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도연 기자 (dlehduslee@naver.com)

자과캠 만남 - 유인재(건축공학 83) 동문

사진 이도연 기자 doyeon@

아무리 일이 좋더라도 한 번쯤은 일상에 지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이때 즐길 수 있는 취미는 자신을 잡아줄 한 줄기 끈이 되곤 한다. 여기 일과 취미, 다른 듯 비슷한 분야를 즐기며 다채로운 삶을 사는 이가 있다. 감사, 강사, 음악평론가, 그리고 칼럼리스트로서 다양한 삶을 살아온 유인재(건축공학 83) 동문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감사 업무로 지친 삶에
클래식 음악 감상 취미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했던 시골 소년, 건축학도의 길을 걷다

충북 제천에서 나고 자란 유 동문은 어렸을 적에는 자연을 벗 삼아 뛰어 놀기 좋아했다. “다녔던 동네 교회 새로 오신 전도사 분이 책을 한가득 가져와 한쪽 구석에 두셨어요. 그때부터는 완전히 그 책들에 파묻혀 살았던 것 같아요.”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공부보다는 책 읽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이후 대학 전공을 고민하던 그는 건축가에 대한 선망과 다니던 허름한 교회를 멋지게 건축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우리 학교 건축공학과에 진학했다. “이전까지는 독서에 심취했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원하는 과를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어요.” 대학 진학 이후 그는 전공 공부에 빠져들었다. 그는 “건축 공부가 적성에 잘 맞아서 공부를 계속해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있었다”며 꿈 많았던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전공을 좋아한 그가 석사 학위 취득을 위해 우리학교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대학원 졸업 이후 그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슬슬 취직해야 할 나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전공 공부를 더 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공부를 계속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됐죠.”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석사 취득 이후 입대한 군대에서 5급 행정고시에 합격한 친구를 만났다. “당시 그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위공무원은 국가에서 유학을 보내준다고 하더라고요. 공부에 목말라 있던 저에게 그 부분이솔깃했어요.” 이어 그는 “당시 우리나라 주택문제가 심각하던 시기였는데 공직에나선다면 건축학도로서 정책을 세워 주택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진로를 고민하던 당시를 회상했다.

수많은 고민 끝에 공직의 길을 선택하다

군대를 전역한 27살, 유 동문은 자신의 전공인 건축계열의 기술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고민 끝에 스스로 취업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29살까지 한번 공부해보자고 다짐했죠.” 고향 독서실에서 시험을 준비한 그는 처음 본 1차 시험에 합격했다. 혼자서 한 번에 합격한 비결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고시 준비는 엉덩이 싸움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냥 오랫동안 묵묵히 공부했다”고 호쾌하게 답했다. 이후 그는 우리학교 고시반인 운용재에 들어가 2차 시험을 준비했다. 처음 본 2차 시험에서 한 과목 점수가 낮아 안타깝게 탈락했지만 아쉬워할 새도 없이 다시 1차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그는 여러 과목을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잘 맞는 과목을 공부할 때는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2차 시험 과목 중 ‘윤리’ 점수가 유난히 높았던 기억이 나요. 논술형 시험이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던 저와 잘 맞았어요.” 이렇듯 쉬지 않고 시험을 준비한 그는 2번의 도전 만에 제29회 기술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그는 서울특별시로 발령받아 공무원으로서 첫 발걸음을 뗐다. “시험을 준비할 때는 제가 세운 정책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기를 바랐어요. 그러나 관리자 직책으로 일을 시작하니 그럴 기회가 없어 일에 흥미를 잃기도 했어요.”

번아웃, 클래식 음악에 빠지는 계기가 되다
이후 유 동문은 감사원으로 자리를 옮겨 1996년부터 작년까지 26년간 감사로 일했다. 그는 감사원에서 일하며 해외로 유학을 가 원하던 전공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감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감사 업무 특성상 제 전공 관련 일 뿐만 아니라 복지부, 문화부의 사업이나 회계를 점검했어요. 그러다 보니 전공과 관계없는 고속철도 사업, 대학, 국방부 등 다양한 기관을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했죠.”이렇듯 새로움을 좋아한 그에게 감사 업무는 흥미로움의 연속이었다. “제가 한 업무에 따라 감사 대상인 기관의 정책이나 제도가 바뀌다 보니 항상 보람찼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는 공직자에게 징계를 내릴 때는 심리적으로 힘들기도 했다. 그는 진급하면서 일이 많아지고 피로가 쌓이자 좋아하던 업무에도 회의감이 생겼다. “특히 2002년에는 일이 많아 밤 12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을 정도로 6개월간 많은 양의 일을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들린 용산 전자상가의 오디오 가게에서 들려오는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이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는 “처음 클래식을들은 순간 그동안 쌓였던 힘든 감정들이 위로되고 정화되는 느낌이었다”며 당시 소감을 전했다.

