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이제는 진짜 쉬어야겠다 싶은 순간이 있다.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끊임없이 내가 선택한 길을 후회하고, 의심하고, 고민하게 된다. 결국 놓아주는 것도, 여유를 가지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도망치듯이, 정답을 찾아서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미국에 도착한 지 어느덧 두 달 반,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던 것들에도 익숙해져 간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는 게 더 어색하고, 팁 계산도 어렵지 않게 해낸다. 절대 예정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않는 버스에도 익숙해져 5분씩 늦게 계산하는 것도 익숙하다. 어느 날은 캠퍼스 배수 통로에 무장한 사람이 들어갔다는 경고 메일을 받았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생각할수록 미국에서만 겪을 수 있는 황당한 사건이었다. 무려 무장한 사람이 캠퍼스에 들어온 사건인데, 마치 총학 선거현황을 중계하듯이 학보사가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도 나는 점차 익숙해져 가고 있다.

내가 파견 온 인디애나 대학교의 캠퍼스는 매일 봐도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평화롭지만 활기차다. 넓은 캠퍼스에 다람쥐와 사슴이 뛰어다니고, 크고 푸르른 나무들과 잔디가 어우러진 자연이 눈 앞에 펼쳐진다. 캠퍼스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과 행사들이 넘쳐나고, 잠실종합운동장 만한 학교 경기장에서는 매주 다양한 경기가 열린다. 이곳에서 나는 매일을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룰도 모른 채 무작정 가게 된 풋볼 경기는 신기한 것투성이였다. 응원하는 사람들의 열기도 엄청났지만, 경기를 축하하며 띄운 비행기부터 마칭 밴드와 치어리딩까지, 그 스케일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매주 교내 공연장에서 열리는 발레·오케스트라·오페라 공연을 무료로 보러 다니기도 했고, 헬스 센터에서 댄스와 사이클 수업을 듣기도 했다. 전 세계 각국에서 온 교환학생들과 파티를 하거나 바에 가기도 했고, 함께 파견 온 성균관대 친구들과 입학식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에 가기도 했다. 한식과 한국어를 좋아하는 미국인 버디를 만나 추석에 함께 요리한 경험도 즐거웠고, 케이팝을 좋아하는 영국인 룸메이트와 한참을 즐겁게 대화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에 조급해질 때, 평화로운 캠퍼스를 혼자 걸으며 생각에 잠기면 나도 평화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를 들으며 넓고 아름다운 캠퍼스를 걸을 때면 이런 조용한 일상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다독이며 숨을 돌리는 일상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아쉽다. 느리게 흘러가는 일상에 문득 ‘이래도 되나?’라는 의문이 들 때면 ‘이래도 돼.’라고 답하며 하루를 흘려보내고는 한다. 이곳에서 나는 지금 소소하게 행복하다. 여행으로도, 돈으로도 얻을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행복을 누리고 있으니까. 난 벌써 그리운 이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새로운 것들에 익숙해지는 내 모습도, 바쁘고 정신없는 도시에서 벗어나 느리게 걷는 여유도, 매일을 사소한 추억과 새로운 인연으로 채워가는 기쁨도.

겪어보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던 것들이겠지. 그래서 더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나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길을 잃었다면 뒤를 돌아보라. 수많은 선택으로 이뤄진 길은 오롯이 당신의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후회 없는 길을 찾아가는 여행에 정해진 정답은 없을 테니까.

 

 

 

 

김예진(철학 19) 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