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혜리 기자 (hyeeeeeli@gmail.com)

‘나는 누구인가?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일부분이다. 나의 가치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가치와 같다. 내가 살리고 전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나다.’ 존경해마지않는 PD 정혜윤 님의 말이다. ‘옳다고 믿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하자’ 아끼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국회의원 장혜영 님의 말이다. 하얀 정사각형 공책에 사랑하게 된 말들을 훔쳐 온지 2년이 돼간다. 앞선 두 말은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말이다. 책에서 읽은, 기사에 적힌, 누군가가 나에게 건넨 말... 온갖 말들로 공책 여섯 권을 채우는 동안 나는 참 많이 변했다. 가장 아끼는 변화 중 하나는 글을 필사하는 사람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멋진 말을 하는 이들이, 편지를 쓰게 만드는 이들이, 뗄레야 뗄 수 없는 이 사회가 나를 바꾼다. 사랑하게 된 것을 메모하는 습관은 나를 ‘사랑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놨다. 사랑많은 사람이라 함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터뷰 사진을 찍어온 지난 시간 속 나와 세상에 대한 글을 써내는 지금의 나는 사랑많은 사람임에 분명하다. 타인의 이야기를 카메라로 담아내는 일과 현실을 가감 없이 기사로 옮기는 일은 분명 사랑이 필요하다. 그것도 많이.

나는 나를 사랑하는 건 자신이 없어 늘 다른 무언가를 사랑하길 택한다. 주로 그 마음은 사람들을 향했고, 그들이 가진 이야기로 완성됐다. 이제껏 만난 당신들은 사랑할 만한 구석을 꼭 갖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느라 빛나고 마는 당신의 눈을 사랑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긴장한 채 꼭 쥔 당신의 손을 사랑한다. 나의 질문에 지나온 삶을 반추하는 당신의 침묵을 사랑한다. 자신을 더 귀하게 여기기 위해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당신을 사랑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당신을 사랑한다. 이번 겨울부턴 어떤 연유에선지 늘 마음 다해 취재하고 밤잠 아껴 이 지면을 채우는 당신들을 사랑하게 됐다.

무언가 오해하느라 이해보다 화가 앞서는 당신도 어렵지만 사랑해보겠다. 이 현실을 봐달라고, 같이 연대해달라고 끝까지 붙잡고 말해보겠다. 앞으로의 지면도 이 맘 굳게 붙들고 채워나갈 것이다. 보다 정교한 언어로 지금 이곳의 문제를 알리겠다는 다짐, 세심한 관찰과 예리한 질문을 통해 진실에 가까워지는 순간을 지켜내겠다. 그것이 나의 밤을 쪼개게 만들고, 인터뷰를 하나하나 공들이게 만들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다음 또 다음을 말하는 이유가 된다.

지면을 채우며 글로 소통하기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 돼간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이 일을 분명 더 사랑하게 되리란 걸 첫 기사를 내며 알았다. 어쩌면 이런 날 것의 말로는 지면에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으나, 나는 누구보다 낮은 자세로 모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애쓰겠다. 그건 나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유일하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이다.
 

최혜리 기자 hyeeeee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