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오유진 (five67@skkuw.com)

인터뷰-가수 알레프(이정재)



“일기장처럼 표현하고 공유하고 싶어요”
그의, 어쩌면 우리 모두의 20대 홀로서기에 관한 이야기

 

인디 신(scene)의 음악은 청춘들의 가지각색 취향에 맞춰 잔잔히, 그러나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그중엔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로 20대의 마음과 공명하는 가수 ‘알레프’도 있다. 다사다난했던 그의 삶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소년 ‘이정재’는 어릴 적 대부분을 해외에서 지냈다. 당시를 회상해본다면.
초등학생 때 부모님의 일 때문에 중국으로 이민을 가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대학을 미국으로 갔어요. 처음 한국을 떠날 땐 마냥 모험을 떠나는 것 같아 설렜던 기억이 있네요. 사실 해외나 국내나 사람 사는 건 모두 비슷해요. 식습관처럼 각 나라의 문화로 인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만 다를 뿐이죠. 어릴 때라 그런지 생활의 차이를 느끼긴 했으나 적응하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네요.


본인의 음악적 색은 어떠한지, 그것에 영향을 준 가수는 누군지.
기타로 작곡을 시작했으니 포크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이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장르의 음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 곡 안에서도 많은 장르를 담아낼 수 있기에 제 음악을 정확히 무슨 장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꼽아보자면 저의 음색이 제 음악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 음악적으로 동경했던 가수는 중학생 때부터 제이슨 므라즈, 제임스 모리슨, 데미안 라이스, 뮤즈, 메탈리카, 엘레 가든, 그리고 제이미 컬럼 정도였어요. 그렇게 어쿠스틱 팝과 메탈, 재즈를 위주로 듣다가 콜드플레이에 빠지면서 록 밴드에도 관 심이 생겼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장르 하나에 매이기보다는 다양하게 뻗어나가는 것이 제게 맞단 걸 깨달았어요. 그러다 보니 존경의 대상도 오랜 시간 동안 음악을 해오며 변화를 거듭한 아티스트로 바뀌 었어요. 그런 면에서 제게 불변의 1위는 마이클 잭슨이겠네요.


오랜 해외 생활을 그만두고 한국에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미국에서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어요. 군대에서는 일과가 끝난 후 개인 정비 시간이나 저녁 늦게 독서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인 연등이 있어요. 저는 그 시간에 주로 교회에 가서 기타를 치며 곡을 쓰거나 생활관에서 독서하면서 보냈어요. 원래는 전역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공부를 마치려고 했는데, 군 생활 중에 한국에서 음악을 내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군대에서의 독서는 작사에 많은 영향을 줬고요. 군대 선임의 소개로 알레프 전 멤버 한솔이를 만나 음원을 준비하다가 얼떨결에 소속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국에 남아 음악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25살의 나이에 2인조 알레프의 ‘정재’로 데뷔했다. *네이버 뮤지션리그를 통해 첫 싱글 앨범을 발매했다. 관련한 비화를 들려준다면.
당시 제가 전역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터라 한국의 음악 신에 대한 정보가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네이버 뮤지션리그를 통해 곡을 발매하고 홍보하며 네이버 웹툰 작가에게 앨범 표지를 맡길 기회도 얻었어요. 당시 쥬드 프라이데이 작가님의 웹툰 ‘진눈깨비 소년’을 재밌게 보던 중이었는데 명단에 작가님이 있어 들뜬 마음으로 요청했어요. 저는 알레프 로고를 모던하고 작게 붙이고 싶었는데 당시 소속사에서 이름이 눈에 띄어야 한다며 폰트를 키웠던 기억이 있네요.


데뷔로부터 약 2개월 뒤 첫 미니앨범을 발매했다. ‘알레프’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 ‘No One Told Me Why’가 타이틀인 이 앨범을 돌아본다면.
알레프의 순수함과 러프함을 가장 잘 보여준 앨범이라 생각해요. 대중에게 알려진 알레프의 모습이 담긴 앨범이라 의미가 있죠. 목소리와 창법도 다듬어지지 않아서 지금 들으면 놀라워요. ‘어떻게 저런 톤을 유지하면서 불렀지?’라는 질문도 하고요. 사실 록 밴드의 느낌을 내기 위해 제 본연의 목소리보다 더 텁텁하고 허스키하게 꾸며낸 목소리라 지금 흉내내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그동안 음악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고 나서 앨범을 들으니 다른 아티스트의 노래를 듣는 것 같은 느낌도 종종 받아요.


