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오유진 (5dbwls5@hanmail.net)

신문사에 지원했던 순간을 묻는다면 특별할 게 없다. 너무나도 하고 싶었기에 결정을 내리기까지 망설임이라곤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오히려 입사하고 나서부터 고된 선택들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속 깊은 떨림을 고스란히 느끼며 했던 모든 결정이 큰 자산이 됐다. 처음엔 단체 생활에 있어서 나만의 위치를 파악(어쩌면 단정)했고 그에 끼워 맞춰진 채 끊임없이 타협했다. 기자를 꿈꾸며 공들여 세워놓은 철학들이 툭툭 밀쳐질 때도 눈만 질끈 감았고, 공감 능력을 뽐내며 합리화하고 이해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나를 가둔 채 바라만 보기엔 도저히 나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긴 고민 끝에 한 발 물러서 보기도 하면서 변화를 어디까지 도모할 수 있는지 배워나갔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좋았던 기억만 남고 이 글은 괜한 민망함만 남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 자리에 꼭 남기고 싶다. 

남기고 싶은 것이 더 있다. 성대신문을 떠나고도 잊지 않아야 할 것들. 단체 생활의 시작과 끝, 취재와 인터뷰, 회의와 교열을 거쳐 발간까지, 결국 사람이었다. 수습기자 시절 작성한 기사는 오히려 내가 아닌 많은 이들이 관여한 결과물이라는 점이 상실감을 줬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사람이 없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면접을 보러 갔던 2021년 3월 9일의 호암관 신문사, 2021년 4월 16일부터 늘 혼자인 게 익숙했던 학생회관 신문사.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 책임 아래 건네준 호의, 존중을 표했던 칭호, 기꺼이 내어준 시간, 그리고 이따금 나눴던 사사로운 감정까지. 학교 안팎으로 인사하고 지낼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각자의 위치에서 그려 나갈 미래가 있고 그것들이 어떤 모습일지 무척 기대된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서 매 순간을 함께한 사람이 있다. 1년이 넘는 시간은 성대신문 기자로 오유진이라는 사람을 취재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는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까지 본인의 꿈을 활짝 펼쳐본 적이 없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것들, 하고 싶었던 말들을 마음껏 하며 충분히 힘들었고 그만큼 행복했다. 그는 전에 ‘어떤 인간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한 뒤 그 고통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는 글을 읽었는데, 그 누구의 의견이나 동의 없이 택했던 신문사라는 일종의 고통은 그의 강인함과 단단함을 똑똑히 확인시켜줬다. 꿈과 신념 앞에서 그가 얼마나 순진해지는지, 당장의 편안을 얼마나 멀리할 수 있는지도 보았다. 과학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도. 그가 신문사 지원서에 쓴 첫 문장은 ‘저는 과학 전문 기자를 꿈꾸고 있습니다’였고 부서 배치 문건의 첫 문장은 ‘과학 전문 기자를 꿈꾸며, 학술부만을 바라보며 입사했습니다’였다. 당찬 포부가 있었고 그것들을 지키려 나름 애썼으나 늘 아쉬움은 남는 법이다. 쓰지 못한 채 남은 소재들이 발목을 잡지만, 한편으론 어떻게든 지면에 담아냈던 기사들을 생각하면 후련하다고 한다. 

어느덧 낭만은 잠시 접어두고 오 학우로 돌아가야 할 때다. 이곳에서 함께한 시간을 발판삼아 훨씬 멋지고 큰 사람이 되어 돌아올 거다. 그때까지 성대신문을 책임져 줄 모든 기자님께 진심 어린 응원과 감사를 전한다.

 

오유진 기자 five67@
오유진 기자 five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