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국내의 많은 전문가들은 국내기업은 선진 기업을 따라 하는 패스트팔로우(추격자)에서 벗어나서 퍼스트무버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경제와 기업들의 빠른 추격자 전략이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성장의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퍼스트무버(선도자)로 가야 하며 이를 달성 하기 위한 방법으로 월드퍼스트(세계최초)를 강조한다.

세계 최초 하면 떠오르는 기업이 있다. 바로 일본의 소니라는 회사이다. 지금은 게임, 음악, 영상 등의 사업이 전체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콘텐츠 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한 기업이 되었지만, 80년대, 90년대 세계 가전시장을 주름잡았던 회사이다. 오디오, TV, 컴퓨터 등 소니 가전은 늘 세계 최초의 고가 제품이었다.

소니는 1955년에 트랜지스터를 사용해서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었다. 1960년에는 흑백 트랜지스터 텔레비전, 1969년 컬러 텔레비전인 트리니 트론을 출시했다. 소니가 세계 1위의 텔레비전 제조기업으로 도약한 발판은 트리니 트론 기술이다. 2008년 단종되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1억 대 이상 팔렸다.

그다음은 1979년에 소니는 세계 최초의 워크맨(Walkman)인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시장에 내놓는다. 집에서 듣던 음악을 걸어 다니며 들을 수 있는 워크맨은 지금의 아이폰이 나왔을 때 수준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니의 라디오, TV, 오디오 제품은 아나로그 기술에 기반을 둔 제품들이다. 소니의 월드퍼스트 제품이 퍼스트무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아나로그 기술이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 TV로 넘어오면서 삼성, LG에 밀리게 되었고, 워크맨은 결국 MP3 플레이어의 등장으로 시장에서 사라졌다. 또한 휴대폰 사업도 실패로 끝났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소니가 가전 분야에서 계속해서 1등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제품의 디지털화를 제대로 준비하고 혁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나로그 기술에서는 축적된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남들이 단시간에 따라가기는 어렵다.

디지털 환경으로 바뀐 오늘날의 시대에서는 세계 최초 제품, 기술은 의미가 없다. 후발주자가 얼마든지 새로운 차별성으로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 애플이라는 회사는 월드퍼스트 제품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애플을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이라 부른다. 애플은 후발주자이지만 세상을 뒤흔들만한 혁신으로 기존 시장의 선발 진입자를 몰락시키고 시장 전체 파이를 더 키우고 1등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세계 최초의 MP3 제품은 우리나라 기업이 해냈다. 1998년 3월 엠피맨이라는 제품 이름으로 엠피맨닷컴이라는 기업이 세계 최초로 시장을 개척했다. 그 이후 대중 시장화를 이끈 것은 역시 국내 기업인 레인콤이었다. 2001년 미국 시장 진출 6개월 만에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잘 나가던 기업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해에 애플이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레인콤에서 생산하는 아이리버 제품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아이팟의 성공 요인은 바로 아이튠즈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변화에 있었다. 아이튠즈를 통해 음악 콘텐츠를 구매하는데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아이팟을 기존 MP3 플레이어 중의 하나가 아니라 아이팟 그 자체로 새로운 제품으로 인식된다. 많은 소비자들은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는 애플이 만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을 ‘연결하는 것 (Creativity is just connecting things)’이라고 정의한다. 스탠포드대 연설에서 자신의 인생을 연결하는 지점(connecting the dots)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창의성의 본질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통념처럼 꼭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걸 만든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단순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가 아니다. 단순한 모방은 물음(Why)이 없다. 치열한 고민이 없다. “왜? 이렇게 했을까? 그다음으로 이렇게 하면 어떨까?” 재해석을 통해서 다름을 만들어라.

결국 4차 산업 시대에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계 최초만을 추구할 이유는 없다. 현재 나와 있는 제품에서도 가능하다. 혁신제품은 다름을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전자전기공학부 김용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