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재원 기자 (magandsloth@skkuw.com)

한국 뮤지컬에 대한 '월간 기록', 『더뮤지컬』
언젠가 다시 읽어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기사를 위해

 

우리는 흔히 공연을 순간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매일 수많은 공연이 뜨고 진다. 찰나를 물들이는 별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순간의 기억을 소중히 다듬어 오랫동안 간직할 만한 추억으로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지난 20년간 한국 뮤지컬의 순간을 기록해온 '더뮤지컬'은 2021년 한 해의 인터미션을 거쳐, 새로운 2막을 시작한다. 이제는 기억을 넘어 하나의 역사로 자리 잡고 있는 더뮤지컬의 배경희 편집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래 패션지 기자를 꿈꿨다고 들었는데, 더뮤지컬에 입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교 때 문과생이었는데 명확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3학년이 됐을 때 관심 있는 회사를 다섯 개 골랐죠. 그중 하나가 ‘보그걸(VOGUEGIRL)’ 잡지였어요. 제가 학교에 다닐 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흥행했거든요. 패션지에 관심이 생겨 보그걸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싶은데 한번 만나서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요. 원래 어시스턴트는 공석이 생겨야 채용을 해요. 적극적으로 먼저 연락한 덕분에 졸업 전까지 2년 가까이 일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보그걸을 포함해 다섯 개의 패션지를 발행하는 두산매거진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4학년 때 두산매거진 공채를 봤는데 떨어졌죠. 다른 걸 찾아보다가 우연히 더뮤지컬 기자 모집 공고를 보게 돼 지원했습니다. 지원 과제 중에 가상 인터뷰가 있었는데 저는 직접 인터뷰를 했어요. 당시에 이주광 배우가 공개 오디션을 통해서 뮤지컬 ‘헤드윅’의 헤드윅 역으로 뽑혔거든요. 그래서 이 배우의 공연을 본 다음에 이메일을 보냈죠. 더뮤지컬 기자로 지원하고자 하는데 혹시 서면 인터뷰가 가능하겠냐고요. 답장을 받고 그걸로 인터뷰를 작성해 제출했는데 연락이 안 오는 거예요.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제 서류가 누락됐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면접을 보고 일주일 후에 바로 출근하게 됐습니다. 
 

2000년 발간을 시작한 이후,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 잡지로서 더뮤지컬의 의의는. 
질문처럼 유일한 뮤지컬 전문 매거진이라는 부분이죠. 하나밖에 없다는 점? 작년에 휴간할 때 특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더뮤지컬은 월간지인데 매달 나와야 하는 잡지가 휴간하면서, 그 달에 다뤄져야 하는 기사들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저희는 매달 100쪽 넘는 지면이 나오거든요. 이 정도 분량으로 뮤지컬이라는 한 장르에 대해 지면을 할애하고 책을 만든다는 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느꼈어요. 잡지에 실린 기사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일종의 기록으로 남잖아요. 당시에는 이런 작품창작자가 주목을 받았고 또 어떤 배우들이 등장했다는 기록 그 자체로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한 작품이 여러 차례 올라오기 때문에 매 시즌 다각적인 기사가 나온다는 것도 매력적인 부분이죠. 
 

사회적 거리두기 적용 후 공연계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 더뮤지컬도 한동안 휴간했는데. 
2020년 12월호가 마지막이었죠. 그때 한 해의 끝인 12월호로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잡지는 수익성이 높은 편이 아니고, 더뮤지컬은 광고를 많이 싣는 것도 아니에요. 예산이나 적자 문제도 있어서 언젠가는 발행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죠. 그게 현실로 다가오니까 꽤 충격을 받았어요. 사실 당시에 공연 관계자나 배우들도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더뮤지컬을 꼼꼼히 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늘 곁에 있는 친구 같은 거였는데 그게 사라진 거니까요. 유일한 뮤지컬 매거진이라는 상징성을 크게 느끼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원래 공연 관련 사업을 하던 회사인 클립서비스에서 발행하다가, 휴간을 거치면서 작년부터 YES24로 넘어오게 됐죠. 저는 계속 편집장으로서 참여했고요. 휴간 직전에는 소속 기자도 줄어들었다가, 지금은 조금 늘어났어요. 그래도 기자 한 명이 한 달에 6~7개 정도의 기사를 꾸준히 작성합니다. 지면으로 치면 한 명이 약 20페이지 내외를 담당하고 있어요. 
 

