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은미·이서현 기자 (webmaster@skkuw.com)

반촌돋보기 - 2022년 종로구·수원시 재난 보고서

재난은 사람들에게서 일상을 빼앗는다. 올해 여름은 기후 변화로 인해 기록적인 더위와 폭우가 잇따랐고, 곳곳에 도사리는 화재의 위험은 여전하다. 오랜 시간 지속되며 일상을 변화시키는 재난도 있다. 지난 2년간 우리 곁에 머문 코로나19는 익숙했던 시절의 모습을 도리어 낯설게 만든다.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됐을 때, 우리를 둘러싼 마을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본지는 종로구와 수원시의 이야기를 살펴봤다.

 마을 휩쓴 폭우, 침수된 반지하 주택
“물이 사방에서 막 쳐들어오니까 손주가 퍼내다가 던져놓고 나가자고 끌어잡더라고요. 우리 집은 무릎까지 물이 찼지, 다른 집은 가슴팍까지도 찼어.” 수원시 고색동 반지하 연립주택 거주자인 박군자(80)씨는 유례없던 폭우의 현장을 떠올렸다. 지난달 폭우로 인해 수원시에 위치한 가구 중 510가구가 침수됐다. 박 씨의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롱과 침대가 침수되고 장판과 벽지가 울어 자택에서 지내기 어렵게 됐다. 박 씨는 정든 집을 뒤로 한 채 근처 친인척의 집으로 대피했다.
수원시는 침수피해 가구의 도배·장판 시공을 지원하며 주민들의 일상 회복을 위해 발 빠르게 대응했다. 수원시청 도시재생과 주거복지팀 관계자는 “지역 자체의 돌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집수리 봉사단체와 더불어 지역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형태로 복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수리에 참여한 희망둥지협동조합의 문상철 대표는 “집에 들어갈 수 없어 차에서 숙식을 해결하시는 분이나 전봇대를 연결한 끈에 젖은 옷을 말리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고 빠른 복구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전했다. “바닥을 말리는 데 필요한 선풍기나 열풍기는 주민분들의 도움으로 조달하고, 봉사자분들과는 벽지와 장판을 갈고 전등을 교체하는 등 차근차근 수리했어요. 역할을 세분화해 효율적으로 복구하려 노력했죠.” 문 대표는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며 말했다. 12개의 봉사 단체와 주민들의 노력 끝에 지난 8일까지 총 159가구의 도배·장판 시공이 완료됐다. 박 씨의 자택 역시 지원 대상 가구로 선정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폭우가 발생한 지 약 일주일 후, 박 씨는 복구가 완료된 자택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지난달 20일 반지하 주택의 거주민 이주 지원과 차수벽 설치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수원시청 시민안전과 관계자는 “이주 지원은 담당 부서에서 논의 중이며, 차수벽 설치는 향후 재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무더위에 시름했던 쪽방촌 주민들
올여름은 무더위와의 싸움이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수도권 평균 기온은 26.4℃로 *평년보다 1.7℃ 높았으며 폭염일수 또한 평년보다 2.9일 많은 5.8일을 기록했다. 폭염은 쪽방촌 주민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와닿았다. “보통 일이 아니었어. 창문 다 열어놓고 있어도 더워서 살 수가 있어야지.”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박기준(64)씨가 올여름을 떠올리며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돈의동 쪽방촌에는 501명이 거주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빈집에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이곳은 현재 84개동의 건물과 730실의 쪽방으로 이뤄져 있다.
서울시는 폭염에 대비해 △남대문 △돈의동 △서울역 △영등포 △창신동 5개의 쪽방촌에 에어컨 150대를 설치했다. 돈의동 쪽방촌도 일부 건물의 복도에 에어컨이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의 조치가 쪽방촌의 규모를 생각했을 때 충분하지 않다는 반응도 있다. “여긴 언제 에어컨이 들어올지 몰라요. 창문만 열어놓고 있는 거지.” 길훈섭(54)씨의 쪽방 앞 복도에는 여전히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아 탁상용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나야 했다. “더울 땐 집 밖으로 나가요. 청계천 다리 밑이 좀 시원하고, 너무 더우면 은행에라도 가야죠.” 돈의동 쪽방촌에는 주민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무더위쉼터가 마련돼 있지만 길 씨는 쉼터에 가지 않는다. “거기 가면 에어컨도 있고 좋아요. 근데 난 못 가요. 나처럼 일 안 하고 집에만 있는 사람이 가기엔 조금 눈치가 보이더라고.”
한편 종로구는 454명의 재난도우미를 파견하며 폭염취약계층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종로구청 어르신가족과 박영선 주무관은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재난도우미는 지원 대상자에게 안부 전화를 하고 거주지에 방문해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길 씨 또한 주변의 보살핌을 언급했다. 길 씨에게 여름에 가장 필요한 것을 묻자 그는 “누가 방문 안 해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이곳”이라며 “날씨는 그냥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하는 건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답했다. 여름이 끝나며 쪽방촌 주민들은 한시름을 덜었지만, 매년 강해지는 무더위에 주민들의 걱정은 늘어간다.