그때부터 클래식 음악에 빠진 그는 시간이 될 때마다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마치 고시 공부를하던 때로 돌아간 것처럼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어요.” 음악적 지식에 목말랐던 그는 고전음악 감상 동호회인 ‘클래식바움’에 들어가 활동했다. “동호회에서는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회원들이 돌아가며 그 주의 감상곡을 준비하고 자신의 생각을 2시간가량 발표합니다. 이후에는 자유롭게 작품에 대한 생각을 나누며 감상곡을 더 깊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요.” 올해로 20년째 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1주일에 한 번 클래식 음악 CD가 벽면을 가득 메운 공간에서 푹신한 의자에 앉아 훌륭한 품질의 오디오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은 가사가 없으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죠. 작곡가의 구체적인 의도를 나름대로 파악하기 위해 혼자 공부도 하고, 상상도 하고, 생각한 내용을 동아리에서 발표하며 의견을 나누기도 했어요.” 그에게 클래식 음악은 무한한 미지의 세계이자 앎의 즐거움을 안겨 주는 곳이었다.

클래식 음악, 새로운 인생의 막을 열다

아름다움에 빠져 시작한 음악 감상 취미는 그에게 다양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음악에서 오는 안정감 덕분에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러한 미적 경험은 그만의 독특한 강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공직자는 부정부패의 유혹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아요. 기존에는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윤리교육을 실시하거나 징계를 내리는 강압적 방식을 사용했죠.” 그러나 그는 전통적인 방식들이 공직자의 부정부패 방지에 기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제 경험상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기존 윤리교육이 급변하는 사회에 비해 뒤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윤리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느껴왔던 그는 윤리와 다양한 분야를 접목하는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 취미이자 좋아하는 분야인 고전음악을 바탕으로 감사교육원에서 윤리 수업을 시작했어요. 수업의 핵심은 고전음악을 통해 공직 윤리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었죠.” 혁신적인 그의 수업은 많은 감사원 후배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에 힘입어 작년에는 국립외교원, 한국전력, 법원공무원교육원 등 여러 국가기관에서 20여 회의 강의를 진행했다.

음악에 대한 조예를 쌓아온 유 동문은 감상과 강의에서 멈추지 않고 클래식 음악과 소설과의 관련성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많은 책을 읽어왔던 그였기에 글에 대한 영감은 쉬지 않고 떠올랐다. 이후 그는 주위의 권유로 2013년부터 페이스북에 자신이 쓴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당시 페이스북에는 예비 작가들의 등용문이라고 할 정도로 훌륭한 글이 많았어요. 그런 공간에서 저의 글에 5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다음 글을 기대하니 더 많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로부터 그는 본인의 SNS에 꾸준히 1년에 대여섯 개의 글을 올렸다.“글을 올리기 시작한 3년 차에 <음악저널>이라는 잡지사에서 글을 연재 요청이 왔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넘겨지는 책장 속 흐르는 음악’이라는 코너명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과 소설 조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유 동문은 “허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의 연결성을 바탕으로 쓴 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 “소설의 첫 문장과 음악의 첫 소절은 작가와 음악가들이 가장 공들여 쓰는 곳이에요. 해당 소설은 ‘그는 갈색 솔잎이 깔린 숲 바닥에 두 팔을 포개고 그 위에 턱을 고인 채 납작 엎드려 있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다양한 사건들이 펼쳐진 후 ‘그는 심장이 숲에 깔려 있는 솔잎에 부딪쳐 고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문장으로 끝나요. 유사한 듯 다른 두 문장은 소설 속의 사건들을 이어주는 견고한 다리 같았어요.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봤던 구절이어서 그런지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듣자마자 비슷한 구조가 보이더라고요. 이 곡은 평화로운 아리아로 시작해 30개의 다양한 변주를 거쳐 처음과 유사한 아리아로 끝나거든요. 곡을 들으며 소설을 읽으니 소설의 내용이 두 문장 사이에서 연주되는 변주곡 같았어요.”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있는 후배들에게
유 동문은 현재 국가철도공단의 상임감사로 근무하며 강의와 글 연재를 병행하는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 그의 행보를묻자 그는 미래에 해나갈 다양한 활동에 대한 기대로 눈을 반짝이며 답변했다.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는 않더라고요. 지금은 내년에 책을 출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막상 책을 출간하고 나면 또 다른 길이 펼쳐질 것 같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끝낸 그는 진로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후배들의 고민에 대해 조언했다. “대다수의 학생이 명확한 진로를 가지고 대학 전공을 정하는 경우가 없을 것이라 생각해요. 진로에 대한 확신이 있는 학생들조차도 막상 현실의 벽을 마주했을 때 진정으로 원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이어 그는 “불안한 걸 잘 알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심장이 두근댈 정도로 간절하게 원하는 길을 찾길 바란다”며 “예전에는 좋아하는 걸 오랫동안 탐색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인생의 낭비인 것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결국에는 그 시간을 가진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