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수현 편집장 (kshyunssj@skkuw.com)

며칠 전 열린 에스카라에서는 축제를 즐기는 다양한 국적의 성균인을 만날 수 있었다. 평소에도 경영관 앞을 지나거나, 강의실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여러 언어가 귀에 꽂힌다. 영어부터 중국어, 일본어, 가끔은 어느 나라의 언어인지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생소한 언어도 들려온다. 올해 우리 학교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4,751명이다. 대면 수업이 늘어난 요즘, 우리 학교에 외국인 학생이 많다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체감하고 있다.

외국인 학생들은 강의실 밖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공수업과 교양수업 모두, 한국인 학생으로만 구성된 수업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됐다. 많은 수업을 같이 수강하는 만큼 수업 내 팀플 등의 활동도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의 학생이 함께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가 한국인 학생과 외국인 학생의 융합을 꾀할수록 학생들 간의 거리는 더 멀어지는 듯하다. 외국인 학생과의 팀플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불만은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불만의 가장 큰 부분은 소통이 어렵고 문제를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탓인지 외국인 학생이 많은 수업에서는 한국인 학생끼리만 조를 짜려고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려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다.

무조건 이해하라는 말은 못 하겠다. 필자도 외국인 학생과 함께 팀플을 해본 경험이 적지 않다. 번역기를 돌려 가며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사소한 뉘앙스부터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은 분명 번거롭고 어렵다. 눈을 흐리게 뜨고 눈앞에 있는 과제만 하고 싶어도 분명히 극복해야 할 문화적 차이도,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불편을 겪고 있다는 생각 아래 불편은 미움으로 빠르게 변했다. 언젠가부터 외국인 학생 자체와 특정 문화권에 대한 단정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한 사람에 대한 생각이 집단에 대한 착각으로, 집단에 대한 생각이 다시 한 사람에 대한 착각으로 당연한 듯이 적용된다. 강의실에서는 “외국인이랑 같은 조 되면 안 되니까….”, “이번에 조에 중국인이 많아서 망했어, 열심히 할 리가 없는데” 등의 말이 오간다. 십여 년 전에 초등학교에서 모둠을 배치 할 때나 듣던 말을 들으면 낯이 뜨거워진다. 외국인 학생에 대한 과장된 거리감은 그들이 수업을 들을 정도로 한국어에 능숙하다는 것을 잊게 만드는 듯하다. 우연한 기회로 필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중국인 학생은 본인도 한국인 학생들이 자기를 싫어하는 것을 안다며 고개를 숙였다.

다양한 문화권의 학생을 진정으로 융합하기 위해서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있는 것은 맞다. 외국인 학생을 강의실에 앉도록 하는 것이 융합의 끝이 아니다. 우리 학교의 외국인 학생 비율이 높은 만큼 학교도 더 실질적인 소통과 통합의 방식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 간의 거리감이 가장 큰 문제다. 불편이 미움으로 번지지 않게, 건설적인 해결에 중점을 둘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인사캠과 자과캠을 통합해 진행한 에스카라는 성황리에 마치며 양 캠퍼스를 하나로 통합하는 듯했다. 하지만 융합은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서로를 미워하기보다 다양한 학생을 ‘학우’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 학교는 더 다채로운 색깔로 파도칠 수 있을 것이다.


 

김수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