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서현 기자 (8forgerrard@naver.com)

삼척의 해변가를 맨발로 걸은 적이 있다. 자잘한 모래들이 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으나 이내 파도에 휩쓸려갔다. 함께 걷던 이가 말했다. 바다에선 모든 게 부서진다고. 모래도, 파도도. 그는 몇 마디를 더 중얼거렸지만 새하얀 파도에 그 소리마저 부서졌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부서지며 드러나는 바다의 풍경이 제법 멋졌다.

수습기간을 마치며 ‘결코 부러지지 않겠다’고 쓴지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내게 그간의 시간은 철저히 부러지고 또 부서지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 시간의 가장 끝자락에 서 있다.

부서진다는 것은 나의 오만함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나는 세상을 낱낱이 알고 싶었고, 이를 기사에 담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나보다 거대했다. 1699호 반촌돋보기를 준비하며 나는 쪽방촌의 폭염 피해를 취재했다. “여름 다 지나서 오면 어떡하나. 뭘 알 수 있다고...” 용기를 내 쪽방촌에 들어섰을 때 쪽방 거주민이 내게 건넨 말이었다. 약간의 사전 조사, 그리고 자신만만한 질문지를 들고 취재에 나선 나의 오만함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이어진 인터뷰에서는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복지의 사각지대는 공공연히 존재했고, 희망과 체념이 공존했다. 그들은 결코 문건 속 ‘예상 멘트’ 한마디로 정의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기사에 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부서진다는 것은 또한 편안함을 멀리하는 일이었다. 모든 기사는 마감 전에 완성돼야 했다. 지면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좋은 기사여야 했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없었고, 그러다 보니 모든 게 불완전해졌다. 때로는 잠도 식사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됐다. 능숙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나를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이는 책임감이라기보단 순진함에 가까웠다. 기자라는 꿈 앞에서 나는 기꺼이 부서질 수 있었다. 충분히 행복했다.

어쩌면 부서진다는 것은 사랑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두괄식으로 쓰이는 기사는 때로 내 마음을 온전히 전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마음속에 묻어두고 다음을 기약했다. 사실은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달이 선명한 새벽녘에 학교의 문을 여는 청소노동자의 거친 손을 존경한다. 사실은 응원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흩어져가는 학생 사회에서 자그맣게 울리는 학생 자치의 목소리를 응원한다. 그 맘을 전하기 위해 나는 더 들여다보고 더 물어야 했다.

충분히 부서지지 못했던지, 아쉬움이 남는다. 못 다룬 소재, 스스로와 타협했던 순간이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아쉬움을 애써 외면하고 이제는 성대신문을 떠난다. 함께했던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지난 시간 부딪히고 부서지는 것이 버겁지는 않았던가. 당신은 도무지 오지 않는 인터뷰이의 회신에 초조해했다. 끝나지 않는 일에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렇게 당신은 부서져갔다. 나는 그런 당신을 안쓰러워했지만, 그보다 당신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렇게 우리는 열 여섯 번이나 지면을 채웠다. 그리고 그건 분명 가치 있는 일이었다.

이제 나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시 세상을 마주해야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던가. 시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관료는 책임감이 있는가. 언론의 자유는 온전한가. 사회 속 우리는 안전한가, 혹은 행복한가. 이에 답하기 위해 어쩌면 우린 더 부서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걱정은 말자. 우리에겐 수만의 활자가 있고, 그토록 지켜온 가치들이 있다. 그리고 수백일을 함께해온 33명의 기자단이 있다. 그러니 겁도 없이 부서지자, 산산이!



 

이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