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나지윤 기자 (nanana@skkuw.com)

인터뷰-국립세종수목원 이유미 원장



40년 가까이 꽃과 나무를 연구한 식물학자
수목원이 삶에 식물을 들일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길

 

문득 푸른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을 때, 산으로 들로 멀리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도 도심 속 사계절 내내 풀 내음과 꽃향기 짙은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국내 최대의 열대우림부터 전통이 담긴 궁궐정원까지. 2020년 개장한 국립세종수목원에는 2800종이 넘는 수많은 식물이 축구장 90개 규모의 드넓은 공간에 조화롭게 살아간다. 이유미 원장은 국립수목원 원장을 거쳐 현재 국립세종수목원을 가꾸고 있다. 지난달 26일, 식물보존 및 연구에 힘쓰고 유려한 글로 자연을 소개하는 이유미 원장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식물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대부분의 이과 여학생들이 택하는 전공들 말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씨앗을 사서 엄마와 함께 정원을 가꾸던 기억이 좋게 남았기도 했고요. 처음에만 해도 이 일로 취직할 수 있겠냐고 다들 만류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이 일이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직업 중 하나가 됐어요. 진로에 대해 고민해볼 시간과 정보가 더 많았다면 자연스럽게 이 길을 택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을 것 같아요. 저는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자연과 식물을 공부하고 싶어요.


식물을 만나러 많은 곳을 다녔을 것 같은데.
한 신문사가 기획한 ‘한국의 야생화 대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해 1년 동안 전국을 누비게 됐어요.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두발로 뛰며 도감에만 있던 식물들을 하나씩 직접 만나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죠. 백두산은 비자가 나오지 않아 어렵게 홍콩을 거쳐 돌고 돌아야 갈 수 있었어요. 대학원에 재학할 때는 후배들과 만든 ‘야생화 연구회’에서 울릉도로 떠난 적이 있어요. 숲길로 들어서기도 전
에 섬초롱꽃이 저를 반겼죠. 처음 봤지만 한눈에 알아봤어요. 울릉도에서 식물들을 만난 기억은 감동의 순간으로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피고 지는 생명으로서의 식물을 마주하면서 식물에 대해 더 애정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식물분류학에 대해 소개해달라. 또 식물을 공부하며 얻은 색다른 경험이 있다면.
식물분류학은 간단히 얘기하면 한 식물이 다른 식물들과 어떻게 다른지 식별해내고 어떤 부모에서 왔는지 집안의 족보를 찾아주는 거예요. 종(種)에서 시작해 식물의 계보를 만드는데, 발로 뛰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DNA로 유전자 분석을 하고 있어요. 음식을 만들거나 신약을 개발하는 일은 식물을 정확히 분류해 구분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식물분류학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식물을 분류하고 공부하면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달리 보이는 것들도 있었어요. 예를 들면 사극의 말 타고 달리는 장면에서 들판에 개망초가 쫙 깔려 있는데, 사실 그 시대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식물인 거죠. 아직 식물 고증까지는 조금 어려운 일이라며 웃기도 했답니다.


국립수목원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처음 일하기 시작했던 당시에는 여건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공원은 사람들이 아름답게 휴식하는 공간이라면 수목원의 가장 주요한 기능은 보존입니다. 자연이 심하게 파괴돼있을 때 자생지에서 위협받는 수많은 식물을 수목원에 모아서 보존하는 것이죠. 수목원 속 식물들은 각각 이력 관리가 이뤄지고 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보존에 대한 인식이 아주 부족했고 예산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산림청에 찾아가서 이러한 수목원의 역할을 강조했죠. 산림청에서는 당돌한 어린 연구자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한번 해보라고 예산 800만 원을 주셨어요. 그 돈으로 우리나라의 식물보존 연구를 시작하고 희귀식물 도감과 지침서를 만들었죠. 성과들이 가시화되니 또 새로운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고 수목원에 보존원이 생기게 됐답니다. 그 가치를 공유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죠. 800만 원으로 시작했던 일이 커져서 제가 국립수목원을 나올 때쯤에는 전국 희귀식물 보존체계를 만들고 시드뱅크가 생기는 등 엄청난것들이 됐어요.


