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노다겸(경제 20)

 

 

그런데, 어디 있니?”

 

최은경 씨의 핸드폰으로 또 알림톡이 왔다. 은경 씨는 이제 그 사근사근한 멘트를 외웠다. 아니, 다 외웠을 뿐만 아니라, 똑같은 시간에 온 그 까똑!’ 소리에 그런데, 어디 있니?”라고 대꾸하기까지 했다.

최은경 고객님! 우체국입니다. 윤주선 고객님의 부재로 배달하지 못한 택배가 반송되었습니다. 대구달서우체국. 월성동에 사는 덕분에 달서우체국이 코앞이라 반송 완료 알림이 아침부터 빨리 오는 건 또 누구 속 터지라는 친절인가. 은경 씨는 국밥집에서 밤새 시달린 다리를 엘리베이터에서 꺼냈다.

택배는 또다시 얌전히 도어록 밑에서 은경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집배원이 박스를 떨어뜨려 반찬통을 깨기라도 할까 싶어 테이프를 수차례 꼬아 붙인 손잡이. 며칠 새 누렇게 변해 끈적거리는 손잡이가 은경 씨의 손가락과 마음에 엉겨 붙었다. 은경 씨는 허리를 굽혀 현관에 박스를 밀어 넣고 신발을 벗었다. 두 번이나 돌아온 택배에 얌전히 적혀 있는 주선이의 이름을 보니, 차마 발로 한 대 시원하게 뻥, 날려 줄 수는 없었던 탓이다.

그 우체국 5호 상자 안에 뭘 차곡차곡 챙겨 넣었는지는 보내는 사람’, 최은경 씨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박스 가장 아래에는 신문지를 깔고 다시 얼린 곰국을 깔아 놓았다. 은경 씨가 일하는 24시 국밥집의 주인인 나주 아줌마가 직접 끓인 것인데, 계절이 바뀌기 전부터 냉동실에 넣어뒀던 덕에 웬만한 얼음팩보다 단단했다. 그 위에는 주선이가 평소에 좋아하던 양념게장을 넣었다. 자기 아빠 입맛을 닮아 유난히 해산물을 좋아하던 애라, 다사읍에 사는 친정 엄마가 주선이를 먹이라고 바리바리 담가다가 보낸 것이다. 한여름에도 손목이 시큰하다며 앓는 소리를 내는 황 여사님은 게장철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5미짜리 암꽃게를 한 박스씩 사곤 했다. 반찬통 옆에는 공간이 남길래 주선이의 목도리를 끼워 넣었다. 위에는 깍두기를 한 통 눌러 담아 얹었다. 은경 씨는 깍두기를 담그면서 항상 새우젓을 썼는데, 덕분에 반찬 뚜껑을 열었을 때는 푹 익은 새우의 깨알 같은 눈깔이 은경 씨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가는 길에 푹 익어 버릴까 싶어 일부러 전날 밤에 부랴부랴 담근 게 무색하도록, 깍두기와 새우는 투명하게 절어 있었다.

은경 씨는 새우등을 하고 쭈그려 앉아 반찬통의 새우를 물끄러미 노려보았다. 적어도 서울에서 딸아이의 기숙사 복도까지는 구경해봤을 새우가 대구에서 새우등밖에 남은 것이 없는 은경 씨보다는 나았다. 은경 씨는 새우 수염이라도 붙잡아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런데, 대체 어디 있니?”

주선이가 실종되고 일주일 하고도 이틀이 지났다.

처음 연락이 되지 않았던 밤은, 역시 우리 딸이 공부를 열심히 하기 때문이야, 하고 넘겼다. 물론 딸 가진 엄마만이 발휘할 수 있는 온갖 창의력에 휩싸여 잠을 설치기는 했으나, 이 또한 번민이라, 했다. 그러나 매 끼니 사진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리던 딸이 사흘 동안 연락이 없었고, 사라지지 않는 1에 애 아빠가 먼저 안달을 내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확실히 깨달은 건 반찬거리가 처음으로 반송되었을 때였다. 처음으로 집 앞에 있을 리가 없는 택배가 얌전히 도어록 아래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걸 발견했을 때, 은경 씨는 반송이라고 떡하니 적힌 송장 위에 어거지로 새 송장을 풀칠해 다시 택배를 부쳐 버렸었다.

