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권수빈 기자 (angela0727@g.skku.edu)

인터뷰 - 이슬예나 PD

콘텐츠의 핵심은 ‘의외성’과 ‘리얼리티’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재밌는 콘텐츠 제작하고 싶어 

 

“펭-하!” 스타 크리에이터를 꿈꾸며 남극에서 한국으로 온 자이언트 펭귄이자 EBS 최초의 연습생, 펭수. 2019년에 등장해 지금까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펭수의 곁에 언제나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펭수의 한국 엄마’라고 불리는 이슬예나 PD다. 지난달 3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EBS 본사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린 시절의 이슬예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하고 싶은 일이 많은 학생이었죠.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살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른들께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공부도 열심히 했죠. 하지만 성실하게 공부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고민이 있었어요. ‘이렇게 공부만 하다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죠. 스스로를 성찰할 시간이 길었던 만큼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고 속앓이도 많이 했어요. 그때 제게 힘이 돼줬던 것이 바로 라디오였어요. TV 방송을 시청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라디오 방송은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와 소통하는 느낌을 줬어요. 방에서 혼자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DJ가 친구처럼 말을 걸어주는 기분이 들었죠. 라디오에서 소개되는 사연 속 주인공에게 유대감을 느꼈어요. 머릿속이 너무 복잡할 때는 숨통을 틔우기 위해 시를 쓰기도 했어요. 짧은 시를 쓰면서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만들어갔죠.

신문방송학과 진학을 선택한 이유는.
라디오를 통해 위로받던 그 시절부터 PD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아요. 시를 쓰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제가 창작 활동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죠. 그렇지만 반드시 PD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신방과를 선택한 건 아니었어요. 막연하게 신방과의 전공 수업이 재미있어 보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학과에 멋진 사람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죠.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던 점이 정말 좋았어요. 학과 특성상 콘텐츠 제작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장점이죠. 그렇지만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고 꼭 신방과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미디어 관련 학과를 졸업해야만 PD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탓에 학부생 시절에 배우는 내용이 실무와 크게 일치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다른 분야를 배워도 좋을 거 같아요. 지금 함께 일하는 PD들도 다양한 학과를 졸업했어요. 동료들을 보며 심리학, 물리학 등 다양한 학문을 공부해 식견을 넓히는 것이 PD로서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격적으로 PD의 꿈을 꾸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대학 시절에도 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저 자신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어요. ‘안정적인 일’과 ‘열정을 다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기가 길어지다 보니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고민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교내외 다양한 활동을 하며 대학 생활을 채워나갔어요.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인턴 생활도 해봤죠. 영상제작동아리의 일원으로 드라마를 만들며 콘텐츠 제작 경험을 쌓았어요. 이때 만든 영상을 영상제에 출품했는데 제 작품을 감명 깊게 봤다는 관객의 반응을 듣고 무척 뿌듯했어요. 스스로 만족하는 콘텐츠를 창작하는 일도 좋지만 제가 라디오 들었을 때 감동을 받았던 것처럼 타인에게 좋은 감정이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PD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굳혔죠. 영상을 제작하는 동안 실무 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제가 이 분야에 적성이 맞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어요.


졸업 후 사회 초년생이 된 이슬예나의 모습은 어땠나.
PD의 꿈을 가진 이후 취업을 위해 방송국에 지원서를 넣어봤지만 여러 차례 낙방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여러 기업에 지원서를 넣었고 유일하게 SK텔레콤에 합격하면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어요. 선망하던 직업은 PD였지만 사회생활을 PD로서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죠.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시기도 아니었기에 돈을 버는 게 급했어요. 그래도 운 좋게 희망하는 부서였던 마케팅 팀에 배치돼 나름대로 즐겁게 일했어요.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죠. 안정적인 직장에서 ‘안정적인 일’을 하며 이대로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직업이 인생에 차지하는 부분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느꼈죠. 제가 진정으로 원하던 ‘열정을 다할 수 있는 일’에 다시 한번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방송국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이후 EBS 공채에 합격해 PD로서의 삶이 시작됐어요.

EBS 입사 후에는 어떤 일들을 했는지.
EBS에 입사하는 PD의 조연출 기간은 타방송국에 비해 매우 짧아요. 평균 1년 6개월에서 2년 정도 조연출 생활을 하게 되죠. 짧은 조연출 생활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해요. 비교적 이르게 자신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출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빨리 느끼게 돼요. 여러 프로그램의 조연출로 일했는데 ‘장학퀴즈’ 조연출 시기에는 고등학생 출연자들을 직접 만나러 다니기도 했어요. 스튜디오에서 주조정실에 계신 PD님의 사인에 맞춰 촬영 진행을 돕기도 했죠.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모여라 딩동댕’과 ‘딩동댕 유치원’은 주로 7살 이하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이렇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연출할 때는 그들이 어떤 것을 재밌어하는지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초등학생만 돼도 어른과 선호가 비슷한데 5살 정도의 어린이가 재밌어하는 포인트를 잡는 것은 정말 어려웠거든요. 오랜 고민 끝에 제가 봐도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결론지었어요. 억지로 동심으로 돌아가서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프로그램 내에서 사용되는 소재나 표현은 어린이를 위한 정제된 것으로 구성하되 어른이 봐도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아무리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교훈적인 내용만을 담으면 지루해질 것이라 생각했죠. 그래서 더욱 콘텐츠의 재미에 집중했어요.

