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가현 기자 (dreamer7@skkuw.com)

뼈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뼈를 통해 뼈 주인의 나이부터 생활 환경까지 추측할 수 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아동의 뼈는 성인보다 많다. 태어날 때 약 270여 개인 뼈는 나이가 들고 자라남에 따라 206개로 줄어든다. 물렁한 뼈가 달라붙어 단단해지는 과정은 인간의 성장을 대변한다. 그리고 지난달 26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학원 암매장 추정지의 시굴 조사에서 유해가 발견됐다. 아이의 뼈였다.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운영된 선감학원은 부랑아 수용을 목표로 한 기관이었다. 국가 체면 손상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전국 각지의 빈민가 아이들이 선감학원에 붙잡혀왔다. 수용 아동 수가 단속 공무원의 실적에 반영됐기에 무고한 아이들이 납치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선감학원에서 자행된 학대의 전말은 이번 유해 발굴로 명확해졌다. 거리에서 사라진 아이들이 군사 쿠데타 정권을 정당화하는 토대로 사용됐다.

선감학원에서 ‘부랑아’로 명명되던 아이들의 뼈는 4·3 사건으로 인해 제주공항 활주로 아래 묻힌 유골과 닮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공통의 적을 필요로 한단 사실을 『작별하지 않는다』의 저자는 알고 있다. 공통의 적은 내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함으로써 단일한 권력에의 복종을 정당화한다. 거리를 더럽히는 ‘부랑아’와 사회를 어지럽히는 ‘빨갱이’ 모두 공통의 적이었다. 저자는 제주도민에게 강요된 침묵이 오랜 세월 우리 사회를 묶는 끈이었음을 지적한다.

침묵은 공포에서 비롯한다. 공포는 필연적으로 불안을 낳고, 이렇게 잉태된 불안은 무엇보다 효율적인 통치 방식이 된다. 독재 정권이 위시한 ‘반공정신’은 어느 순간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됐다. 독재 정권은 사회 취약 계층에 ‘빨갱이’, ‘부랑자’와 같은 이름을 덧씌움으로써 침묵을 강요하고 불안을 조성했다. 저자는 세대를 이어 불안을 이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제주도민이 그 희생양이 되었음을, 나아가 이러한 부조리가 4·3 사건을 통해 드러났음을 보여준다.

제주도민에게 찍힌 낙인은 그들을 영원히 침묵토록 만들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속 인선의 어머니는 4·3 사건 피해자 유가족으로 반평생 가족의 유해를 찾아 떠돌았다. 가족이 국가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단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한 조각의 뼈가 필요했다. 그 시절, 죽음이 두려운 이들은 침묵해야 했다. 죽은 뒤에야 뼈로써 진실을 토로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죽음을 ‘영원한 침묵’이라 일컫는단 사실을 되짚자면, 살아서 죽고 죽어서 사는 이들의 생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는걸까? 우리는 그 시절에서 얼마나 ‘진보’했는가?

다시금 뼈는 우리 사회의 비극을 조명한다. 암매장 추정지 아래 잠든 유해는 시대의 과오를 지적한다. 그러나 세월은 과거를 용서할 힘이 없고, 진실을 밝혀 죗값을 묻지 않는 한 우리는 삭아버린 뼈들과 영원히 ‘작별하지 않는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는 동안 새로운 유해가 발굴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죽어야만 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이 땅 밑에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침묵이 얼마나 많이 묻혀있을까. 뼈가 되기를 기다리고만 있는 소리는 얼마나 많은가.

 

김가현 뉴미디어부 부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