디지털 시대에 지면 잡지만이 갖는 장점은. 
저는 고등학교·대학교 때 샀던 잡지들을 아직 가지고 있어요. 전부는 아니지만 특별히 남겨두고 싶은 걸 보관하고 있죠. 그 잡지들은 지금 다시 읽어도 좋거든요. 사람들은 누구나 좋아하는 게 있고, 그걸 모아두는 경향이 있잖아요. 더뮤지컬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는 어렵겠지만, 책이나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더뮤지컬을 모아둘 거라고 생각해요. 직접 만질 수 있는 물성적인 것의 영향이 크거든요. 종이 페이지를 넘길 때만의 느낌도 있고, 동시에 기억을 되살리는 매개체의 역할도 하게 되죠. 이건 디지털로 대체되지 않는 가치가 아닐까요? 잡지를 다시 읽으면서 당시에 어떤 공연을 봤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등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잖아요. 

지면 잡지로 시작한 더뮤지컬은 어느 정도의 고정적인 구독자층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잡지에 대한 수요가 점점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뮤지컬 전문지로 출발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뮤지컬과 관련된 고정적인 수요가 있는 거죠. 이걸 계속 확장해 나가는 게 중요한 과제겠지만요. 저희도 주된 구독자층이 누구인지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주로 뮤지컬을 소비하는 젊은 세대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최근에는 유튜브 등의 영상 플랫폼이 핵심적인 매체로 떠올랐잖아요. 그런 걸 통해 다양한 독자들과 소통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러 방법을 시도하더라도 지면을 중심으로 한다는 건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다면. 
지금까지 발간한 140여 권의 잡지 중에서 기사 하나를 고르기는 어렵지만, 더뮤지컬 129호에 실린 존 카메론 미첼의 인터뷰 기사를 꼽고 싶어요. 어렸을 때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 <헤드윅> 테이프를 봤는데 커버가 굉장히 강렬했던 기억이 나요. 대학생 때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고, 그때 영화의 주연을 맡은 존 카메론 미첼에 대해 알게 됐죠. 그러다가 2014년에 브로드웨이에서 헤드윅이 다시 공연되면서 *토니상 수상이 점쳐지던 때 국내 기획사를 통해 인터뷰 요청을 했어요. 당시 한국에서도 헤드윅 공연이 10주년을 맞이했을 때거든요. 미첼이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해서 원래는 뉴욕 통신원이 인터뷰를 할 예정이었어요. 하지만 미국에서도 헤드윅 공연이 잘 되고 있었고, 국내에서도 10주년이 됐는데 일반 인터뷰로 다루기는 조금 아쉬운 거예요. 129호 표지가 확정되지 않았을 때라 미첼을 표지 모델로 하고 인터뷰를 커버 스토리로 담으면 어떨까 싶었죠. 그래서 당시 편집장님께 제가 뉴욕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얘기가 잘 돼서 일주일쯤 있다가 바로 출장을 갔고요. 뉴욕에 갔던 건 그때가 처음이라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미첼은 제가 어릴 때부터 환상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 인터뷰도 너무 즐거웠죠. 당시에 미첼의 집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집 곳곳에 헤드윅과 관련된 소품이 정말 많았던 기억이 나요. 잊을 수 없을 만큼 특별한 경험이에요. 

뉴욕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좋은 경험이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다른 목표도 생겼어요. 제가 더뮤지컬 기자로서, 여기 소속돼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게 됐거든요. 그때 일 년에 한 번씩은 해외에 나가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2019년에는 베를린에 갔고, 다음 해에는 네덜란드에서 이브 반 호프 연출을 만났어요. 사실 직접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인터뷰를 진행할 수는 있죠. 하지만 그들이 속한 공간에 가서 인터뷰를 하는 게 굉장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해요. 가령 인터뷰 장소가 극장이라면 단순히 인터뷰만 하는 게 아니라 공연장도 둘러보고, 해당 극장의 사무공간도 보게 되는 식이죠. 다만 최근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나가지는 못했어요. 

