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송선교 기자 (ddoong0404@naver.com)

스케치코미디, 유튜브서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아
하이퍼 리얼리즘과 풍자로 공감대 끌어내

 

“오늘 키스할 거야?” “몰라, 상황 봐서.” 오래된 연인이 모텔로 향하며 나누는 대화다. 이는 스케치코미디의 유행을 알린 유튜브 채널 ‘숏박스’의 ‘장기연애’ 시리즈 ‘모텔이나 갈까?’ 편에 나오는 대사다. 짧은 영상 속 익살스러우면서도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대사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현재 유튜브에서 ‘숏박스’, ‘너덜트’ 등의 채널을 필두로 스케치코미디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수많은 영상이 난무하는 유튜브에서 최신 유행을 이루고 있는 장르, 스케치코미디에 대해서 알아보자.

’숏박스’와 ‘너덜트’, 유행을 이끌다
KBS 공채 개그맨 출신인 김원훈, 엄지윤, 조진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숏박스’는 ‘장기연애’, ‘찐남매’ 시리즈를 포함한 다양한 영상을 통해 스케치코미디의 유행을 이끌고 있다. 유행의 시작을 알린 ‘장기연애’ 시리즈 ‘모텔이나 갈까?’ 편은 1100만 회 이상의 조회수와 11만 개 이상의 ‘좋아요’를 기록했으며 해당 영상 업로드 당시 1만 명 이하였던 채널 구독자 수는 현재 219만 명을 돌파했다. 해당 영상 속 커플은 각자의 스마트폰만 보면서 식사하거나 잊고 있던 11주년 기념일이 오늘임을 자각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오래된 연인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현실적이고 익살스러운 상황 묘사에 공감하고 웃는다. 스케치코미디 유행의 또 다른 선두주자인 채널 ‘너덜트’도 아내 대신 중고 거래를 나온 남편의 모습, MBTI에 과몰입하는 사람의 모습 등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인기를 얻었다. 두 채널의 인기는 유튜브 내 '스케치코미디'라는 장르의 유행으로 이어졌다. 김이준(경영 17) 학우는 “유튜브 쇼츠나 추천 영상에서 스케치코미디를 많이 볼 수 있다”며 “스케치코미디가 유튜브에서 하나의 유행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스케치코미디의 어제와 오늘
스케치코미디란 짧고 유머러스한 연기가 △녹음 △라이브 무대 △영상 등을 통해 공연되는 것을 말하며 보통 1~10분 길이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호흡이 빠른 단편 코미디를 일컫는다. 이는 미국의 *보드빌과 영국의 *뮤직홀같은 대중오락 공연에서 유래됐다. 1975년 미국에서 스케치코미디만으로 이뤄진 TV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가 방영되면서 스케치코미디는 대중매체를 통해 빠르게 양산됐다.

KBS ‘개그콘서트’,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도 스케치코미디만으로 이뤄진 대표적인 TV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폐지됐고, 일부 개그맨들은 현재 유튜브로 무대를 옮겨 활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여러 명이 합심해 한 사람을 속여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는 깜짝 카메라 등이 유튜브 코미디 채널을 선도하는 콘텐츠였다. 하지만 현재는 사전에 만든 각본을 바탕으로 빠른 호흡의 연출을 보여주는 유튜브 스케치코미디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김서인(융합생명 21) 학우는 “유튜브 스케치코미디는 개그맨들이 지상파 방송보다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전문적이고 세심하게 짜인 연기와 연출, 신선한 아이디어를 보여주기에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하이퍼 리얼리즘
유튜브 스케치코미디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이란 주관을 배제하고 사진처럼 극사실적인 표현을 추구하는 예술 사조에서 유래한 미술 용어다. 근래에는 극사실적인 내용과 연출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이퍼 리얼리즘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강력한 공감대의 형성이다. 이에 대해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류웅재 교수는 “사소한 일상의 요소가 콘텐츠로 변하는 순간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며 “현실을 재현하는 콘텐츠는 사람들의 공감대를 강하게 끌어낸다”고 설명했다.