식물 이름 제정에도 참여했는데.
수목원이 전국적으로 많지만 그중 국립수목원이 해야 하는 일에 주목했어요.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선뜻 하기 어려운 일, 개인이나 학교에서 하기 어려운 일들을 국가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당시에는 학자들이 각자 연구를 진행하면서 사용하는 식물명이 달랐어요. 많은 국민들 입장에서는 책마다 이름이 다르고 학명 역시 어느 것이 정확한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어요. 우리나라의 식물도감이 3개 있었는데 3개 다 같은 이름으로 표기된 식물이 50%도 안 됐던 거죠. 그래서 국가표준식물목록을 만들게 됐습니다. 향명을 존중하기도 하고,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경우에는 지방별 명칭을 조사해 가장 빈도수 높은 것을 일단 표준으로 정하고 있어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를 경우 조율하기 위해 위원회도 만들었어요. 예를 들면, 개부랄꽃이라는 아름다운 희귀난초가 있는데 이름이 부르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고 복주머니난으로 개명한 사례가 있답니다.


기억에 남는 수목원 방문객이 있다면.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매일 광릉의 국립수목원에 산책을 오셨어요. 근데 그 할아버지께서 수목원의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라며 매번 화를 내셔서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했죠. 지금 국립수목원 전나무 숲길 중간에는 벤치가 있는데, 그 할아버지께서 이곳에는 왜 힘들게 앉을 곳이 없냐고 너무 야단을 치셔서 만들게 됐어요. 그러나 이후에 할아버지가 한참 동안 안 오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사실 할머니가 치매가 있고 아프셨대요.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는 매일 그 산책길을 오셨고, 할머니가 중간에 쉬실 수 있게 의자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던 거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중에 찾아와 초콜릿을 잔뜩 주시며 고맙다고 하신 게 기억에 남아요.


『우리 나무 백가지』라는 책이 스테디셀러에 오르는 등 인기가 많다, 책을 쓰게된 계기는.
유명한 책들 사이에서 스테디셀러에 올랐다니 깜짝 놀랐어요. 그때 당시에는 ‘식물 책’이라고 하면 도감이나 교과서처럼 필요할 때 정보를 찾는 책이 전부였어요. 감정을 싣고 흐름에 따라 쭉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 전혀 없었죠. 한 여성지에 식물을 소개하는 지면이 있었는데 그곳에 글을 쓰게 됐어요. 식물 하나에 원고지 30~40매 정도를 써야 했는데 그때 식물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연습이 된 것 같아요. 이후 한 출판사에서 ‘우리 OO백가지’라는 시리즈를 진행했는데 ‘나무’편을 제가 맡게 됐어요. 이것이 제 인생을 바꿨다고 할 수 있어요. 조금 간지럽지만, 이 책을 쓰면서 식물이 제 마음속으 로 들어오게 됐어요. 그때는 인터넷 검색도 어려웠고, 나무 하나를 쓰려면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서 하루종일, 한 달 내내 그 나무 생각만을 해야 했어요. 적어도 그 책 속의 백 가지 나무에 대해서는 온전하게 사유할 수 있었어요. 남편이 아침 일찍 책을 쓰는 저를 보더니 계속 생각하면서 표정이 바뀌는 것이 참 신기하고 웃기다고 하더라고요. 나무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가 막 안타까워지기도 하고, 그 사유의 시간이 참 소중해요.


책의 표현들이 인상적이었다. 집필하면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우리말을 잘 쓰는 것이 하나의 목표였어요. 식물학 용어와 내용에는 일본식 흔적이 남아있는 용어들이 너무나도 많고, 최근에는 영어들도 많죠. 그것들을 우리말로 살려 우리 느낌으로 식물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그리고 내가 보는 감동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하잖아요. 내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서 표현에 더 신경을 쓴 것 같아요.