기사를 쓸 때 고민하는 부분은. 
취재나 인터뷰만을 위해 공연을 보는 건 아니에요. 사실 그 시즌에 올라오는 공연은 대부분 챙겨보려고 해요. 소재로 다룰지 아닐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당연히 공연을 봐야 하니까요. 그러다가 좋은 작품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기사로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작품에서는 무대 세트가 돋보이고, 다른 작품에서는 의상을 주목하게 되죠. 공연을 보면서 어떤 부분을 기사화할지 고민해요. 또한 관객들이 관심을 두는 작품이 있다면, 이 작품의 가장 빛나는 점이 무엇인지를 취재해서 기사로 옮기기도 하고요. 이외에도 주목해야 하는 창작자나 눈에 띄는 배우도 많이 있죠. 

지금은 공연이 (DVD나 실황 등의) 영상으로 제작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과거에는 특정한 극장에서, 그 순간 올라오는 공연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었어요. 기사를 쓸 때 생각하는 것도 그런 부분이에요. 이 공연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어떻게 글을 써야 관객들이 더 오랫동안 공연을 추억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나중에 다시 읽고 싶은 기사를 쓰는 일 같아요. 일회성 기사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 많이 지나도, 시간을 내서라도 읽고 싶은 그런 기사요. 또 그런 작품에 대한 기록도 많이 남기고 싶고요. 신문과 잡지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잡지는 취향을 담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사실을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어떻게 큐레이팅할지가 중요하죠. 독자들이 읽기 좋게 시각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하고요.
 

국내 뮤지컬 시장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과거에 비해 *해외 라이센스 뮤지컬보다 창작 뮤지컬의 비중이 굉장히 커졌어요. 신인 창작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창작지원사업도 많아졌고요. 그런데 국내에서 제작해도 외국의 이야기를 하거나 해외 예술가들을 다룬 작품이 꽤 많아요. 뮤지컬이 해외에서 들어온 장르라서 그럴 수도 있겠죠. 그래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은 우리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저는 ‘빨래’나 ‘내 마음의 풍금’ 같은 작품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최근 한국의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고 국내 창작진들도 해외에 진출하고 싶어해요. 물론 뮤지컬은 영화드라마처럼 OTT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하기는 힘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어도 한국적인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본인의 목표는 무엇인가. 또한 지난 기자 생활을 스스로 평가해본다면. 
더뮤지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15년 가까이 기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입사하고 5~7년쯤 됐을 때는 편집장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고요. 평소에도 장기적인 목표를 정해두고 살기보다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는 편이에요. 다만 편집장으로서 하고 싶었던 건 거의 다 해본 것 같아요. 제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의미 있는 삶일지 꾸준히 고민하고 있죠.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다음 세대와 나눌 수 있다면 그것도 유의미한 일이고요.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는 공연예술로 유명한 세계 곳곳의 도시나 극장을 방문하는 거예요. 그런 극장의 예술감독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모아서 책으로 내고 싶어요. 
 

편집장으로서 공연예술 분야 기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지면 잡지의 시대가 끝났다는 이야기는 10년도 더 전부터 들은 것 같아요. 특히 지금은 SNS가 발달한 시대잖아요. 더뮤지컬만 해도 월간지기 때문에 주간지처럼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따라잡기는 쉽지 않고요. 잡지가 예전처럼 대중적으로 소비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어디에든 잡지를 읽고 싶어 하는 독자는 있을 거예요. 전자책이 나온다고 해서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요. 그러니 어디로든 계속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잡지사 기자가 새롭게 떠오르는 직업은 아니지만, 해보고 싶은 일이라면 한번 도전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당장 1~2년 후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토니상=미국에서 연극의 탁월한 업적에 대해 수여하는 상. 연극·뮤지컬 분야에서는 최고의 상으로 꼽힌다.
◇해외 라이센스 뮤지컬=국내 제작사가 해외에서 제작된 작품의 판권을 계약해 국내 배우·창작진의 참여로 올리는 공연.


 

ⓒ더뮤지컬 배경희 편집장 제공
ⓒ더뮤지컬 배경희 편집장 제공

 

더뮤지컬 129호에 실린 존 카메론 미첼의 인터뷰 사진.
ⓒ더뮤지컬 제공

 

더뮤지컬 20주년 기념 배지.
ⓒ더뮤지컬 제공

 

더뮤지컬 20주년 기념 배지.
ⓒ더뮤지컬 제공

 

더뮤지컬 19주년 기념 엽서.
ⓒ더뮤지컬 제공

 

더뮤지컬 발간호.
사진|손재원 magandslo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