하이고, 사모님. 요즘 젊은 애들은 어디로 튈지 몰라요. 괜히 엠제트, 엠제트 하는 게 아닙니다. 실종아동도 아니고, 대학생이면 다 큰 어른인데 며칠 그러다 말겠죠.”

아니, 이럴 애가 아니라니까!”

일단 접수는 해놨으니까, 서울 쪽에 공조 요청하고 그러면 또 한참 걸려요. 서에 이렇게 매일같이 찾아오신다고 그쪽에서 재깍재깍 답이 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얘는 어디 가서 제대로 놀 줄도 모르는 애라니까요.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어디 놀러 갈 데도 없을 텐데.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고서야…….”

사모님, 다 큰 애들이 어디 어른들 말 고분고분 듣겠어요? 자식 있는 부모 마음이야 저희도 알죠. 저도 딸은 아니지만 아들이 둘이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희도 더이상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제발 댁에 가서 기다리고 계세요.”

국밥집에서 퇴근하는 길목, 꼬박꼬박 경찰서에서 벌어지는 실랑이는 항상 어영부영 끝났다. 최은경 사모님은 또 얌전히 댁에 가서 기다리고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소금물에 담가 놓은 무를 다시 꺼내다 썰어 깍두기를 담갔다. 온 집안 이불을 겨울 이불로 바꾸고 청소기를 돌렸다. 바닥에다 걸레질을 하고 빨래를 널었다. 오후 5시 반에 출근한 국밥집에서는 정구지에다 멸치 액젓을 치댔다. 매천시장에서 떼 온 마늘 다마의 가격이 왜 또 올랐는지 탄식하는 나주 아줌마의 우는 소리에 그럭저럭 맞장구를 쳐주었다. 저녁 손님이 한바탕 지나가면 해가 다 뜰 때까지 설거지를 했다. 그 일련의 성실은, 은경 씨의 일상이 엔간히 잘 굴러가고 있으며 따라서 내 딸에게도 별일이 없을 것이 명백하다는, 주술적인 의식이었다. 달그락 딸그락. 은경 씨는 도 닦듯 수백 수천 개의 뚝배기를 닦았다.

경찰은 미적지근했다. 어쩌면 애간장이 버글버글 끓어오르는 은경 씨에게만 상대적으로 미지근한 온도였는지도 모른다. 흔한 경상도 남자인 애 아빠가 길길이 날뛸 것이 뻔해, 주선이가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갔으며, 잠수를 탄 건 청춘이 으레 그렇기 때문이라고 너스레까지 곁들여 둘러댔지만 언제 들통이 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주선이더러 다 큰 어른이란다. 애더러 어른이란다. 사흘이 나흘이 되고 일주일이 되었을 때는 미적지근했던 경찰들의 표정도 슬슬 끓어 가기 시작했다. 펄펄 끓는 얼굴을 한 경찰에게서 가출이 아니라 실종으로 처리하겠다는 답을 받아낸 게 월요일이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저들은 대체 뭘 했는가.

아니, 그러는 은경 씨는 대체 뭘 했던가. 얌전히 댁에 가서 기다리는대신 뉴스에 나오는 실종자 가족이라도 된 것처럼 서울에 올라가서 전단지라도 돌렸어야 했나 싶다가도, 주선이라면 제 얼굴이 박힌 전단지를 보고 더 꼭꼭 숨지 않았을까, 주선이는 사진 한 번 찍는 것도 질색할 정도로 주목받기를 싫어했던 애거든, 하고 은경 씨는 애써 변명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찾으러 나서는 순간 내 딸이 정말로 실종자가 될 것만 같았다. 경찰들 말대로 그냥 막 어른이 된 게 신난 주선이가 어디 잠깐 놀러 갔다고 믿고 싶었다. 애 생각을 어디 잠깐만이라도 묻어 놓을 수 있다면 차라리 편할 텐데.

야를 붙잡아 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은경 씨는 자기 손으로 둘둘 감았던 박스테이프를 다시 한숨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 새우등을 펴고 두 번의 여행 동안 짭짤한 새우젓 냄새를 본격적으로 풍기기 시작한 깍두기를 다시 냉장고에 테트리스로 끼워 넣었다. 빨간 고추 고명이 얌전히 앉아 있는 양념게장이 다시 김치 냉장고의 더 빨간 비닐 아래로 돌아갔다. 곰국은 다시 냉동실 깊숙한 곳, 언제 다시 발굴할지 모를 구석에 돌려 보내졌다. 그리고 나서는 목도리가,

어디 갔어?”

