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나래 기자 (naraekim3460@naver.com)

기사란 것은 묘하다. 형태만 보면 글인데 꽉 찬 내용들은 마치 보고서와 같고, 현재의 일들을 담아낸다는 점에선 기록의 기능도 큰 것 같다. 기사는 최대한 간결하게, 어떤 문장도 필요 없는 문장은 없어야 한다. 더 줄일 수 없겠다고 생각한 기사도 또 줄이고 또 줄일 수 있었다. 그렇게 눈에 뭐 하나 걸리지 않는, 매끄러운 기사가 만들어진다. 마감 직전엔 눈물을 머금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까지 쳐내며 한정된 지면을 원망하기도 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흥행을 보며 가볍게 ‘발달장애인’을 이번 기사 소재로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개강과 맞춰 흥행하는 드라마가 있어 금방 소재를 찾았으니 다행이다’라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오만이었다. 발달장애인과 관련한 사회의 문제점은 너무나 많고 광범위했다. 돌봄, 교육, 취업, 주거, 탈시설 등.. 기사를 발간하는 마지막 주가 돼서까지 기사 방향도 잡히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기사가 아주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다루는 범위는 크고 내용의 수준은 얕다. 이건 분명 나의 능력 부족 때문이다. 하지만 반 페이지짜리 기사로는 정의되지 않는 세상을 내가 구태여 정의하려고 한 것도 하나의 이유라 책임을 돌려본다. 기사 주제는 ‘청년 발달장애인의 자립’인데, 취재 중 한 전문가 분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발달장애인 의 자립을 왜 하나로 정의해야 하나요?” 그렇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자립이 무엇이다’라고 정확히 정의하긴 힘들 것이다. 삶의 과정으로써 자립을 추구하거나 겪을 뿐이다.

난 학보사 기자를 독자에게 ‘꼭꼭 씹어 떠먹여 주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성대신문은 일간지가 아닌 주간지니 사회면에서 단편적인 브리핑은 잘 담지 않는다. 현상을 논하며 배경지식을 충분히 설명하고, 기사의 재미까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꾸 현상을 간단히 구조화하고 명쾌한 답을 찾으려고만 했던 것 같다.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세상이라 기사를 쓰고자 했으면서 내 짧은 취재로 정답을 내려고 했으니 오만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신문 지면의 양은 한정돼 있다. 기자에겐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지면의 한정은 독자의 입장에서 받아들 일 수 있는 정보의 양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나도 인터넷에서 다른 기사를 읽다가 길면, 쭉 아래로 스크롤을 내려버리니 말이다. 복잡한 세상사더라도 우리는 어려운 문제 중 더 문제인 것을 취사선택해 알려야 한다. 난 지금까지 교과서가 손에 쥐어주는 공부만 했지 먼저 주제를 찾아 다방면으로 공부하진 않았다. 하지만 하나의 기사를 위해선 주제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내용을 타기사로, 논문으로, 책으로 공부하고 전문가를 찾아가 직접 묻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논하며 ‘나야말로 일자리를 갖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자립을 잘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난 성대신문에서 ‘일’을 하며 그 의미를 깨닫고 있다. ‘일’ 때문에 바빠 사람들과 사적인 이야기는 못하더라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좋다. 밤늦게라도 끝까지 부여잡고 집중을 쏟을 수 있는 일 말이다. 드라마 속 우영우는 자신의 맡은 사건 속 내용으로부터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하루하루 성장해나간다. 나 역시도 기사 하나하나를 발간하며 넓은 세상 속에서 살 아갈 나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김나래 기자 wingnara1201@
김나래 기자 wingnara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