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혜리 기자 (hyeeeeeli@gmail.com)

돌봄, 사회적 가치 인정하고 중요한 미래의제로 다뤄져야
‘간병파산’, ‘간병살인’으로 이어지지 않게 각 주체의 노력 필요

지난달 31일,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다 방치해 숨지게 한 강도영(22) 씨에게 징역 4년 실형이 확정됐다. 전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아버지를 돌볼 의무가 있었으나 이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 씨는 병원비가 부족해 아버지를 퇴원시켰고, 전기와 수도가 끊긴 집에서 홀로 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돌봄의 의무를 강조하기 전에 돌봄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돌봄가족의 무게, 덜어낼 수 있어야
강 씨처럼 돌봄이 필요한 가족에 대한 보호 의무가 있는 청년·청소년을 ‘가족돌봄청년’이라고 한다. 국내에선 지난해 강 씨의 사건이 보도된 후 문제로 대두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가족돌봄청년 지원 대책 수립 방안’을 통해 기존제도와의 연계, 새 제도의 발굴 등을 통한 지원체계를 제시했다. 하지만 기존 제도를 시행할 때부터 있어왔던 간병문제 해결의 구체적 방침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석재은 교수는 “현재 돌봄 지원 제도들은 가족의 돌봄을 일정 부분 전제하고 있다”며 “가족돌봄청년의 문제를 따로 떼어 볼 것이 아니라 돌봄가족의 부담을 어떻게 덜어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 밖에 놓인 ‘간병’
돌봄가족은 간병부담을 나누기 위해 돌봄노동자를 찾게 된다. 전문 자격증이 있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65세 이상의 노인이나 65세 미만의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등급자여야 한다. 이 경우 장기요양보험으로 일정부분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반면 현장의 다른 돌봄노동자인 간병인은 돌봄 대상의 제한이 없으며, 국가보건의료인에 속하는 요양보호사와 달리 민간영역에 속해 있어 환자와 사적 계약을 맺는다. 간병인을 고용하는 데 드는 간병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해주지 않는다. 간병시민연대가 간병을 경험한 이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4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2%가 ‘간병비용’을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았다.

대부분의 간병돌봄에 있어 간병인 고용은 필수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노인장기요양서비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등의 복지제도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노인장기요양서비스는 등급자만 이용할 수 있고, 등급을 인정받기까지도 시간이 걸린다. 등급자로 방문요양을 신청할 경우에도 하루 4시간, 일주일에 5일이 최대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경우 현재로선 급성질환자만 이용할 수 있어 간병이 필수적인 중증환자들에겐 유명무실하다. 간병인은 대략 24시간에 10~20만 원을 받으며 일한다. 한 달만 고용하더라도 300~600만 원을 웃도는 비용으로 입원비, 수술비 등과 합하면 환자들의 부담은 가중된다. 간병시민연대 박시영 활동가는 “환자의 상태와 관계없이 간병비 부담을 이유로 퇴원하고 다시 가족이 돌보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간병돌봄의 큰 축, 돌봄노동자와 돌봄시설에서의 문제
돌봄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로 인해 돌봄노동자의 처우가 좋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자격시험과 실습을 거쳐 뽑히는 요양보호사들은 전문 인력에 속하지만 임금체계가 불안정하고, 경력을 인정받기도 어려우며 성희롱, 폭언과 같은 부당한 대우에 시달리기 쉽다. 서울요양보호사협회 정찬미 회장은 “노인요양시설의 요양보호사 인력 배치기준은 돌봄대상자 2.5명 당 요양보호사 1명이지만, 8시간 3교대 근무를 감안하면 실제 요양보호사 1명이 담당하는 돌봄대상자의 수는 10명이 된다”며 “인력 부족은 불충분한 서비스의 제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전했다. 돌봄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석 교수는 “기존에 가족 내에서 해결할 수 있었던 돌봄이 사회적 욕구로 등장하며 돌봄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양상을 띤다”고 말했다.

돌봄시설은 크게 요양시설과 요양병원 두 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질 좋은 돌봄이 보장되는지는 미지수다. 요양시설(장기요양기관)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요양시설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서비스 질 관리를 위해 3년 단위로 평가를 실시한다. 시설·설비관리뿐만 아니라 돌봄 수용자를 인격체로서 대우하는지, 돌봄의 질에 만족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지 등이 모두 평가된다. 시설의 규모나 인력에 대한 최소 규제도 있다. 그러나 규제 자체가 낮은 편이라 한 사람이 여러 명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요양병원은 의료법에 따라 장기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행위를 한다. 또한 요양병원은시설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시설별로 질적 차이가 크다. 좋은 평가를 받은 요양병원은 대기자가 많이 몰려 이용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요양병원은 일반병원에 비해 병원시설 투자비용이 덜 들고, 비교적 적은 수의 의료인력으로 많은 병상을 운영할 수 있어 설립이 쉬운 특징이 있다. 석 교수는 대부분 민간의료기관인 현재의 요양병원에 대해 “시장화 조성 시 공급자 진입 양에 대해 규제를 하지 않다 보니 이용자 확보를 위한 과잉 경쟁으로 나타나 문제”라고 말했다.

좋은 돌봄을 고민할 수 있어야
‘좋은 돌봄’을 주요한 의제로 두고 돌봄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주체의 변화가 동반돼야 간병돌봄의 구조적 문제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석 교수는 돌봄의 공공성 강화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는 관리자(정부), 서비스 공급자 및 이용자라는 세 주체가 돌봄의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구조라면 이들이 각각 선순환으로 흐름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관리자는 잘 규제된 시장을 조성하고, 공급자는 서비스의 질이 좋아질 수 있도록 책임지며, 이용자는 보다 나은 서비스 제공 문화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석 교수는 “돌봄은 관계적인 노동이므로 주체들 간 서로를 존중할 수 있을 때 좋은 돌봄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전문가들은 돌봄의 공공성 확대의 일환으로 ‘커뮤니티 케어’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커뮤니티 케어란 병원이나 시설에서 나와 가정에 머물며, 지역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지역을 단위로 연계된 서비스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커뮤니티 케어를 위해 건강보험제도, 장기요양보험제도, 돌봄서비스제도 등이 제도 간의 벽을 허물고 지역을 중심으로 조화롭게 제공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간병돌봄 해결은 미래를 위한 일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요양·간병가족의 돌봄휴가·휴직 기간의 확대, 요양병원 간병비 건강보험 급여화 등 간병문제 해결과 관련한 공약을 내놓았다. 이에 정 교수는 “간병에 대한 해결을 내세우긴 했으나 구체적 대안은 언급하지 않은 만큼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활동가는 간병돌봄의 당사자가 아님에도 간병시민연대에서 활동하는 이유에 대해 “결국 나의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간병문제를 제대로 직시하고 해결하지 못하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청년 세대를 포함해 사회가 간병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 내 보호자나 간병인이 상주하지 않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24시간 전문간호·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일러스트|서여진 기자 duwls1999@
일러스트|서여진 기자 duwls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