목도리가 없었다.

 

은경 씨는 무작정 달서보건소 앞에 가장 빨리 도착한 버스를 타고 상인역까지 갔다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동대구역에 내렸다. 흔들거리는 지하철에 실려서는 처음으로 혼자 코레일 모바일 티켓도 끊었다. 명덕역과 반월당역, 반월당역과 중앙로역 사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에 타고 내렸다. 명덕역과 동대구역까지, 공벌레마냥 득시글거리는 저 젊은 애들의 롱패딩 밭 사이에 우리 애도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잠깐 해봤다.

내 속은 타들어 가는데 세상이 너무 멀쩡하게 굴러가는 거 아닌가?’

아니, 내 딸이 없어졌는데 적어도 하늘이 걱정하는 척 정도는 해줘야 할 것 아닌가. 하늘은 얌전하게 맑았고 무던한 구름 아래 기차는 멀쩡히 잘도 굴러 서울역까지 도착했다. 은경 씨는 젊은 롱패딩 물결에 한참을 휩쓸린 덕분에 당고개행 지하철을 하나 보낸 다음 사당행 4호선을 타고 혜화역까지 갈 수 있었다. 주선이가 보내준 기숙사의 주소대로라면 혜화로터리까지 걸어야 했다. 주선이의 하얀 목도리를 하고 걷는 대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줄지어 늘어선 지하 소극장과 학교 로고가 박힌 잠바를 입은 대학생들, 카페들 사이 얼룩덜룩한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젊은 예술가들. ‘혜화로타리가 하얀 굴림체로 흐릿하게 쓰인 간판를 지나 혜화초등학교까지 갔을 때도, 은경 씨의 눈으로 하얀색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학생 이름이요?”

, , .”

누구요?”

윤주선이요. 단발머리에, 안경 끼고. 키는 저보다 조금 더 커요.”

경비원은 택배 상자 사이에서 목장갑을 추스르며 택배 명부를 뒤적였다. 은경 씨는 명부를 뺏어 들었다. 한눈에 들어온 주선이의 이름 옆에 주선이의 서명과 날짜가 있었다. , , .

그저께 왔었다고요?”

애들이 중간고사 끝나면 또 한창 놀러 다녀요. 통금에 재깍재깍 들어오는 애들이 드물어서. 거기 싸인 있으면 왔다 간 거겠죠.”

, , . 주선이가 여기 있었다.

그럼 지금 애가 기숙사에 있어요?”

글쎄요. 교대 근무라 나도 하나하나 들락날락하는 건 모르죠. 그런데 아마 없을 것 같은데.”

은경 씨는 욱 하는 소리를 삼키고 조용히 짜증을 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침에 기숙사 행정실에서 전화가 왔었거든요. 윤주선 학생이 상담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 계속 안 오고 있다고. 하도 연락이 안 되니까 - ”

들어가 볼 수 있어요?”

은경 씨에게 말꼬리가 잘린 경비원이 손사래를 쳤다.

외부인은 안 돼요. 코로나 때문에 함부로 못 들어가요. 애들 처음 짐 풀 때도 가족은 못 들어가게 했어요.”

맥이 탁 풀린 은경 씨의 표정에 경비원이 장갑을 벗었다.

어른인데요. 어련히 알아서들 잘 지내겠죠. 사모님이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딸 가진 학부모님들은 많이 불안해들 하시는데, 다들 또 어떻게 잘 지내더라고요.”

, , . 애더러 어른이란다. 돌겠다. 택배 명부를 들고 멍하니 서 있는 은경 씨의 뒤로 파란 단발에 핑크색 학교 로고가 박힌 잠바를 입은 여학생이 지나갔다. 경비원이 학생을 불러 세웠다.

학생, 학생 501호 맞지?”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501호라는 말에 은경 씨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학생은 왼쪽 귀에서 하얀 콩나물을 뽁 뽑았다.

, 학생. 나는 그 501호 사는 주선이 엄마야. 주선이 친구 맞지?”

학생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친구는 아닌데요.”

