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신혜 (iriskim053@naver.com)

우리가 기억해야 할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체헐리즘

펜의 힘이 두렵지만 글의 선함이 실현될 때 비로소 뿌듯해요

 

‘‘사육 곰 철창에 갇혀10시간을 보냈다’, ‘소주병 무례함에 심장 쿵쿵심야 편의점알바해봤다여기 사서 고생한다는 다짐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는 기자가 있다. 네이버 뉴스의 기자 구독 서비스에서 6만 명이라는 압도적인 구독자 수를 보유한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다. 타인의 삶을 직접 살아보고 조명하는 체헐리즘기사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남형도 기자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창 시절 어떤 아이였는가.

지금처럼 나서서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남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해 마음 쓰는 일이 많은 아이였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땐 친구들이 잠자리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화를 내기도 했고, 중학교 땐 어머니가 안 계신 친구를 놀리는 반 친구들에 분노하기도 했었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감정이입을 하고 깊게 공감하는 편이었어요. 직접 실험하고 해결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어요. 철없던 시절 병아리가 물에 뜰 수 있나 궁금해져 대야에 넣었다가 발버둥 치는 병아리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황급히 꺼내줬던 기억이 나네요.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실행에 옮겨 스스로 나름의 해답을 찾아내려고 했어요.

 

대학 시절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이었는지.

대학 시절,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바꿀 방법은 무엇일지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어요. 정해진 일정에 따라 공부만 했던 어린 시절과 달리 대학생이 돼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사회의 진짜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어요.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해주시는 환경미화원분께서 정작 본인은 쓰레기통 위에 앉아 쉬시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죠.

오랜 고민 끝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영상 매체를 통해 현실을 전달하는 다큐멘터리 PD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는 꿈이 생기고 나서는 완전히 거기에 몰두해서 살았어요. 학교 방송국에 들어가 제작부장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혼자 만들어보기도 했죠. 그러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던 2010년 말, 방송사 공채가 끝나고 우연히 신문사 시험을 봤어요. 그 길로 기자가 돼 영상이 아닌 글의 힘을 빌려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의 공감을 얻고자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에 조금이나마 좋은 영향을 줄 방법에 대한 제 고민은 계속되고 있지요.

 

기자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뿌듯함이 있다면.

네이버 뉴스에서 6만 명이 제 기사를 구독해주고 계시는데 이 숫자가 절대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스포츠 경기장을 가득 메울 만큼 많은 사람이 제 글을 집중해 읽는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점점 더 무거워지고 때로는 두렵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기자는 수많은 걱정을 가져야만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기사 하나를 작성할 때 기사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수습기자 때까지는 사회에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이 나뉘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한 쪽만 비판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기사를 쉽게 쓰려고 한 거죠. 연차가 쌓이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든 일에는 각자의 첨예한 입장과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오래 걸리더라도 하나의 기사 안에 여러 측면을 균형 있게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조회 수에 치중해 논란이 되는 사건·사고를 자극적으로 담아낸 여러 기사를 볼 때면 회의감이 들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때도 있어요. 그래도 제가 작성한 기사로 인해 서서히 바뀌는 세상을 보면 너무 뿌듯해요.

2021년 취재차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다니는 대전의 해맑음센터에 다녀왔어요. 해맑음센터는 가해자를 피해 갈 곳이 없거나, 있더라도 가해자를 마주치기 싫어 학교를 나가지 않는 피해 학생들의 유급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센터입니다. 피해 학생들은 노후돼 갈라지는 바닥, 기울어지는 건물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왔는데 그마저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는 센터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작성하게 됐죠. 다행히 문제가 공론화돼 최근 교육부가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수가 가장 많은 서울, 경기 지역으로 센터를 이전시킬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물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해맑음센터 사례처럼 제 기사로 인해 거시적인 변화가 일어날 때 가장 뿌듯하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글의 힘이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의지를 다잡곤 해요.

 

2018년에 시작한 체헐리즘은 어떤 코너인가.

