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혜균 기자 (sgprbs@skkuw.com)

독특한 캐릭터와 다양한 서사의 가능성 제시해 호평받아

고증 문제에 대한 시각은 엇갈려

배우 김혜수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tvN 드라마 ‘슈룹’이 화제다. 지난달 15일부터 방영한 슈룹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퓨전사극으로, 자식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궁중 여인들의 암투와 모성애를 담은 이야기다. 조선판 ‘SKY 캐슬’로 주목받은 슈룹은 김혜수의 명연기와 공감을 끄는 스토리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0일 방영한 12회의 시청률은 13.4%를 기록하며 케이블 일일 시청률에서 1위를 차지했다. 본지는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슈룹의 이모저모와 이를 둘러싼 논란까지 다뤘다.

달리는 중전의 등장, 클리셰 비틀다
‘조선에서 가장 걸음이 빠른 중전마마.’ 슈룹의 포스터에서도 등장하는 이 말은 김혜수가 연기한 슈룹의 주인공, 중전 ‘화령’을 수식하는 말이다. 1화 첫 장면부터 화령은 궁궐을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 장면은 궁중 법도에 따라 느린 걸음으로 걷는 사극 속 궁중 여인들에 익숙했던 시청자들의 예상을 깼다. 화령은 중전의 신분임에도 스스럼없이 욕을 하거나, 대군들이 시험을 빠지고 담을 넘은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 자식들 어디 갔느냐”며 호통을 친다.

체면을 차리거나 수동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던 기존 사극의 중전과 달리, 슈룹의 화령은 적극적이고 자식을 지키기 위해 뭐든지하는 헌신적인 인물이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 직접 족집게 과외를 준비하며 밤을 새는가 하면, 자식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대비와 대립하기도 한다. 화령은 기존 사극에서 묘사되는 전형적인 중전의 모습을 깨부수고 새로운 여인상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주영(사학 21) 학우는 “대신들에게 호통을 치거나 대비에게 거침없이 말하는 등 화령의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낯선 조선에서 익숙한 현대가 느껴진 거야
슈룹은 시대적 배경만 조선일 뿐 현대극과 비슷하다는 평을 받는다. 극 중 인물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사극 말투를 쓰지만, 사석에서는 일상적인 말투를 쓰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 왕과 대비의 개인적인 대화에서 대비는 왕에게 ‘네가 원했잖아’라며 경어를 사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대비마저 왕에겐 깍듯이 존칭을 써야 했던 왕실 법도에는 맞지 않지만, 이를 현대의 엄마와 아들의 대화라고 이해하면 이질감이 없다.

슈룹의 서사에는 현대사회의 모습과 가치관이 담겨있다. 슈룹은 왕자들이 왕위 계승을 두고 경쟁하는 갈등 구조가 핵심 서사 중 하나이다. 이 과정에서 화령과 후궁들은 자신의 아들을 세자 자리에 오르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현대의 입시 코디네이터와 같은 *거벽을 고용하는 것이 그 예다. 화령의 경우 족집게 과외를 위해 밤을 새며 시험 범위를 공부하기도 한다. 이는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자식의 교육과 성공에 헌신적인 현대사회 부모들의 모습이 반영돼 있다. 세자를 뽑는 절차 중 하나인 토론에서도 시대상이 드러난다. 4화에서는 ‘역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가 논제로 제시된다. 토론에서는 대안으로 봉쇄 정책, 복지 등이 제시된다. 손승리(21)씨는 “현실 속에서 정치인들의 방역 관련 토론을 보는 것 같았다”며 “드라마의 내용에 더욱 공감하며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역병 대처를 주제로 토론하는 왕자들.
ⓒ드라마 ‘슈룹’ 4화 캡처