주선이랑 같이 살지 않아?”

룸메는 맞는데, 친구는 아닌데요. 걔 기숙사에 잘 안 들어와요. 맨날 알바 가고, 아니면 술 먹으러 다니고.”

주선이는 서울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알바를 해?”

, 처음에는 저랑 같이 카페에서 일하다가 바꿨어요.”

용돈이 모자라다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더 보내주겠다는 말에도 괜찮다고 했었다.

서점?”

, 그 다사 중고서점이요.”

다사라는 말에 은경 씨가 머뭇거리자 학생이 답답하다는 듯이 다팔아 마트 사거리에 있는 거요.”라고 말하고는 쌩하니 들어가버렸다. 은경 씨는 명부를 얌전히 내려놓았다. 왜 그 애가 대구로 왔다고 잠깐 기대했을까.

 

이제 골목길에는 새삼스럽게 하얀 담배 연기가 가득 차올라 은경 씨 머리 위를 슬금슬금 뛰어넘었다. 은경 씨의 머릿속은 밥솥이라도 된 마냥 희끄무레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로터리의 신호등은 은경 씨가 이해할 수 없는 순서로 작동했고, 덕분에 은경 씨는 한참 초록불을 기다려야 했다.

아이고, 두야.”

은경 씨는 엉거주춤 휴대폰을 꺼내 카카오톡 대화창을 확인했다. ‘어디야 지금. 엄마 가고 있어.’라는 말에 여전히 대답도, 읽음 표시도 없는 주선이의 대화방. 그리고 그 친절한, 최은경 고객님! 우체국입니다. 윤주선 고객님의 부재로 배달하지 못한……. 은경 씨는 휴대폰을 팩 소리가 나게 가방에 쑤셔 넣었다.

애 하나 있나 없나 알지도 못하는 멍청한 기숙사에 넣어 두느니, 차라리 제대로 방을 하나 구해줄 걸 그랬나 봐.’

은경 씨의 눈에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 더러워진 가로등이 들어왔다. <성대 정문 5분 거리, 1000/55/5>. <양현관 5분 풀옵션, 1000/45/5>, <1층 같은 반지하, 500/40/3>. 은경 씨는 슬그머니 전단지 아래의 전화번호들을 뜯어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뷰 맛집 옥탑, 500/43/3>. <혜화초 인근, 1000/60/5>. <초역세권 가성비 원룸, 1000/55/5>. <친절한 여자쌤 과외 가능, 010-…….>.

은경 씨의 눈에 익숙한 전화번호가 들어왔다. 아무도 뜯어가지 않은 번호가 꼬질꼬질하게 젖어, 가로등에 겨우 붙어 있는 종이. 요란하게 로터리를 돌아 나가는 140번 버스보다 은경 씨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소리가 더 컸다. 바로 이 번호로 전화 한 통 오기를 얼마나 기도했던가. 서울에서 이러고 있었다, 용돈 달라는 소리 한 번 없었던 애가. 초록불이 두 번이나 로터리를 빙글빙글 돌 때까지, 은경 씨는 너덜너덜한 전단지를 들고 멍하니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다사 중고서점의 그 누구도 하얀 목도리를 두르고 있지는 않았다. 은경 씨는 단발머리의 직원을 붙잡았다.

찾으시는 책 있으세요?”

사근사근 친절하고 사무적인 말투에 은경 씨는 살짝 진절머리가 날 뻔했다.

책은 아니고, 사람을 찾는데요. , , . 이라고.”

아아, 그 파란 머리 걔!”

책장 사이로 남자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남자는 책을 선반에 내려놓고 미로 같은 책장에서 빠져나왔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정리를 안 해놓고 가서 후임이 락커를 못 쓰고 있었거든요.”

은경 씨의 눈에 단발머리를 한 직원이 달고 있는 스마일 뱃지가 들어왔다. 머리를 올려 묶은 남자의 가슴에는 장정우 점장이라는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 저는, 주선이 엄마예요. , , .”

아아, 어머님이시구나. 짐 찾으러 대신 오셨어요?”

장 점장이 하얀 장갑을 벗고 은경 씨를 사무실 뒤로 데려갔다. 은경 씨는 어영부영 락커 앞에 섰다. 락커의 이름표에 주선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 , .