화재에 취약한 주거용 비닐하우스
수원시에는 농업용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주거용 비닐하우스’가 10개소 존재한다. 권선구에 위치한 주거용 비닐하우스는 검은색 차양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앞에는 빨래 건조대와 각종 주방용품, 다 쓴 연탄과 LPG 가스통이 자리했다. 주거용 비닐하우스는 주택이 없는 경제적 취약계층의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수원시의 경우 농업 종사자들의 임시 주거 공간이 되기도 한다. 수원 남부소방서 박재권 소방위는 “거주자 대부분은 주택이 따로 있지만 농업을 위해 불규칙적으로 비닐하우스에 거주한다”고 전했다.
비닐하우스는 화재에 취약한 시설 중 하나다. 비닐과 차양막, 보온재 등 빠르게 연소하는 가연성 물질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도시가스가 연결돼 있지 않은 주거용 비닐하우스의 경우 연탄 혹은 LPG가 빈번히 사용돼 화재의 우려가 더 크다. 박 소방위는 “비닐하우스에는 콘크리트 격벽 등 불길을 막아줄 구조가 없어 화재 시 순식간에 전소한다”며 “비닐하우스에 사람이 거주한다면 많은 사상자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수원시는 비닐하우스 화재를 예방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수원 남부소방서는 주거용 비닐하우스에 소화기를 지급하고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했다.
또한 화재가 빈번한 겨울철에는 주거용 비닐하우스를 직접 방문해 소화 설비를 점검한다. 화재 발생 시 대응에 관해 박 소방위는 “각 센터에서 주거용 비닐하우스의 위치를 사전에 파악해 출동로를 미리 구상해 둔다”고 전했다.
한편 수원시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사업’을 통해 주거취약계층이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수원시청 도시재생과 임형준 주무관은 “주거취약계층이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할 시 해당 주택의 시설을 정비하고 가구 등의 물품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멈춰버린 어르신들의 쉼터
지난 5일 방문한 혜명경로당에서 노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이는 코로나19 이전,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여기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음식도 나눠 먹었는데 지금은 못 그래서 안타까워.” 12년째 혜명경로당에서 일해 온 김용우 회장은 작은 한숨과 함께 아쉬움을 표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종로구 독거노인 수는 5,895명에 이르고, 63개의 경로당이 종로구에 위치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대부분의 경로당들이 운영을 중지하며 노인들은 발길을 향할 곳이 없어졌다. 1983년부터 현재까지 40여 년 동안 운영된 혜명경로당 역시 정부 지침으로 인해 지난 2년간 문을 닫아야만 했다. “여기 안 나오니깐 갈 데도, 의지할 곳도 없어. 이렇게 경로당에 와서 대화하는 낙으로 살았었는데.” 김 회장은 혜명경로당이 닫혔던 지난 2년 동안의 쓸쓸함을 토로했다.
코로나19가 완화됨에 따라 혜명경로당은 올해 초부터 손님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다시 문을 연 혜명경로 당은 정부의 지침을 철저히 지키며 운영하는 중이다.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취식 금지를 엄격히 준수한 결과 경로당 내 감염사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코로나19 이전만큼의 모습을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다. 등록 인원은 30~40명대지만 취식 금지를 비롯한 감염 예방 지침으로 인해 실제 방문자는 20~30명 남짓이다. 김 회장은 “코로나가 조금 더 나아졌을 때 이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상황 속 마을이 아이를 돌보는 방법
오전 9시, 책가방을 멘 몇몇 아이들은 학교가 아닌 ‘해아전’으로 향한다. 혜화초등학교 근처에 위치한 해아전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우리동네키움센터 중 하나로, 만 6~12세의 아이들을 보호자 대신 돌보는 기관이다. 이용자는 ‘정기돌봄’과 ‘일시돌봄’ 중 하나를 택해 아이를 맡길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휴교로 센터를 찾을 경우 일시돌봄에 포함되는 ‘긴급돌봄’을 이용하면 된다. 긴급돌봄은 예약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당일 예약 후 바로 돌봄을 맡기는 것 역시 가능하다.
“코로나가 심해져서 학교에 나가지 않을 때는 오전부터 센터를 찾은 아이들에게 온라인 학습을 지도하고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유영애 센터장은 “학기 중 정규 운영 시간은 오후 1시에서 7시지만, 긴급돌봄을 희망한다면 오전 9시부터 센터를 찾을 수 있다”며 “학교 휴교가 길어질 때는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 이번 3월부터는 7시까지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일시돌봄으로 맡겨진 아이들은 오후부터 진행되는 정규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정규 프로그램은 △ 종로구체육회 체육활동 △연극활동 △PBL활동 등으로 구성된다. 유 센터장은 “일시돌봄 아이들 중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로 인해 정원을 초과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인원을 나눠 절반은 프로그램을, 나머지 절반은 다른 활동을 진행하는 등 융통성 있게 조정해 운영했다”고 답했다.
유 센터장은 일시돌봄 이용자 증가에 따른 어려움을 묻자 “인력이 부족해 고민이 컸다”고 답했다. “오전에는 2명이서 아이들을 돌봐야 해서 업무가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인원 충원을 요청했지만 잘 진행되지 않았죠.” 고민 끝에 유 센터장은 노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시니어클럽 및 서울시의 안심 일자리 사업과의 연계를 통해 해결을 모색했다.
그럼에도 인력 부족 문제는 여전하다. 오후에 출근하는 시간제 교사 2명은 4시간 동안만 근무해 그 외의 시간에 아이를 돌볼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 센터장은 “충원을 요청했지만 여전히 4명이서 근무하는 상태”라며 “인력이 늘어나 더욱 질 높은 서비스와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달 폭우로 침수됐던 고색동 반지하 연립주택 수리 현장.
지난달 폭우로 침수됐던 고색동 반지하 연립주택 수리 현장.
ⓒ희망둥지협동조합 제공.
작은 창 앞에 탁상용 선풍기 하나가 놓여있는 돈의동 쪽방촌 내부의 모습.
작은 창 앞에 탁상용 선풍기 하나가 놓여있는 돈의동 쪽방촌 내부의 모습.
수원시 권선구에 위치한 주거용 비닐하우스의 모습.
수원시 권선구에 위치한 주거용 비닐하우스의 모습.

 

d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혜명경로당의 외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해아전 아이들.ⓒ해아전 제공.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해아전 아이들.
ⓒ해아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