2019년 멤버의 탈퇴로 알레프가 이정재 개인의 활동명이 됐다. 2020년 3월에는 소속사를 떠나 홀로서기를 결정했다. 그때의 선택을 지금 돌아본다면.
소속사를 떠난 건 제가 원했던, 혹은 예상했던 길이었어요. 어느 단체에 소속돼 있으면 음악을 비롯한 많은 일들을 제가 원하는 대로 벌리거나 처리할 수 없어요. 당시 이러한 부분에서 생각이 많았습니다. 저는 곡을 많이 내고 싶었거든요. 지금은 그걸 실현하고 있으니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모든 트랙이 ‘불’이라는 소재로 연결된 미니 앨범 <홰홰>를 발매했다. 알레프의 음악적 색깔이 다채로워졌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음악적 스펙트럼이 음악을 만들면서 넓어진 것도 맞지만 이미 가지고 있던 걸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많은 음악가는 자신만의 색깔을 굳히고 나서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을 들어요. 저 역시 하나의 장르를 축으로 삼고 다른 색깔을 펼치라는 조언을 들었죠. 그래서 포크와 록 기반의 음악을 이어가다 <홰홰>부터 차근차근 다른 느낌을 부담스럽지 않게 들려드렸어요. 싱글 앨범의 경우 앨범 컨셉에 큰 신경을 쓰지 않지만 미니 앨범부턴 머리를 많이 써야 해요. 앨범을 작업하면서 곡들의 흐름과 스토리, 사운드의 질감 등 많은 부분을 맞춰 나가요. 하지만 앨범 전체를 듣는 사람은 많이 없잖아요. 저 역시 그 부분을 알기에 제작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건 곡이 얼마나 오래 갈지예요. 보통 오래 살아남겠다는 확신이 드는 곡을 타이틀곡으로, 나머지 곡들을 수록곡으로 추려서 미니 앨범을 제작합니다.


2021년 오랜 기다림 끝에 미니 앨범 <파수꾼>을 발매했다. 독자들에게 앨범을 소개해달라.
여건상 제작하기까지 3년 정도 걸린 앨범이에요. 계속 구상 중이다가 홀로서기를 한 뒤에야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앨범에서 저는 ‘호랑이의 숲’과 ‘파수꾼’을 가장 좋아해요. ‘호랑이의 숲’은 제 곡 중에서 제일 스토리텔링이 잘 된 곡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고, ‘파수꾼’은 당시 심리상태를 온전히 내비친 곡이기 때문이에요. 제 음악에는 우울한 가사가 많은데 ‘파수꾼’에는 ‘아무 일도 아녜요, 미운 사람이 되는 건’ 등 제 마음에 착 달라붙은 가사들이 나와서 좋아합니다. 영화의 제목을 채택한 것도 영화에서 다뤄지는 주변과의 갈등이나 뭔가를 지키려는 마음이 곡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이후 <네가 사랑한 것들을 기억할게>, <Hope>, <Night and Night> 등 여러 개의 싱글 앨범을 연이어 발매했다. 곡 ‘Night and Night’은 AppleMusic이 선정한 ‘2021 최고의 음악 100선’에 포함되기도 했다. 당시 작업을 활발하게 이어 나가게 된 연유가 있다면.
저는 늘 곡을 많이 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곡을 쓰는 게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일기장처럼 곡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공유하고 싶었어요. 잘 짜인 음악이 아니더라도 표현하는 기쁨을 실현해 준다면 뭐든 좋으리라 생각했고요. 그래서 홀로서기를 하며 최대한 많은 곡을 풀어내기로 했죠.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 님을 위해 쓴 헌정곡 ‘Hope’도 그 일환이었어요. 제이홉 님이 SNS 라이브 방송에서 제 노래를 튼 이후로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거든요. 제가 원하는 대로 곡을 맘껏 낼 수 있던 터라 감사의 표현을 음악으로 할 수 있었어요. 또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평가에 무던해졌어요. 할 일이 많아서 그런 걸까요? 이제는 그냥 작업에 몰두하는 순간을 즐기는 편이에요. 다만 누군가가 제 노래를 ‘오래 들을 것 같다’고 평하면 기분이 좋을 것 같네요.