극 중에서는 ‘택현’이라는 제도를 통해 왕비와 후궁의 자식들에 차등을 두지 않고 실력에 따라 세자를 선발한다. 본처의 자식인 적자와 첩에게서 나온 서자의 차별이 존재했던 조선에서는 왕위 계승에서도 적자의 서열이 서자보다 우위에 있었다. 택현은 기존의 서열을 무력화하기에 공정하고 합당한 경쟁을 이끄는 제도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극 중 인물 ‘보검군’은 실력이있고 총명함에도 불구하고 모친인 ‘태소용’의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대비의 협박에 의해 경쟁을 중도 포기한다.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윤석진 교수는 “이러한 서사에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기회가 불평등하게 주어지고 자식의 성공 가능성이 달라지는 현대사회의 불공정함을 비판하는 시각이 담겨 있다”며 “슈룹은 조선시대의 틀을 빌려 현대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의 복합적 욕망을 담아 탄생한 ‘화령’
그렇다면 슈룹이 이야기하는 현대사회에서 화령이라는 중심인물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화령은 현대사회의 모순에 정면으로 맞서는 인물이다. 11화에서 대비가 유생들의 여론을 움직여 ‘성남대군’의 세자 즉위를 막으려 하자 화령은 유생들의 불의를 밝혀내고, 이 나라를 이끌 정치인으로서 옳은 선택을 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자식을 세자 자리에 올리기 위해 대비와 결탁한 태소용에게는 일시적으로 후궁 직위를 강등하는 등 벌을 내린다. 이외에도 각종 부정이 오가는 경쟁에서 화령이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성남대군을 세자로 즉위시키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윤교수는 “화령은 현실에서 부당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대중들의 욕망을 대신 실현시켜준다”며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과정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화령의 태도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또한 화령은 극에서 포용력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수업을 빠진 왕자들에게 따끔하게 혼을 내지만, 공부만을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의 선택도 일면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신분의 한계로 세자 경쟁을 포기해야 했던 보검군에게는 “반드시 세자의 자리에 오르는 게 네 능력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며 인생에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위로한다. 이 학우는 이에 대해 “오늘날의 부모님과 우리들에게 현대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가치나 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화령의 캐릭터에는 현대인이 바라는 이상적인 어머니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화령의 캐릭터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윤 교수는 “화령이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하는 인물인 것은 맞지만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하는 인물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화령은 보검군과 태소용이 세자 경쟁에서 저지른 편법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에게 이상적인 부모상을 제시하고 결과중심주의를 비판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 모자가 겪었던 신분적 한계는 비교적 조명받지 못한다. 화령은 그러한 신분의 한계를 궁극적으로 해소하지도 않는다. 윤 교수는 “화령은 체제의 모순을 비판하지만 결국 체제의 혜택을 보는 인물”이라며 “사회 모순을 지적하는 그의 행동도 중전이라는 사회적 위치가 보장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역사와 극의 경계, 그 사이 딜레마
슈룹 또한 고증 문제를 피하지 못했다. 엄연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극 중 인물들이 현대어를 사용하는 점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1화에서 화령이 땡땡이를 친 대군의 처소에서 ‘이 새끼 어디 갔어?’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새롭다는 평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받았다. 1화에서 화제가 됐던 화령이 달리는 장면도 논란이 됐다. 손씨는 “1화에서 화령이 궁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캐릭터의 능동적인 면을 보여주려는 연출임을 알지만, 조선시대의 엄격한 궁중 법도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장면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조선이 시대적 배경인 드라마에 중국식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논란이 됐다. 극에 등장하는 ‘태화전’의 명칭이 중국 청나라의 자금성 정전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에 tvN 측은 “‘태화’는 신라시대 연호나 고려시대 학당에서 언급되는 사례가 있을 정도로 유교 경전에서 흔하게 쓰이는 단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고증 문제가 제기되는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는 시각도 존재한다. 문빈(인과계열 22) 학우는 “사극 드라마도 결국 실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픽션에 속하는데 사실 여부를 다루는 고증 논란이 과도하게 발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슈룹은 매화 시작마다 본 드라마가 픽션임을 명시한다. 그럼에도 사실관계를 다루는 고증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평론가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한복의 기원 문제를 비롯한 중국 문화공정의 영향으로 역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대한 대중의 기준도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씨는 “OTT 플랫폼을 통해 한국 드라마의 수출 사례가 늘면서 외국인과 같이 한국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며 “고증 문제에 대한 책임을 더 무겁게 인식하고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고 전했다.

 

계성대군이 폐전각에서 분을 두드리는 모습.
ⓒ티빙 홈페이지 캡처

슈룹이 고증에만 집중했다면 다양한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선보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윤 교수는 “조선시대의 법도라는 사실에 비춰 보면 화령의 독보적인 캐릭터는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극중 등장인물인 ‘계성대군’은 여장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화령은 계성대군이 폐전각에서 몰래 여장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만, 그에게 여장한 모습의 초상화를 선물하고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너는 내 자식”이라며 아들의 성적 지향성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윤 교수는 “슈룹에서 성소수자 서사를 등장시킬 수 있었던 까닭은 역사적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창작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성소수자인 왕자에 대한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김 평론가는 “슈룹과 같은 퓨전사극의 역사 고증 문제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으로 제기돼야 할 문제”라며 “고증 문제가 드라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까지 가려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거벽=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의 답안을 전문적으로 대신 적어주던 사람을 일컫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