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은미 기자 (qewret16@naver.com)

청춘발산마을은 “따스함이 묻어나는 포대기같은 마을”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돌봄으로 함께 지내

 

사회적 차원의 돌봄만으로 채울 수 없는, 사람만이 주는 온기가 있다. 청년과 어르신이 함께 살아가는 광주광역시 청춘발산마을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21일, 따스한 봄기운이 가득했던 청춘발산마을에 방문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봄처럼 포근한 사람들의 마음이 골목마다 묻어났다.

청년 들어오고 마을도 많이 활기차졌어야
‘청춘발산 찾아 왔당가? 아야 얼렁얼렁 와부러야~’ 마을 초입부터 정겨운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발산마을은 70년대 방직공이 모여 전성기를 누렸으나 방직산업 쇠퇴로 많은 사람이 떠났다. 2015년 광주광역시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들어온 청년들이 마을을 알록달록 물들이며 청춘발산마을이 됐다. 샘물경로당 이영희(89) 회장은 “참 다정하니 살기 좋은 마을”이라며 미소 지었다. “청년들이 마을에 있으니까 활기차고 젊은 친구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네 엄청 좋아요. 처음에 청년들이 와서 벽도 칠하구 허길래, 밥 한 끼라두 해줘야겠다 했어요.” 청년과 어르신은 함께 가마솥에 지은 밥을 나눠 먹으며 마을의 빈자리를 채워왔다.

청춘발산협동조합 송명은(34) 대표는 처음에는 업무적인 이야기가 오갔지만 점차 일상을 나누게 됐다고 전했다. “2017년 어르신-청년협력프로젝트로 할매포토를 시작하면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서로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마을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김종학(70) 씨는 청년 이주 전과는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회상한다. “다니면서 인사도 하고 마을에 볼 것도 많아지고요. 동네가 활성화되니 고맙죠.”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함께
청춘발산마을의 사람들은 서로 돌봄을 주고받는다. 이 회장님은 고마운 일이 많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이전에는 짐 하나 옮기기도 힘들었는디, 이제 청년들이 옮겨주니 고마워요. 다른 일로도 도움을 청하면 마다하지 않고 도와줘요. 우리도 고구마라도 쪄서 먹으려면은 청년들에게 이것 좀 먹어볼라냐 그러고 또 갖다주고. 느그는 우리를 할머니 할아버지로 우리는 느그를 손주같이 생각한다구 그랬어요.”

청춘샌드위치 임용제(34) 사장은 “글을 잘 못 읽으시는 어르신도 계셔서 우편을 대신 읽어드리거나 지원금을 신청해드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께 찾아가 안부 인사도 여쭈면서 지내요. 음식을 해서 다 같이 나누기도 하고요.”

카페 플롱 황수정(30) 사장은 앞집 할머님을 도와드렸던 경험을 들려줬다. “몸이 불편하다고 하셔서 마음이 쓰여 한의원에 모셔다드렸어요. 나중에 들었는데 큰 병원에 가보니 뇌졸중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초기에 발견해서 다행히 빠르게 회복하셨어요.” 돌봄 제도의 공백을 채운 따스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황 사장은 받은 것에 비해 한참을 못 돌려드렸다며 웃었다. “우리 아이들은 마을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요. 도시에서는 받기 힘든 돌봄이죠. 하루는 아이가 해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아 걱정돼 찾으러 나섰는데, 어르신께서 발견하셔서 데려다주신 일도 있었어요.”

임 사장 역시 해드린 게 적어 아쉽다며 말을 시작했다. “여러 부분에서 안 챙겨주시는 게 없어요. 아내가 만삭인데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하면 어르신들이 어떻게 구해다가 주셔서 너무 감사하죠.” 송 대표는 청춘발산마을의 돌봄을 “서로 함께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어르신들은 청년들이 지내는 공간에 잡초를 뽑아주시고, 눈도 치워주세요. 청년들은 도시락 봉사를 하고 마을 자원을 수거해 전달하기도 합니다. 어르신들이 항상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시고 안 먹었으면 차려주시고요.”

누구나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마을
서로에게만 돌봄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청춘발산마을에서는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 청춘샌드위치는 노인 일자리를 제공해 마을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일하고 월급을 받는다. 설령 89세 어르신이라 할지라도 일을 할 수 있다. 임 사장은 “할머님들을 위해서 뭘 해드릴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시장형 노인 일자리 사업에 신청했다”고 말했다. 올해는 네 분의 어르신과 함께 하고 있다. 샘물경로당 이 회장님 역시 청춘샌드위치에서 일한다. “조금씩 모아서 자슥한테 손 안 벌리구 지낼 수도 있고, 심심헐 틈도 없어요.”

공공기관·시설에서 살피기 힘든 틈을 마을에서 함께 돌보기 위한 ‘틈새 돌봄 프로젝트’도 진행된다. 마을에 사는 누구나 의견을 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골목이웃회 등의 역량 강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송 대표는 “마을의 문제에 대해 함께 소통할 수 있다”며 의의를 설명했다.

청춘빌리지 앞에는 ‘행복보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도움턱과 경사로가 있다. 송 대표는 “평등한 마을에 대해 고민한 끝에 누구나 마을을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계획했다”고 말한다. “청춘빌리지가 마을 공용공간이지만 턱이 높은 점을 인지해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는 공용공간을 만들고자 진행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보다 쉽게 청춘빌리지에 오실 수 있게 됐어요.”

모두가 미소 짓는 마을을 향해
송 대표는 “청춘발산마을은 서로 돕고 나누면서 함께 늙어갈 수 있는 마을”이라 전했다. 이전에는 없던 청년과 노인을 이어주는 새로운 마을이기 때문이다.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의 관계성이 참 좋다고 생각해요. 바라는 것 없이 교류하는 관계니까요. 서로 아끼고 마음 써줄 수 있고 이를 통해 문화를 나눌 수 있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함께 소통하며 지내고 싶어요.” 돌봄과 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끝없이 이어지는 사회 속 청춘발산마을의 사람들은 오늘도 정겹게 오순도순 살아간다.

 

다양한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있는 108계단.사진|김은미 기자 qewret16@
다양한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있는 108계단.
행복보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경사로와 도움턱.사진|김은미 기자 qewret16@
행복보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경사로와 도움턱.
발산마을에 처음 생긴 공유공간 청춘빌리지.사진|김은미 기자 qewret16@
발산마을에 처음 생긴 공유공간 청춘빌리지.
올해로 3년째 청춘샌드위치와 함께 일하는 이영희 회장.사진|김은미 기자 qewret16@
올해로 3년째 청춘샌드위치와 함께 일하는 이영희 회장.
사진|김은미 기자 qewret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