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수지 기자 (bungeeinme@naver.com)

 

폰트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기도

모바일 맞춤 폰트도 등장

닳아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을지로 공구 거리의 간판부터 매일같이 보는 스마트폰 화면의 글자까지. 폰트는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켜왔다. 10년 전에도 폰트는 기업이나 대학의 홍보 수단이었으며 대학생들에게 큰 관심을 끄는 예술이었다(본지 1486감성 입고, 개성 덧입은 폰트기사 참조). 10년이 지난 현재 폰트는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자리 잡고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우리 곁의 예술, 폰트

우리는 나 진지하다라는 말 대신 지금 궁서체야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세리프와 굵은 붓글씨 형태를 가진 궁서체는 사용자에게 진지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예전부터 폰트의 중요성을 무의식중에 인지해왔다. 한동훈 디자이너는 사람이 텍스트를 볼 때 느낄 수 있는 느낌은 글의 내용과 글이 입고 있는 옷이라 볼 수 있는 외피가 동시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폰트는 글자를 표현하는 수단을 넘어 강력한 힘을 지닌 하나의 예술로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폰트로 나를 표현할래요!

풍부해진 폰트 시장에서 사용자는 어떠한 방식으로 폰트를 사용할까? 소소하게 인터넷 블로그를 운영하는 강나현(경영 21) 학우는 게시글마다 폰트를 바꾼다. 블로그에 진지한 글을 작성할 때는 나눔 스퀘어처럼 깔끔한 폰트를, 비교적 가벼운 글에는 카페 24 당당해처럼 아기자기한 폰트를 사용한다. 강 학우는 “TPO에 따라 옷차림을 바꾸듯 폰트도 블로그의 TPO에 맞춰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MZ세대는 게시글을 작성하지 않더라도 스마트폰 화면에서 폰트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이주은(경영 21) 학우는 폰트를 바꾸며 친구와의 단조로운 대화도 새롭게 느껴져 기분 전환이 됐다배경화면과 카카오톡 테마를 변경하며 분위기에 맞춰 폰트를 변경한다고 전했다.

폰트는 MZ세대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명함이자 디지털 상품이 됐다. 짧은 텍스트와 영상을 선호하는 MZ세대에게 텍스트 표현 방식의 중요도는 더 높아졌다. 폰트는 짧아진 텍스트에 효과적으로 의미나 가치를 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MZ세대에게 호응을 받고 있다.

MZ세대는 폰트 사용자에 그치지 않고 폰트를 제작하기도 한다. 여성 아이돌 그룹 (여자)아이들의 팬 씨는 멤버 민니의 실제 글씨체를 폰트로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A 씨는 민니의 자작곡 'i'M THE TREND'에서 내 예쁜 글씨체 이젠 내 Font가 필요해라는 가사를 보고 민니의 글씨체를 본뜬 욘따라락체를 제작했다. 욘따라락체의 욘따다락은 민니의 본명인 니치 욘따라락에서 따왔다. A 씨는 민니의 글씨가 쓰인 모든 자료를 수집해 태블릿 PC로 손으로 따라 그린 뒤 다시 이미지화를 시키는 오랜 작업을 거쳐 욘따라락체를 배포했다. A 씨는 "많은 팬들이 욘따라락체를 공유해서 언젠간 민니도 내가 만든 폰트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민니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느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디자이너는 더 이상 폰트 제작은 디자이너의 전유물이 아니다디자인 전공을 하지 않는 일반인도 블로그나 개인 SNS를 통해 폰트를 제작 배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ㅋㅋㅋㅋㅋㅋ 사이좋게 더 붙어봐!

최근엔 스마트폰 이용이 늘면서 모바일을 통해 디지털 폰트를 바라보는 시간도 길어졌다. 이런 현상에 발맞춰 모바일 환경에 맞게 글자 모양을 다듬고 한글 자음이나 특수 부호만으로 이뤄지는 대화까지 디자인에 반영한 모바일 폰트가 주목받고 있다.

카카오는 초성이나 부호도 하나의 단어라는 생각에서 시작해 새로운 폰트를 만들고 있다. 사용자가 특수기호로 얼굴 표정을 만들 때 기존 글꼴에 비해 감정이 더 자연스럽고 뚜렷하게 드러나도록 간격이나 비례, 모양을 조정했다. ‘ㅋㅋㅋ와 같은 한글 자음은 초성만 나열하더라도 시각적으로 단어로 보일 수 있도록 글자의 크기를 키우고 자간을 좁혀 이전의 초성만 입력했을 때의 어색함을 개선했다. 특수 부호의 경우 웃는 표정을 표현하는 ‘:)’을 입력하면 괄호의 입꼬리를 기존 폰트보다 올려서 더 활짝 웃는 얼굴로 출력되게 했다. 한 디자이너는 모바일 맞춤 디지털 폰트는 모바일 환경에서 사용자에게 뭉개짐이나 헷갈림 없이 글자를 보여줘 정보 습득을 용이하게 해준다카카오에 이어 모바일 환경에 맞춘 폰트가 주를 이룰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설명했다.

 

꼬불꼬불해도 괜찮아, 휴머니스트체

지난해 세븐일레븐은 청산리전투 100주년을 맞이해 나라사랑캠페인 일환으로 기획된 김좌진 장군체 복원프로젝트를 통해 김좌진 장군체를 제작했다. 세븐일레븐은 독립운동의 의미와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금 알리는 차원에서 공식 홈페이지와 산돌구름에 김좌진 장군체를 게시하고 무료 배포했다. 김좌진 장군체처럼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모티브를 얻어 글자에 의미가 담은 휴머니스트체를 선호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폰트는 크게 지오메트릭(geometic)휴머니스트(humanist)로 나눌 수 있다. 지오메트릭체는 완벽한 대칭과 조형의 미를 갖춘 폰트인 반면 휴머니스트체는 손글씨처럼 자연스러움의 멋을 추구하는 폰트다. 과거에는 지오메트릭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지만 최근에는 가치와 의미, 정서가 담긴 휴머니스트체가 주목을 받고 있다. 기업과 지역의 이미지 개선 및 캠페인 활동에서도 휴머니스트체는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경상북도 칠곡 군청은 성인문해교육으로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의 손글씨를 폰트로 제작한 칠곡할매글꼴을 배포했다. 칠곡할매글꼴은 젊은 세대에게 배운 한글을 손글씨로 다시 되돌려준다는 취지로 제작됐다, 할머니들의 삶과 감성이 고스란히 담긴 폰트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 디자이너는 단어 자체에서도 드러나듯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휴머니스트체에 많은 이들이 매력을 느낀다휴머니스트체를 선호하는 현상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꾸준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한 디자이너는 다양한 라이센스 정책이 뒷받침되면서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의 등장과 폰트 관련 교육 기회가 마련돼 더욱 풍요로운 폰트 시장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세리프 = 로마자 활자의 글씨에서 획의 시작이나 끝부분에 있는 작은 돌출선.

모바일 환경에 맞춰 웃는 표정의 특수부호가 수정된 폰트. ⓒ 카카오
모바일 환경에 맞춰 웃는 표정의 특수부호가 수정된 폰트. ⓒ 카카오
칠곡할매글꼴 중 권안자체 폰트 적용 모습 캡쳐 화면.
칠곡할매글꼴 중 권안자체 폰트 적용 모습 캡쳐 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