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우혁 (wh776500@skkuw.com)

근로기준법상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학원생 업무

학생과 노동자라는 이중적 성격, 새로운 형태의 근로계약 필요해

 

2018년 카이스트가 전국 대학원생 조교 11,679명을 조사한 결과, 90.6%가 업무 관련 계약 없이 근로를 제공했다고 답했다. 또한 2020년 한국연구재단이 대학원생과 학생연구원 5,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4.9%가 최저시급을 보장받지 못하며 업무를 수행한다고 응답했다. 대학원에 노동착취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지는 대학원생 근로자가 교내에서 어떤 노동을 하는지, 그리고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생기는 문제는 무엇인지 알아봤다.

대학원생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생은 대학원에서 연구 또는 실험 실습을 하게 된다. 따로 직장을 가지지 않은 전업 학생의 경우 연구나 공부 외에 추가적인 교내 업무를 통해 장학금을 받고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6년 발행된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교육연구환경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박사과정생 응답자 589명 중 52.8%가 교내 임금을 받아 등록금을 조달한다고 답했다. 우리 학교 A원우는 대학원 수업이 저녁에도 열리지만 일부기 때문에 대학원을 다니며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것은 힘들다며 대학원생이 학내에서 추가적인 업무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대학원생의 학내 업무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조교다. 교육조교는 교안 작성이나 시험문제 출제 등을 하고, 연구조교는 학내 연구원에서 지도교수의 연구를 보조하는 업무를 한다.

대학원생은 조교뿐만 아니라 학생연구원의 연구 활동을 통해 등록금을 조달하기도 한다. 학생연구원은 대학원생 신분으로, 연구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사업인 ‘BK21’과 같이 국가나 기관에서 진행하는 교내 연구 활동에 참여한다. 이들은 업무량이 많아 퇴근 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8년 한국연구재단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당 연구 시간이 최대 근무시간인 52시간을 넘는다고 답한 연구원은 57.3%나 됐다. 안지연 노무사는 연구원도 학교의 지휘·감독 아래 규칙적인 근로를 제공한다면 근로자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삐빅, 근로기준법상 노동이 아닙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대학원생 근로자의 업무 중 대부분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211호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동국대 법학과 조성혜 교수는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근로자는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대학원생 근로자의 주목적은 학업이고 그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행정조교를 제외하면 대체로 교수의 업무를 보조하는 것에 불과해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근로자라고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대학원생 근로자의 업무 대부분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도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 학교에서 연구조교로 근무한 A원우는 “5개월 동안 주 510~17시 규칙적으로 근무했으나, 최저임금은 보장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학내 학생연구원도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학생연구원은 정부에서 정한 인건비 기준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는데 이 기준은 2008년부터 15년 동안 동결됐다. 해당 기간 동안 최저임금이 3,770원에서 9,160원으로 올랐다는 것을 고려할 때, 학생연구원의 연구 활동에 대한 대우가 미흡함을 알 수 있다.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에 따르면 지난해 학생연구원 인건비는 월 160만 원 수준으로, 최저시급으로 계산한 월급 1914,440원과 30만 원 이상 차이가 난다. 정부에서 지난 1월 인건비 기준을 상향했지만, 인건비의 최대 기준만 상정했기에 기준 인상만으로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대학원생을 구출하라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대학원생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회나 관련 기관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2021년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은 학생연구원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산재보험에 특례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고 해당 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 있다. 또한 지난 1*노동위원회에서 학생연구원도 노동권이 있는 노동자라는 첫 판단을 내렸다. 지난해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이하 충남지노위)’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 학생연구원으로 일한 대학원생 B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 B씨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충남지노위는 B씨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로서 근로계약의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데 갱신 거절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는 판단 하에 B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국민대 법학과 이광택 전 교수는 충남지노위의 판정은 학생연구원의 명백한 근로자성에 근거해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를 인정한 것이다상급심에서도 근로자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의 노동자성 인정으로 모든 연구원이 일률적으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재석 노무사는 노동위원회는 행정청으로 법원과 독립된 행정이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을 구속할 수 있는 기판력은 없다고 설명했다.

 

노동자성 인정에도 여전히 허점은 존재해

대학원생 근로자의 업무를 노동으로 보는 시각이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노동자성이 인정된다고 해서 대학원생 근로자의 노동환경이 즉각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6년 동국대 대학원생 총학생회에서 행정조교에 대한 근로기준법 위반을 근거로 총장을 고소했고, 그 결과 서울노동청은 대학원생 업무 중 예외적으로 행정조교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따라서 행정조교를 고용할 경우, 학교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행정조교에게 퇴직금 지급과 4대 보험 혜택을 부여할 의무가 있다. 행정조교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자 2018년 우리 학교는 기존에 행정조교로 근무하던 대학원생들을 재임용하지 않았다. 안 노무사는 대학원생 근로자의 노동성을 인정하게 되면 학교 측에서 인건비와 같은 추가 비용 문제가 발생해 기존에 근무하던 대학원생 근로자의 생계가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의 특수한 정체성 고려한 새로운 차원의 논의

대학원생 근로자는 학생과 노동자의 경계 사이에 놓여있다. 고려대 정책기획팀장 유신열씨는 최저임금 제도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 근로자로 전환하는 기간제법 등 근로자의 생존권을 보호하겠다는 좋은 취지의 사회적 장치들이 지식근로자인 대학원생 근로자에게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대학원생 근로자의 노동자성은 결국 지식과 시간 중에 어디에 가치를 둘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므로 우리 사회가 지식사회에 맞는 새로운 계약 방식에 대해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기존의 근로기준법이나 근로계약서 체계에 이들을 끼워 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노동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근로계약과 이를 보장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노동위원회: 노동 문제를 중재하고 조절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합의제 기관으로 각 시, 도에 지방 노동위원회가 있다.

△갱신기대권: 근로자에게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전국 대학원생 노동조합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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