‘자이언트 펭TV’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EBS는 공영방송이라서 대중의 취향을 쫓기보다 교훈이 될 수 있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지 않을 콘텐츠를 주로 생산해왔어요. 그래서인지 대중들에게 EBS는 유치하고 지루한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선한 영향력을 선보일 수 있는 EBS라는 채널 안에서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것이 뿌듯했지만 열심히 연출하고 기획한 프로그램의 반응이 미미할 때는 헛헛한 감정도 들었어요. 대중에게 선보일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데 정작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항상 아쉬웠죠. 그래서 사랑받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누가봐도 재밌고 누구나 사랑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죠. 고민을 거듭하던 중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의 익숙하고 뻔한 콘텐츠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콘텐츠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외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펭수는 그동안 EBS가 선보인 캐릭터와는 결이 다른 친구예요. EBS에서 다수의 비인간형 캐릭터들을 선보였던 것처럼 펭수 역시 사람이 아닌 펭귄이자 ‘의외성’을 첨가한 캐릭터예요. 몸집도 크고 목소리도 특이해요.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헤엄쳐 온 ‘관종’ 펭귄이고 EBS 최초의 연습생이기도 해요. 이렇게 대중들이 봤을 때 의외라고 느껴질 요소를 ‘자이언트 펭TV’ 콘텐츠에 녹여냈어요.

펭수가 ‘어른이’들의 사랑을 받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펭수가 대중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어요. 6개월 정도 무명 시절이 있었고 그동안은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그러다가 ‘EBS 육상대회’ 콘텐츠를 계기로 펭수가 많은 분께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의외성’과 더불어 성공하는 콘텐츠가 지닌 또 하나의 키워드는 ‘리얼리티’라고 생각해요. ‘자이언트 펭TV’는 대본에 맞춰진 대사가 아니라 펭수가 즉각적으로 내뱉는 말들로 채워지죠. 인지도를 얻게 된 펭수가 많은 사랑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렇게 펭수가 던진 말에 있어요. 펭수 특유의 투박한 위로가 현실을 살아가는 ‘어른이’의 마음을 어루만졌죠. 사회생활에 지쳐있는 어른을 유쾌하게 위로하는 펭수의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해요. EBS의 연습생인 펭수가 “김명중!”이라고 사장님 이름을 외치는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대리 만족을 느끼게 했죠. 이런 ‘리얼리티’가 펭수의 인기에 한몫했다고 생각해요. 모든 ‘어른이’들의 마음속에는 ‘어린이’가 존재하기에 펭수가 더 사랑받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는 어른에게도 투정 부리고 싶은 어린이와 같은 속마음이 있을 텐데 펭수가 그런 어른의 마음을 대신 표출해줬기에 더 큰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딩대’의 소재를 선정하는 방법이 있다면.
‘딩대’는 처음부터 2030 세대를 겨냥하고 만들었던 콘텐츠였어요. 실생활과 맞닿아 있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의 현실에 맞춘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죠. ‘딩동댕 유치원’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가 살다 보면 꼭 모든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닐 때도 있잖아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관계는 깨끗이 끊어낼 수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내용을 20대에게 전달하는 프로그램은 많지 않아요. 시청자가 어린 시절 봤던 프로그램에서 얻었던 교훈이 현실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반전을 담고 싶었어요. ‘딩대’가 2030 세대에게 특정 주제에 관해 함께 생각해볼 기회를 만드는 일종의 커뮤니티로서 기능하길 바랐죠. 그래서 공감 가는 주제를 찾기 위해 제작진의 실제 경험에서 소재가 나올 수 있도록 동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기도 하고 요즘 화제가 되는 일은 무엇이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려고 노력해요. 그 결과 ‘연애톡강’과 같이 누구나 공감할 고민을 소재로 영상을 기획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는 어떤 콘텐츠를 선보이는 PD가 되고 싶은가.
어린이 프로그램을 연출할 때도, ‘자이언트 펭TV’나 ‘딩대’를 연출할 때도 저는 항상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누구에게나 재밌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PD가 되고 싶어요. 어렵긴 하지만, 재미와 동시에 새로움을 줄 수 있는 기획을 하는 것 역시 목표예요. ‘의외성’과 ‘리얼리티’를 살려 많은 분의 사랑을 받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PD로 남고 싶어요.

이슬예나 PD.
ⓒ이슬예나 PD 제공
ⓒ이슬예나 PD 제공
퇴근을 외치는 펭수의 모습.
ⓒ'자이언트 펭TV' 유튜브 캡처
채널 '딩대'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딩대' 유튜브 캡처
펭수와 이슬예나 PD의 모습.
ⓒ이슬예나 PD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