채널 ‘싱글벙글’은 하이퍼 리얼리즘을 통해 인기를 얻은 대표적인 스케치코미디 채널이다.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의 대화와 의상까지 완벽히 고증했다고 평가받는 ‘부부 시리즈’는 하이퍼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김이준 학우는 “싱글벙글의 영상 ‘하지마..’에서 배고플 땐 화가 많이 났다가 배가 점점 차면서 화가 풀리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현실 부부의 모습 같다고 느껴 웃음을 터뜨렸다”며 “하이퍼 리얼리즘 영상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한 디테일을 댓글을 통해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류 교수는 하이퍼 리얼리즘의 인기에 대해 “코로나의 유행으로 과거의 일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갈증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숏폼 콘텐츠의 유행이 하이퍼 리얼리즘과 맞물려 지금의 인기를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싱글벙글의 스케치코미디 영상도 대부분 분량이 2~3분 안팎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 피로감을 느낀 현대인이 짧은 시간 안에 핵심을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기 시작하며 하이퍼 리얼리즘과 숏폼 형태가 결합한 스케치코미디가 유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평론가는 “숏폼 형태의 하이퍼 리얼리즘은 자신이 선호하는 콘텐츠가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빠르게 공감할 수 있는 특징이있다”고 덧붙였다.

풍자와 해학이 담긴 스케치코미디
유튜브 스케치코미디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사회에 대한 풍자와 해학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채널 '킥서비스’의 영상 '여기가 인스타 핫플이래’ 속 2032년 공사판에서 운영하는 감성 카페에서는 더티 플레이팅이라며 담배꽁초와 모래, 쓰레기 등이 음식과 함께 서빙된다. 이는 고객의 편의보다 매장의 분위기와 감성만을 추구하는 일부 카페의 모습을 비틀고 과장해 10년 후 미래에 빗대 해학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킥서비스의 영상을 본 김서인 학우는 “영상 속 미래는 매우 과장됐지만 한편으로는 실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극단적인 사회 풍자를 보며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상 제작자인 킥서비스는 “모두가 공감할 만한 사회의 모습을 10년 후라는 형식으로 과장하다 보니 자연스레 풍자 효과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케치코미디, 너도 할 수 있어
최근 다양한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스케치코미디에 도전하고 있다. 헬스 유튜브 채널인 ‘피지컬 갤러리’도 헬스를 주제로 한 스케치코미디 영상을 업로드했다. ‘이유져쓰’와 ‘무비컷’과 같은 유튜브 채널 운영자들은 직업 개그맨이 아님에도 스케치코미디를 통해 유튜브에 입문했다. 채널 이유져쓰는 “전문적 장비나 기술 없이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적은 비용과 인원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어 어려움 없이 시작했다”며 제작자로서 스케치코미디의 장점을 설명했다. 한편 주로 현실에서 소재를 찾는 스케치코미디의 특성에 따른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류 교수는 “일상을 담아내기 위해 특정 대상이나 계층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표현하다가 편견을 확대하고 재생산할 수 있기에 제작할 때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드빌=189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 유행했던 버라이어티쇼의 일종.
◇뮤직홀=음악적 오락을 제공하는 극장. 특히 영국에서는 노래와 춤 등을 뒤섞은 보드빌을 보여주는 극장을 가리킴.
 

채널 너덜트의 영상 '당근이세요?'.
ⓒ '너덜트' 유튜브 캡처
채널 싱글벙글의 영상 '하지마..'.
ⓒ '싱글벙글' 유튜브 캡처

 

채널 킥서비스의 영상 '여기가 인스타 핫플이래'.
ⓒ'킥서비스' 유튜브 캡처
채널 피지컬갤러리의 영상 '나오라고'.
ⓒ '피지컬갤러리' 유튜브 캡처

 

 

일러스트 | 서여진 기자 duwls1999@
ⓒ '숏박스' 유튜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