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당신과 나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처음부터 이게 무슨 말이냐며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은 내가 될 수 없다.

얼마 전 동생이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언니는 남들이 언니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

“나도 나를 이해 못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이해 하겠어.”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와 공감은 사람의 관계를 풍족하게 만든다. ‘내가 만약 당신이라면’의 주문을 덧붙이기 시작하면, 관계의 관절 사이에는 더욱 깊은 농도의 애정이 서리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바로 관계를 끝장낼 거라고만 생각했던 일들도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가 있다.

허나 이 이야기의 중점은 단어 ‘완벽히’에 있다. ‘완벽하다’는 ‘흠이 없는 구슬’과 같이 온전함을 뜻한다. 친구든 / 애인이든 / 부모자식이든 / 사랑과 이해가 바탕이 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다르다. 가진 상처와 얼굴이 다르고, 겪은 배경과 마음이 다르다. 나는 겪었으나 당신이 겪지 못한 마음들이 많고, 당신에겐 당연하지만 내게는 낯선 상황들이 만연하다. 나는 당신이 아니고, 당신은 내가 아니기에 우리는 서로를 ‘결함 없이’ 이해할 수 없다.

어릴 적에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 관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 때문에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 순간들이 참으로 많다. 내 마음을 모르는 상대방이 야속했고,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마음이 미웠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 마음은 죄책감으로 물들기 일쑤였고, 그 일련의 것들이 축적되면 관계의 여기저기가 좀쑤시고 결렸다.

서로를 결함없이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비로소 다름을 받아들일 공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공간 속에서, 나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미워하며 죄책감 가질 필요도 없다. 그 작은 공간에서는 단단한 사랑이 싹을 틔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을 내 슬픔만치 느낀다. 드라마에 아련한 노래만 흘러나와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은 엄마를 꼭 빼다 닮았다. 당신의 설움을 내게 털어놓는다면, 분명 나는 같이 울고 마음이 아릴 테다. 허나 그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그들은 기울어가는 마음의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고, 소주 한 잔 놓고 같이 울어줄 수 있으나 내 삶을 살아줄 수는 없다. 우리는 창 하나 두고 마주한 버스 기사님들처럼 서로에게 반갑게 손 흔들 수는 있지만, 도로에서 서로 버스를 바꾸어 탈 수는 없다.

서로의 삶을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사랑할 수 있다. 가진 기질과 겪은 경험들은 독자적인 자아의 세계를 설계한다. 우리는 매일 다른 차원의 사람들과 만나 사랑하고 미워하고 고마워한다. 직접 겪지 않은 일들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동안에 미워하고 야속했던 마음들이 슬 녹아내린다. 녹아 내린 마음 타고 다시금 상대에게 흘러간다.

위로의 양상 역시 바뀌기 시작한다. “나는 너를 완벽히 이해해.” 대신, “나는 그걸 겪어보지 않아서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네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하는 식이다. 그러고는 펭귄처럼 서로의 어깨에 고개를 묻어주면 되는 일이다.

“나와 넌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 친구지만, 우리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어.”

레즈비언 친구 김양이 했던 얘기였다. 그때는 그 말이 한참이나 서운했다. 아냐,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어. 하는 내 말에 김양은 옆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렸지. 이제야 나는 그 말을 내 입에서 뱉어본다. 그 애와 내가 완벽한 이해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나는 그 애가 겪었던 것들을 겪어보지 못했고, 김양은 내가 겪었던 것들을 겪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곁을 지킨다.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실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할 수 있는 그만큼만 서로를 이해하고, 남은 부분은 애정과 단단한 우정으로 채워나간다.

당신은 나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나는 당신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있고,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어서, 비로소 서로를 단단히 사랑할 수 있다.

김유림(교육 19)
김유림(교육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