짐 다 빼고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장 점장은 은경 씨를 락커 앞에 두고 사라져버렸다. 락커 안에 주선이가 있을 리도 없는데 은경 씨의 손에 땀이 찼다. 은경 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문을 열었다. 주선이는 까탈스럽기가 아주 유난스러워서, 자기 방이 자기만의 규칙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경기를 하던 애였다. 은경 씨는 저를 지켜보는 시선이 장 점장이 아니라 주선이의 것 같다고 느꼈다.

아이구!”

은경 씨는 겨우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요란하게 무너지는 책더미를 피할 수 있었다. 은경 씨는 장 점장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아 허겁지겁 책을 주워 담았다. 하나같이 다사 중고 서점 마크가 찍혀 있었다. 학기마다 기숙사를 옮기려면 짐을 줄여야 한다며, 필요한 교재도 태블릿에 넣어 다니던 애가 책을 한 무더기 샀다. 주선이답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공부에 필요한 전공 서적이나 원서도 아닌, 묵직한 양장의 책들. 은경 씨의 시선이 파랗게 변색된 표지에 꽂혔다.

애니메이션 영화로 나온 캐릭터들이 알록달록하게 그려진, 마법사의 대모험 시리즈였다. 어느 집 따스한 창가에 한참 있었는지 표지는 모두 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코팅된 제목은 여전히 까칠까칠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글쓴이의 이름이 있어야 할 곳에는 하나같이 주선이의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삽화와 함께 프린트된 이름들 - , , . 그리고 어린애들이나 읽을 법한 책들. 은경 씨가 오랜만에 보는 종류의 도서였다. 주선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애 몰래 당근에 내다 놓은 게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은경 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주선이를 데리고 가방을 사러 반월당에 나갔던 날, 잠시 추위를 피하러 들른 서점에서 이건 꼭 사야 한다고 떼를 쓰던 애 덕분에 화려한 양장본의 판타지 소설 시리즈를 제 값 다 주고 산 적이 있다. 주선이는 이 책들을 또래 애들보다 조금 늦게 겨드랑이 털이 나기 시작했을 때까지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 책의 표지는 거의 닳다 못해 원래 테두리를 잃어버린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나오지 않는 양장본이라는 이유로 가격 제안 없이 값을 톡톡히 쳐서 받을 수 있었다.

주선이는 첫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서야 자기 책장 한 칸이 모두 비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버렸어?”

버리다니? 그걸 왜 버려. 아깝게. 당근마켓에 올려서 저번 달에 팔았지.”

주선이는 거실 소파에다 교복 자켓을 벗어 던지고 악을 쓰기 시작했다.

엄마가 내 책을 왜 팔아?”

은경 씨도 설거지를 하다 말고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 바락바락 대드는 딸보다 더 큰 목소리로 애를 다그쳤다.

! 그거 언제 없어진 지도 몰랐지. 왜 이제 와서 뒷북을 치고 유난이야? 겨울방학 때 너 맘대로 하라고 내버려 뒀더니 공부는 안 하고 쓰잘데기 없는 판타지 소설책이나 끼고 살아 가지고, 엄마한테 혼난 거 기억 안 나?”

그래서 봄방학부터는 학원 더 다녔잖아. 수학 학원은 더 빡센 데로 바꾸고, 영어학원에서 겨울 선행반도 들어가고!”

그래서 너, 손해 본 거 있어?”

엄마!”

이참에 정신 못 차리고 다니는 애 기를 좀 죽여 놓아야겠다는 생각에, 은경 씨는 부러 더 따끔하게 쏘아붙였었다.

너 이제 고등학생이야. 애들한테 책벌레 소리 들으면 그게 칭찬인 줄 아니? 너 베짱이라고 개미들이 비꼬는 거야. 정신 차려.”

은경 씨는 다시 고무장갑을 꼈다. 주선이가 쿵쾅거리며 방으로 들어가자 아랫집에서 올라온다!”라고 소리쳤다. 애가 꺽꺽 소리를 내가며 터뜨린 울음보다 그릇을 닦는 물소리가 더 컸다.