식물로부터 받은 영감이나 위로가 있다면.
연구하면서 정말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 런데 2층 연구실 창가에서 내려다보면 쭉쭉 뻗는 짙푸른 전나무가 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짙푸른 잎새들과 강직한 전나무가 제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어요. 의연하고
꼿꼿한 전나무도 봄이면 아주 연하고 보드라운 새싹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죠. 그러다 한참 후에 전나무가 그렇게 굳건하게 견딜 수 있던 이유를 알게 됐어요. 근데 전나무가 *균근이 만든 네트워크를 통해 10개가 넘는 다른 나무와 연결돼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전나무가 다른 나무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던 것인데, 이것이 그 오랜 시간을 고뇌 속에서 버틸 수 있던 보이지 않는 도움이었던 거죠. 이처럼 사회도 마찬가지로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상호 간의 수많은 도움을 통해 살아가는 것 같아요. 서로가 존재하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어느 순간에는 아름답게 솟아오르며 도약할 수 있는 것처럼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어렵지만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우리나라 정원 식물에 대한 연구적 뒷받침이에요. 지금 전국적으로 정원 박람회도 생기고 많은 사람이 정원을 사랑하게 됐는데, 정원 식물의 대부분은 외국 식물이에요. 우리나라의 야생화가 정원에 오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우선 농가에서 대량 생산하고 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어야 하죠. 어떤 조건에서 재배할 수 있는지 데이터를 축적하는 등 상품화되기까지 많은 개발과정이 필요해요. 많은 분이 야생화가 좋은데 심어놓으니 키우기 어렵다고 하시는 것 역시 정원에서 기를 수 있도록 개발되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생각보다 우리나라의 꽃 무궁화를 곁에 두고 키우려는 분이 많지 않더라고요. 품종의 다양화 외에는 사실 반려식물로 내 곁에 오도록까지 하는 연구가 부족했던 것이죠. 앞으로는 단순히 식물이 우리 곁에서 기르기 쉬운지 어려운지를 관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름다운 우리 식물들이 잘 생산되고, 누구나 이들을 쉽게 사고 키울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식물과 가까워지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 한마디.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 없이 우선 각자 주변에 있는 나무 하나를 ‘내 나무’로 정해보세요. 지나갈 때마다 내 나무에 한 번씩 시선을 두는 습관만 가져도 삶의 색깔이 초록으로 짙게 바뀔 거예요. 그게 어느 날은 위로가 되기도, 어느 날은 아이디어가 되기도 하죠. 내 나무와 함께 계절의 변화도 느끼며 마음을 다잡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식물의 이름이 가진 의미가 매우 커요. 산책하다 식물을 만날 때 이름을 모른다면 그저 푸른 나무와 다채로운 꽃일 뿐이죠. 하지만 이름을 알면 전체 중에 그 식물이 보이잖아요. 저 많은 군중 속에서 그 사람, 풀밭의 그 꽃에 주목하고 구별해낼 방법이 이름입니다. 나무를 10개만 알아도 산이 배로 정다워져요. 또 일상에서 주변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시선을 한 번 더 둬보세요. 볼 때마다 모습이 달라지고 느낌도 매번 다를 거에요. 예를 들면 석양도 우리가 그냥 퇴근할 때 무심코 보는 것에는 큰 의미를 두지 못하다가, 여행을 가서 앉아서 본다면 전해지는 감동이 크죠. 식물에 시선을 두고, 이름을 알아가고, 들여다 보는 그 순간 자체가 매번 좋은 시간이 된답니다.

생기 가득한 세종수목원의 모습.
생기 가득한 세종수목원의 모습.

 

국립세종수목원 이유미 원장

 

 

 

◇균근=식물의 뿌리와 균류(菌類)가 긴밀히 결합해 일체화되고 공생관계가 맺어진 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