체헐리즘은 제가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쳐 만든 신조어예요. 기자 일을 하며 생긴 직업병인지 종종 대중교통에서 사람들이 인터넷 기사를 읽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곤 해요. 대다수 사람은 빠르게 화면을 내려 몇 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긴 기사를 다 읽고 다른 화면으로 바꾸더라고요. 꼼꼼히 읽지 않는 거죠. 특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지 않은 소재들은 아예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어요. 이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끝까지 읽는 기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내용도 재미있는 기사는 무엇일까 고민하다 떠오른 게 역지사지예요. 수습기자 시절 휠체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다녔을 때,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낯섦과 불편함을 느꼈던 경험이 떠올랐죠. 이처럼 역지사지로 타인의 삶을 직접 살아봐야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되기도, 철창에 갇힌 곰이 되기도 하니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요. 하지만 그들의 삶을 직접 경험하니 몸보다도 마음이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매일매일을 이렇게 사는 존재가 있구나생각하고 돌아와 기자로서 제게 주어진 역할을 다할 때 기사가 도저히 대충 써지지 않아요. 한 문장을 두고 하루, 이틀을 꼬박 고민하기도 하죠. 이런 제 마음이 통했는지 많은 분이 관심 가져 주셔서 지금까지 벌써 대략 140개의 체험을 했더라고요. ‘사람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위하는 삶을 살도록 돕자라는 목표로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연재하고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체헐리즘취재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하나하나 다 기억에 오래 남아요. 그들이 했던 이야기들이 모두 다 아직도 제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죠. 그중에서 좀 더 강렬한 현장들이 있어요. 지난 2021년 특수 청소부로 살았던 하루가 그래요. 특수 청소부로서 고독사로 돌아가시고 2주 만에 발견된 시신의 마지막 이사를 돕는 일을 했어요.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와 처음 보는 부패한 시신의 모습, 심지어는 구더기까지 나오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특수 청소를 위해 제작된 특수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너무 심한 악취로 방에 오래 있지 못해 청소 중간중간 숨을 쉬고자 1층으로 오르락내리락했던 기억이 나네요. 롯데타워 123층의 창문을 닦은 경험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죽음이 눈앞에 펼쳐졌다는 생각에 두렵고 아찔했죠. 직접 체험하기 전에는 높고 창문이 많은 건물을 보며 멋지고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무리 화려하고 멋진 빌딩을 봐도 작업자분들의 노고만 떠올라요. 꽤 오랜 시간 체헐리즘을 진행하며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타인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지난해 신설한 코너 인류애 충전소에 대해 소개해달라.

인류애 충전소는 사회에 선행을 베푼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코너입니다. 체헐리즘을 계기로 만난 안나의 집김하종 신부님과 나눈 이야기에서 출발했어요. 취재 중에 신부님께서 우리는 모두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살면서 선한 일보다는 악한 일을 많이 접하니 우리의 악한 마음만이 더 잘 표출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주위에 선한 일들이 자주 일어날 때 드러나지 않던 선한 마음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하셨죠. 사실 저는 인간에 대한 회의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라 인류애 충전소처럼 따뜻한 코너를 기획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러다 문득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도배된 뉴스를 보며 착하고 따뜻한 분들의 이야기를 공유해 사람들이 모두가 나쁜 마음만 품고 있는 건 아니구나, 여기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도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어졌어요. 가슴 벅찬 감동적인 일들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더라고요. 폭우로 강남역이 침수됐을 때 자신의 생명이 위험한 상황임에도 차 위에 고립된 중년 여성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청년,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과 본인의 손에 수갑을 한쪽 씩 나눠 낀 해양 경찰 등 수많은 의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사람에 대한 회의감으로 힘들어하기도 하는 저에게 인류애 충전소는 저 스스로를 채우기 위한 코너이기도 하죠.

 

삶의 계획과 목표가 있다면.

앞으로도 지금처럼 참신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요. 우리는 서로 아주 가까이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어요. 구독자들이 지어준 별명 중 행동하는 또라이라는 별명을 좋아하는데 앞으로도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 다른 존재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어쩌면 남형도라는 제 이름에서 비롯된 남 기자는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자는 제 인생의 방향성과 같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가진 펜의 힘을 통해 변화가 필요한 무언가를 바꾸고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나은 삶으로 만들어 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

 

대학생 남형도처럼 많은 고민 속에서 살아갈 청년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체헐리즘 취재로 마포대교에서 걸려 오는 상담 전화를 받는 체험을 한 적이 있어요. 마포대교 위 전화의 대다수는 20대들에게서 걸려 오더라고요. 지금 20대들에게는 취업, 진로 외에도 제 시대와는 또 다른 수많은 걱정과 고민이 있으리라 생각돼요. 저 역시 20대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여전히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떤 힘든 순간이 있더라도 누군가는 항상 옆에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힘든 일, 억울한 일이 있다면 제가 어디든 갈 테니 언제든 제보해주세요.

 

 

기사를 작성 중인 남형도 기자.
사진 | 김신혜 기자 iriskim@
작업자들과 롯데타워의 123층 창문을 닦고 있는 남형도 기자의 모습.
ⓒ남기자의 체헐리즘 유튜브 캡처
남형도 기자의 에세이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교보문고 홈페이지 캡처
사육 곰 철창에 갇혀 곰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남형도 기자.
ⓒ남형도 기자 제공
네이버 뉴스의 남형도 기자 프로필과 구독자 수.
ⓒ네이버 기자홈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