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난달 30일 명륜캠퍼스에선 건학기념제, 에스카라의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고있었다. 2018년 이후 4년 만에 열린 양 캠퍼스 통합축제여서인지 아니면 볼빨간사춘기, 쌈디 등 유명 연예인들이 대거 등장한 탓인지 아무튼 명륜동 밤하늘은 몹시 번쩍였고 북악산 봉우리들도 우렁찬 함성에 들썩였다. 교수회관 한쪽에서 그 젊은 에너지를 흡수하다 더 이상 감당이 안돼 축제의 불꽃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갔다.

다음날 아침 캠퍼스는 전날 밤 축제의 맹렬함을 보여 주듯 평소보다 더욱 조용하고 깨끗했다. 수선관 4층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뭐지. 엘리베이터 앞 정수기 위에 무덤이 하나 생겨나 있었다. 납작한 1회용 종이컵이 누군가의 목을 축이는 데 쓰인 뒤 정수기 머리 위에 쌓이고 쌓여 '납작컵무지'를 이루고 있었다. 정수기 아래 쪽에는 그 무리에 들어가지 못한 몇 개가 흩어져 있었다. 알다시피 정수기 맞은편에는 휴지통이 있다. 아주 큼지막하게 재활용 공간도 마련해 놓은 휴지통까지 거리는 2미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너댓 발자국만 가면 바람직하게 처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50여 개(솔직히 세보지는 않았다, 지저분해서)에 달하는 종이컵이 정수기 위에 버려진 것이다. 

상상도를 그려보면 이러할 것이다. 한 참가자가 축제를 즐기다 또는 더 많이 즐기러 수선관에 들어왔다가 목이 말라 물 한 모금 마신 뒤 다음 프로그램에 늦을까 급한 마음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컵을 정수기 위에 던졌을 것이다. 그래도 바닥에 버릴 정도로 무질서하지는 않으니까. 다음에 온 사람은 정수기 위에 버려진 컵을 보며 물을 마시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 위에 컵을 놓고 후다닥 돌아갔을 것이다. 이렇게 3개, 4개가 쌓이고 50개, 1백개가 컵 무덤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다 몇 개는 실수로 바닥에 떨어졌을 것이다.

에스카라 컵무덤 사건을 사회과학으로 설명해 보자(수선관은 사회과학대학이 있는 곳이다). 도시지역 범죄를 연구하는 미국의 사회과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켈링이 처음 제시한 것으로 '깨진 유리창 이론'이란 것이 있다. 종이컵 좀 버린 것 가지고 무슨 범죄씩이나 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의 규범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어떻든 이 이론에 따르면 범죄 발생은 그 지역의 외관,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신호에 큰 영향을 받는다. 유리창이 깨진 차나 건물이 보이면 "아, 여기는 좀 그런 곳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쓰레기 투척, 노상방뇨 등 범죄를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보다 훨씬 쉽게 저지른다는 것이다. 정수기 위에 버려진 컵 하나가 강력한 신호로 작용해 이제 많은 사람들이 물을 마신 뒤 의식, 무의식적으로 컵을 정수기 위에 놔두고 가 버리게 된다.

그런데 수선관의 컵무덤은 셔틀버스 정류장 부근과 금잔디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공연장 입장을 기다리며 만들었던 길다란 줄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수선관에서 컵으로 무덤을 쌓은 사람들이 어떻게 몇 시간을 인내하며 질서도 정연하게 줄을 서 기다릴 수 있었을까. 답은 너무도 뻔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범죄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 사회규범에 대한 순응과 정기적인 점검, 그리고 앞서 언급한 사회적 신호를 주로 말한다. 공연장 입장을 앞두고는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줄서기의 사회규범에 순응한다. 그러나 수선관 정수기 앞에서는 보는 사람들이 없어(감시카메라가 있는데도!) 규범 준수 의식이 쉽게 허물어진 것이다.

긴 시간 줄을 설 때나 컵으로 무덤을 만들 때나 사람들은 모두 강한 사회적 동조(social conformity)의 모습을 보인다. 줄서기도 컵무덤도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그냥 따라 하는 것이다. 동조의 만유인력은 아마도 가장 강력한 사회적 힘이라 개인이 거스르기엔 벅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유롭게 생각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역사상 불행한 사건은 대부분 맹목적인 동조의 결과였다는 것을 돌이켜 보자. 사람들 따라 컵으로 무덤을 만들지는 말자. 몇 걸음 앞에 쓰레기통 있다.

일러스트 | 서여진 기자 duwls1999@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 이재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