족적 愛國衷情의 선을 넘어선 것이 아닐까. 거기에는 분명 어떤 정치적 목적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한국민족주의는 胎生的으로 ‘反日’ 민족주의일 수밖에 없었다. 같은 동양의 이웃 나라인 일본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하였다는 점에서 민족적 自尊의 훼손이 너무 컸기 때문일 것이지만, 이미 1965년 한­일간 국교 정상화 조치로 상호 舊怨을 씻고 협력을 다짐한 이후에도 한국의 反日 민족주의 감정은 조금도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일본 총리의 神社 참배나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 등은 제쳐두고라도, 한­일 축구전에 대한 국민적 熱氣를 통해서도 그것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 反日 민족주의는 최근 들어 反美 민족주의로 급속히 방향 선회를 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으로의 對北 정책기조 전환이 남북간의 민족 自意識을 고양시키면서 이것이 자연히 反美로 연결되는 과정으로 나타났다. 단적으로 ‘北核’이 개발되더라도 설마 그것이 같은 민족인 南韓을 겨냥할 리야, 비록 미국을 겨냥할 수는 있을지라도 하는 식으로까지 反美 민족주의 의식은 고양되고 있다.

民族이냐, 經濟냐의 갈림길
反日이든 反美든, 지금에 와서 그것이 민족주의라는 外皮를 걸치고 있는 한 결코 ‘進步’로 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앞서 본 동구 사회주의권의 末路나 제3세계 非동맹 中立主義 노선이 가져온 역사적 교훈이 그것을 분명히 말해준다. 어디 그 뿐인가. 核문제로 세계의 속을 썩이고 있는 오늘의 北韓 사회를 들여다보면 더더욱 분명해진다.
전 국민을 主體思想으로 무장시키고, ‘우리식 대로만 살자’라는 극단적 민족주의 이념으로 반세기 이상을 살아온 북한 사회가 지금 어떤 형편에 처해 있는가. 한마디로 ‘경제 파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는가. 북한경제가 얼마나 어려운가는 지난 90년대 경제성장률이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해마다 수많은 飢餓 難民(脫北者)이 이웃 나라로 흘러나오고 있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만하지 않는가.
여기서 우리는 그동안 국제주의 길을 열심히 걸은 남한과 철저한 민족주의 노선을 쫓은 북한이 결과적으로 어떤 경제적 차이를 가져왔는가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세계는 지금 世界化(글로벌라이제이션)의 波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나마 거기에 대항 세력이라면 프랑스, 독일 등을 앞세운 유럽연합(EU) 측의 地域化(리져널라이제이션) 정도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도 이번 이라크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화 전략 앞에 힘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 같은 도도히 흐르는 세계사의 물결을 거역하고 살아갈 나라는 없다. 여기에는 북한 역시 결코 예외적 존재가 아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한국 민족주의는 아직도 스스로 ‘진보적’ 이데올로기임을 자처하고 역사의 進運을 거역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에 젖어있다. 그들은 오늘의 北核문제를 비롯한 남북관계를 민족적 관점으로 풀고자 한다. 北核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확대되고 있는 이 마당에 남북간의 화해로 문제를 풀겠다니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또한 목전의 어려운 경제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反美-親北의 민족주의 목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경제는 반대로 더욱더 헤어나기 어려운 難局으로 빠져들게 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한국경제가 가지는 國際的 성격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는 지금 양립되기 어려운 두 가지 시대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反美-親北의 민족주의 노선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親美-反北의 경제주의 노선을 견지할 것인가 하는 갈림길이 그것이다. 단지 여기서 강조해두어야 할 것은 오늘과 같은 글로벌化 시대에 걸맞지 않는 민족주의 노선은 그것이 진보적이기는커녕 역사발전을 거역하는 ‘反動的’ 성격이라는 사실이다.

*이 글의 한자병기 표기방식은 필자의 요청으로 실은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