싱글 앨범으로 가득 채운 2021년을 되돌아 보듯 정규 앨범 <21' Archive>를 2022년 1월 발매했다. 20대의 마지막을 기념한 앨범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2021년은 열심히 달렸어요. 작업 방식의 노하우도 생겼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더 열심히 할 힘을 얻은 해였습니다. <21' Archive>는 정규 앨범으로 분류되긴 했지만, 제목처럼 아카이브용 앨범이라 과거의 음악들을 모아둔 곳에 싱글 앨범을 하나 얹은 느낌이에요.


최근 발매한 싱글 앨범 <Sleep, by the sea>와 <Daisy (with 969)> 모두 누군가와 함께 작업했다. 각 앨범에서 협업한 분들을 소개하자면.
<Sleep, by the sea>에서는 시현 작가가 앨범 표지를 맡았어요. 원래 인물 사진을 찍는 작가가 인물이 아닌 피사체를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으로 의뢰했고 시현 작가가 이에 흔쾌히 응해줬습니다. 직접 바다에 가서 사진을 찍는 것도 처음이라 유쾌한 작업이었네요. <Daisy (with 969)>에서의 969는 처음의 2인조 알레프를 함께한 한솔이예요. 이제는 둘 다 홀로서기를 했기에 그 친구가 아티스트로서 가진 이름을 따로 명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인디 신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많은 영향을 받은 곳 중 하나인데 직접적으로 체감한 적은 있는지.
미디어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제가 데뷔 때부터 바라본 인디 신은 별다른 변화랄 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미디어는 자본이 뒷받침해주거나 트렌드에 맞춘 아티스트에게만 집중하는 게 현실입니다. 세간에 인디라는 이름을 겨우 알렸을 뿐 여전히 생태계가 작습니다. 다만 리스너들의 취향이 넓어짐에 따라 몇 보 전진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가만히 앉아 변화를 기다리기보단 계속해서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나가면 더 넓어진 인디 신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2년 반의 코로나 여파를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코로나로 공연은 거의 사라지고 그나마 있는 관중마저도 마스크로 인해 호응이 불가했어요. 그래도 저는 매달 음원을 내는 데 집중해 그나마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는 26일에 미니 앨범 <샤덴프로이데>가 발매된다고 알고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요새는 침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는 것이 취미입니다. 작업 후 몸이 힘들면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서요. 그만큼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곧 발매될 <샤덴프로이데>는 ‘슬픔을 아름답게 느끼는 시선에 대한 질문’을 컨셉으로 하는 앨범입니다. 올해 역시 <샤덴프로이데> 외에도 많은 곡을 발매할 계획이고, 지금 계획 중인 작업이 모두 잘 마무리된다면 정규 앨범도 준비할 것 같아요. 건강한 관심 부탁드려요.


성대신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전에 연극을 보러 대학로에 두어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일부러 ‘칵테일 사랑’ 을 들으며 마로니에 공원을 걸어본 기억도 있네요. 긴 인터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을 쏟아부을 수 있을 때 꾸준히 음악을 들려드리도록 평온하고 즐겁게 살아볼게요. 여러분들도 이런저런 나날들을 잘 보내시고, 앞으로 서로 멋진 사람이 돼 봐요.


◇네이버 뮤지션리그= ‘바이브(VIBE)’ 의 전신인 ‘네이버 뮤직’에서 음악가가 비디오나 오디오 파일을 업로드 해 대중에 노출할 기회를 얻는 플랫폼.
 

ⓒ알레프 제공
ⓒ알레프
앨범 <Fall In Love Again>의 표지
ⓒ벅스 캡처
<Sleep, by the sea>의 표지
ⓒ벅스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