 

그래, 아마 그때쯤 주선이가 소설책을 끼고 사는 걸 그만두었다. 은경 씨는 애가 철이 들었나 싶어 갑갑했던 마음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주선이는 만으로 여섯 살이 되어서야 말문이 겨우 텄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에 한글을 부랴부랴 뗐다. 영어도 좔좔 하는 주변 또래에 비하면 한참 늦은 축에 속했다. 주선이는 알록달록한 그림만 보고 주인공들과 함께 온갖 상상의 나래를 다 펼쳐댔다. 동화책을 붙잡고 있기에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보면 엉뚱한 소리를 했다. 덕분에 은경 씨는 온갖 프로그램에 출석 도장을 찍어가며 주선이가 글자와 더 친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했다.

유명한 아동 언어 발달 센터가 있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기껏 지하철을 타고 시내까지 나온 날이었다. 대구의 초여름은 이미 은경 씨의 혼을 쏙 빼놓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를 뚫고 찾아간 센터에서, 예약이 다 차 현장 접수는 받을 수 없다는 말만 들은 은경 씨는 애 아빠가 퇴근길에 둘을 데리러 오기 전까지 주선이의 손을 잡고 반월당 지하를 돌아다녔다. 땀으로 샤워를 한 모녀는 빵빵한 에어컨을 찾아 반월당에서 가장 큰 서점에 들어갔다. 은경 씨는 놀이방을 겸해 꾸며진 동화책 코너에 주선이를 밀어 넣었고, 샤워 후 던져 놓은 수건처럼 소파 위에 축축하게 늘어져 있었다.

엄마, 주선이 이거.”

안 돼. 오늘 책 사러 온 거 아니야.”

그럼 이거는?”

윤주선.”

주선이는 한참 손가락을 꼼지락거렸지만 책을 내려놓지는 못했다. 반짝거리는 요정들의 그림이 가득 들어간 표지. 주선이는 입술을 부리처럼 내밀고 주저앉았다. 은경 씨가 또 졌다. 한글도 제대로 못 읽는 딸한테.

, 엄마가 들게.”

엄마, 우리 지하철 맨날 타자, .”

주선이는 서점 로고가 찍힌 종이 가방을 꼭 안고 아기 오리처럼 은경 씨를 따라 걸었다. 지하철을 타면 엄마가 동화책을 사준다. 이 순진무구한 인과 관계 때문에 얼마나 곤란한 일이 많았던지.

엄마 지하철 타? 주선이랑?”

주선이는 은경 씨가 외출만 할라치면 꼬치꼬치 따라다니며 집요하게 행선지를 물었다. 은경 씨는 지하철을 탔는데 반월당에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강장에 드러누워 돌고래 주파수에 버금가는 소리로 우는 주선이를 들쳐 업고 집에 온 적도 있었다. 그렇게 기껏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해놓았더니, 얘는 시험에 나올 법한 권장 도서들만 쏙 빼놓고 지 입맛대로 온갖 소설책들을 읽어댔다. 처음 책을 사달라고 졸랐을 때는 기꺼이 지갑을 열고 애가 글에 정을 붙이기를 내심 기대했으나, 기대와는 다른 형태의 을 붙이고 다니는 주선이 때문에 점차 조급함이 스멀스멀 치솟았다. 주선이가 학원 선행반에서 받은 수능특강 표지를 마법사 스티커로 알록달록하게 꾸몄을 때, 은경 씨는 저 철없는 딸이 마냥 답답했다. 수능완성 표지조차 빼곡하게 마법 주문으로 다채로워졌을 때는, 정말이지, 더는 참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당근마켓에다 쿨거래를 했을 뿐이다. 윤주선, 대체 왜 이래. 애처럼 굴지 말고 철 좀 들어!

봄방학 내내 주선이는 소설책들을 고이 모아 두고 문제집 사이에 숨겨 가면서 읽었다. 은경 씨가 방문을 벌컥 열 때마다 주선이는 제 딴짓을 숨기려 퍼드득 떨었다. 그건 일종의 레드 썬!’이었다. 지하철을 타면 동화책이 생긴다는 순진한 믿음마저 책 표지처럼 단단한 안식처, 어린이의 세계를 팔락팔락 들여다보는 건 철부지의 딴짓일 뿐, 결국 어른의 세계로 뛰어가야만 한다는 재촉.

어머님, 저희 이제 근무 교대 시간이라서요.”

은경 씨는 장 점장에게 은밀한 작업을 들키기라도 한 듯이 퍼드득 떨며 소설책들을 가방 맨 아래에 밀어 넣었다.

