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찬주 기자 (chanjupark7@gmail.com)

취재후기를 쓰기 위해 수습일기를 다시 읽는다. 수습을 거치며 내가 설정했던 목표가 얼마나 이뤄졌을지 확인한다. 당시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이 바뀌었는가.

바뀐 것은 없다. 그저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졌을 뿐이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 자신의 소중한 생각들을 한 학보사의 기자에게 나누는 다정함을 왜곡하고 싶지 않았다. 기사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 누군가가 내게 해주었던 말을 기억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담아내는 글이 기사라 했다. 그렇기에 다정함을 나눠주는 이들은 기사가 기사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의견을 온전하게, 의도를 해치지 않으며 지면 위로 싣고 싶었다.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문장은 무거워졌다. 지난 학기부터 이번 발간까지 내게 주어진 지면의 원고지 매수는 약 180매가 넘지만 단언컨대, 이중 내게 가벼웠던 매수는 단 하나도 없다. 가볍길 기대했던 적은 있지만 허상이었다. 모든 문장이 너무 무거웠다. 내가 적고 있는 이 문장이 정말 맞는 걸까? 이 문장을 적어도 될까? 밤을 새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포부를 갖고 채웠던 빈 화면은 언제나 나의 심사로 지워지곤 했다. 어느 날엔 인터뷰이의 멘트만이 남겨졌고, 또 어느 날엔 그마저도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 혼자서만 내려놓는 건 불가능했다. 나의 도망은 곧바로 누군가의 짐이 됐다. 온전한 책임을 질 수 없음이 괴롭기도 했다.

문장의 무게를 견디며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는 힘은, 또다시 사람들의 다정함에서 왔다. 신문사의 기자들과 고민을 공유하며 나는 글과 함께 단단해지는 법을 배웠다. 다정하고 유쾌하고 섬세한 사람들. 그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공유할 수 있음이 좋았다. 그들의 다정을 먹고 자라며 나도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을 향한, 사람을 향한, 글을 향한, 그리고 그 글의 너머와 앞과 뒤에 도사리고 있는 모든 이들에 대한 사랑을 알고 싶었다. 여전히 문장을 적는 시간은 인고의 시간이지만, 다른 기자들에게 그 시간이 갖는 의미를 배웠기에 이 악물고 견뎌낼 수 있다.

기사의 모든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을 사랑했고, 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사랑했고, 그 글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을 사랑했고, 그 글을 읽을 당신들을 모두 사랑했기에 이 글을 적을 수 있었다. 깊고 숭고한 사랑을 하는 성대신문의 기자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더없이 영광스러웠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도 성대신문의 사랑이 가닿기를 바란다.

 

 

 

 

박찬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