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그래서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갈 때마다 주변을 눈으로 보기보다 사진 프레임 안에 담아서 봤다. 관광지를 갔다 하면 체감상 열 걸음에 한 번씩 사진을 찍었다. 내 눈에는 이 산이 그 산 같고, 이 나무가 저 나무 같은데 매번 풍경이 달라질 때마다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런 아버지가 속으로는 답답했다. 어쭙잖게 풍경을 찍어내는 카메라보다 내 눈이 더 정확한데 굳이 사진을 찍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반발심과 오기로 어릴 적의 나는, 사진 명소에서도 가만히 눈으로만 구경하고 서 있었다. 빨리 와서 찍으라는 아빠의 호통에 털레털레 가고는 했더랬다.

아버지는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몽땅 인쇄하여 앨범을 만드셨다. 그렇게 만들어진 앨범은 사실 자주 펼쳐지지도 않고 책장 가장 구석에서 먼지와 함께 묵혀질 뿐이지만, 오랜만에 그 앨범을 펼쳐보았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 가족들끼리 앨범이나 꺼내 볼까 하고 펼쳐보면 몇 년 전에 봤던 사진인데도 또 재밌다. 찍을 때는 못 나왔다고 생각했던 사진은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된다. 당시 유행하던 옷이나 화장은 흘러간 시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묘하게 바랜 사진은 어딘가 필터 같아서 요즘은 감성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앨범은 이제 유물이 되어버렸다. 먼지 속에서 풍화된 것이 아니라 진정 우리 삶에서 사라졌다. 스마트폰이 카메라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면서, 사진은 모두 실물이 아닌 데이터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제는 사진이 인화되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제는 사진을 인쇄하여 잘라 붙이는 노동을 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앨범은 유물이 됐다. 그렇게 질색하던 아버지의 사진 강박은 나에게 유전되었다. 조금 머리가 크고 난 후에 나는 심심하면 사진을 찍었다. 놀러 갈 때도, 학교 행사가 있을 때도, 할 일 없이 앉아 있을 때도 카메라를 켰다. 내 핸드폰 갤러리에는 온갖 사진으로 가득 찼다. 흔들린 사진, 못 나온 사진은 꽤 지웠음에도 용량이 넘쳐서 몽땅 네이버 드라이브에 옮겨 담았다. 그렇게 내 추억은 몽땅 드라이브에 옮겨졌다.

드라이브는 평소에 들어갈 일이 잘 없다. 그러다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들어가 보면 그때의 기억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그 시절 유행했던 카메라 필터로 찍은 사진은 다시 보면 웃음이 나온다. 부족했던 화장 실력도, 학생 티가 나는 옷들과 앳된 얼굴은 내가 훌쩍 컸음을 보여준다. 당시에는 멋있다고 생각했던 포즈나 행동은 귀엽게만 느껴진다. 어른이 되고 나서 본 학생 때의 나는 아직 어리다. 평소에는 실오라기만큼도 생각나지 않던 날들이 생생해진다.

앨범은 유물이 되지 않았다. 그 형태가 약간 변했을 뿐이다. 편리해지는 일상 속에서 앨범은 더 이상 책장 구석에 꽂혀있지 않고 우리 손안에 들어왔을 뿐이다. 기억은 언젠가 흐려진다. 사진은 순간의 우리를 담아둔 채 굳건히 남아있다. 우리 가끔 아무렇지 않은 순간도 사진으로 남겨보자. 오늘이 어제 같고, 매일이 비슷해 보이더라도 그냥 한 번 사진을 찍어보자. 그리고 가끔은 손안의 앨범을 들여다보자. 그럼 내가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사진은 사실 의미 있는 추억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카메라를 켠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으니까.


 

유하은(아동 21) 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