혹시 주선이가 여기서 얼마나 일했나요?”

“9월 초에 들어와서, 한참 풀타임으로 일하다가 그저께 그만뒀는데, 짐을 안 뺐더라고요.”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아휴, 대학생들 하는 알바가 다 거기서 거기죠. 어딜 가든 빡센 일도 하고, 그만큼 꿀 빨 일도 하고. 다들 서점 알바에 대한 환상이 있는데, 이거 사실 중노동이에요. 얘네 한 놈 두 놈 쌓이면 무게가 꽤 되거든요. 그래도 주선이 정도면 일 잘하는 편이었어요. 애가 참 어른스럽고.”

, 주선이더러 어른이란다. 주선이는 언제부터 어른이었을까? 혼자 기숙사 짐을 싸들고 탄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반짝 다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원하지 않았더라도, 다들 주선이를 어른이라고 불렀을 때부터 어른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 내 딸은 어떻게 어른이 되었던가. 주선이는 어른 흉내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유치한 판타지에 풍덩 빠져드는 대신에 머리를 염색하고, 술을 마시고, 과외 전단지를 붙이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니면서. 온갖 질문이 콧등을 시큰하게 때리며 올라왔다. 하지만 은경 씨는,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주선이는 대답을 모르는 질문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으니까.

문득 저녁 때가 되기 전에 애를 데려다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경 씨는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서점을 빠져나왔다.

은경 씨를 스쳐 지나가는 대학로의 얼룩덜룩한 골목이, 주선이에게도 따졌을 질문들을 외치는 것만 같았다. 너는 어른이냐고. 주선이는 알 길이 없는, 딸 하나를 다 키워 놓은 엄마가 된 은경 씨조차도 말문이 턱 막히는 그 질문을, 끊임없이. 주선이는 이 골목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이미 관둔 서점에다 판타지들을 깊이 묻어 두면서 또다시 어른이라는 이름에 발버둥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내 딸은 언제부터 어른이어야 하는 걸까? 서둘러 플랫폼에 나갔지만 부산행 기차는 눈치 없이 지연되고 있었다. 소설책이 가득 담긴 숄더백이 은경 씨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주선이의 서울 하늘도 지금 이 가방만큼 무거웠을까? 주선이에게 가해지는 중력은 이러했으리라. 심연에 잠긴 어린 이야기들 때문에 무겁고, 느려지고, 버겁게 짓눌리는 어른들의 세상.

서울 한복판에서, 하얀색이라고는 담배 연기뿐일 그 길 한복판에서, 주선이가 온몸으로 세상에게 묻고 있었다. 이제 나는 어른이냐고. 혼자서, 스스로, 어른처럼 돈을 벌고 술을 마시러 다니고 머리색도 바꿨으니 어른이 되는 건지. 그러면, 판타지를 마냥 좋아하던 철부지 어린애처럼 굴지만 않으면, 어른이 될 수 있는 건가? 다들 정말 이렇게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거라면, 너무 외롭고 쓸쓸하고 추울 텐데.

은경 씨는 겨우 반월당역에 내릴 수 있었다. 은경 씨의 발걸음은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뛰는 인파를 거뜬히 제쳤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굴러 떨어지듯 내려 소설 코너를 찾았다.

한쪽으로 땋은 파란 머리가 책장 위를 돌아다녔다. 주선이가 알록달록 반짝거리는 표지로 가득한 책장 사이에, 갑자기 싸늘해진 늦가을 때문에 빨갛게 달아오른 손으로 목도리를 꼭 잡은 채, 주선이가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은경 씨가 쓰러지기 전에 주선이가 먼저 엄마의 품으로 무너졌다.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주선이가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늦어서 미안해. 여기 있었구나.”

너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돼.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썰렁해진 소설 코너의 책장 사이에서 주선이는 한참 동안 은경 씨에게 안겨 있었다. 에스컬레이터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이따금씩 두 모녀의 공기를 웅웅 두드렸다. 은경 씨의 어깨가 축축하게 젖었다. 주선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고개를 조금 끄덕였을 수도 있다. 은경 씨는 주선이의 눈높이에 맞춰 까치발을 들었다. 주선이의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은경 씨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돼.

은경 씨가 다시 속삭였다.

 



 

노다겸(경제 20) 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