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응민 기자 (emlee1114@naver.com)

학칙은 복합적인 법적 성질 가져

구성원의 관심이 있다면 유연한 규칙으로 향할 수 있어

공동체에서는 구성원들이 합의해 규칙을 정한다.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대학 역시 수많은 구성원이 모인 공동체기 때문에 마땅히 지켜야 할 규칙인 학칙이 존재한다. 우리는 학칙에 의해 많은 활동을 인정받고 때로는 제한받지만 학칙의 명확한 근간과 효력을 잘 알지 못한다. 학칙의 제·개정 과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본지는 학칙과 더불어 우리의 대학 생활 속에 함께하는 다양한 규칙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 학교의 규칙 체계

우리 학교는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을 다루는 다양한 규칙을 위계질서 하에 정하고 있다. 교내 모든 규칙의 근간이 되는 것은 가장 상위의 학칙이며, 그 아래에는 시행세칙, 각종 규정 및 지침이 있다. 먼저 학칙은 각 대학의 건학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제정된 규칙이다. 학칙에는 학교 경영의 원칙과 필수사항인 편제 학사일정 학교운영 등이 정해져있다. 시행세칙은 학칙을 더욱 구체화한 것으로 학칙에서 위임되거나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정해놓은 것이다. 그 예시로는 복수전공 시행 방법 학과 진입 방법 학점 인정 등이 있다. 또한 그 아래에는 지엽적인 사항들을 다루는 규정과 지침이 존재한다. 우리 학교 교무팀 길환희 차장은 자주 변동되거나 학우뿐만 아니라 교강사 및 직원에게까지 반영되는 사항은 규정 혹은 지침의 형태로 정한다고 설명했다.

 

학칙의 법적 성질은 무엇인가

학칙은 고등교육법과 그 시행령에 뿌리를 둔다. 고등교육법이란 고등교육에 관한 사항을 정한 법률로, 국립 공립 사립학교에 적용된다. 고등교육법 제6조와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조에서는 학칙의 제·개정 당위성과 필수 기재 사항들을 정해놓았다. 그렇다면 학칙은 어떤 법적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 학칙의 법적 성질을 찾기 위해서는 학칙의 적용 대상인 대학의 법적 성질을 아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이에 대해 우리 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권철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재단과 *사단이라는 두 가지 *법인 유형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법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어 주로 국공립으로 운영해 대학을 국가의 재단으로 보는 독일의 관점과 이를 참조해 사립대학을 민법상 재단법인으로 바라보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으나, 엄밀하게 말하면 대학은 학교의 구성원을 전제로 하는 사단법인의 성격도 함께 가지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칙은 대학 공동체 자치 규범으로의 성질과 학교 사단 법인과 학생 사이의 재학 계약에서 비롯된 약관의 성질을 모두 가지게 된다. 다만 *약관규제법의 법적 성질에 따라 학칙을 약관으로 파악하는 관점에는 문제가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학생이 입학할 때 학칙에 대해 일일이 설명 받고 이에 대해 동의하진 않기 때문이다. 즉 효력이 발생하는 범위 안에서, 구성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성질과 사인(私人) 간의 계약에서 지키기로 한 약관의 성질을 복합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다. 권 교수는 획일적인 관점으로 학칙을 바라보기보단 자치 법규적인 성질과 계약적인 성질을 모두 가지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헌법에 규정된 대학 자치의 이념에 비추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학칙에게 관심을

학우들은 공동체의 규칙이자 계약의 성질을 가진 학칙에,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계약의 당사자로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학칙이 인정하고 제한하는 사항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면 문제의식을 느끼고 제·개정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지난 2010년과 2014년에 대학가에는 위헌학칙개정운동이 일어났다(본지 1560대학생이 만드는 안녕한 학칙기사 참조). 이는 학칙 중 대자보 및 학생 간행물과 관련해서 대학생의 기본적인 표현 활동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 위법이라는 의견을 근거로 학칙 개정을 촉구했던 운동이다. 당시 우리 학교의 학칙 제57(학생활동의 승인)와 제58(금지 활동)가 기관장의 승인을 전제로 함과, 학교의 교육 목적에 어긋나는 학생 활동이 금지되는 것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한다고 대학생 민주 학칙 개정 운동을 이끌어온 박주민 변호사에게 자문받은 바 있다(본지 1560대학가 위헌 학칙 논란 속 우리 학교 학칙 들여다보기기사 참조). 이에 최기범(컬처테크 19) 학우는 학우들의 활동이 기관장의 판단으로만 제한받는 것이 우려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권위(컬처테크 19) 학우는 사립 단체가 아닌 교육기관으로의 목적을 고려한다면 질서를 위해 이 정도 제한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처럼 학칙에 있어 학교의 교육 질서 확립과 학생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사이의 균형 잡기는 꾸준히 학우들이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학칙의 제·개정 과정

학칙의 제·개정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질까. 이는 다양한 학내 구성원의 건의로 시작된다. 학교 행정 조직이 구성원의 건의를 검토한 뒤 문서화해 그 조직의 기관장에게 검토받는다. 기관장은 이를 교무처에 전달하고, 교무처는 교무위원회에 안건으로 회부한다. 교무위원회란 학교 운영에 관한 중요한 정책을 심의하기 위한 위원회로, 총장 부총장 대학원장 학장 처장 등의 기관장급 인사들이 참여한다. 교무위원회는 총장에 의해 소집되며 재적 위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개의되고 그 과반수의 찬반 결과로 의결한다. 의결된 학칙 안건은 대학평의원회의 검토를 거친다. 그 후 이사장의 최종 승인을 받게 되면 학칙이 제·개정 된다. 이처럼 학칙 제·개정을 위해서는 다양한 기관의 검토와 의결이 필요하다. 학우들이 학칙 제개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학생회를 통해 학생지원팀에 건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길 차장은 아무래도 특정 개인의 사례보단 보편적으로 많은 학우가 불편함을 겪는 사항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 행정 조직 입장에서도 검토하기 편리하다학생회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지민(미디어 20) 인사캠 부총학생회장총학생회는 학교와 학우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대학평의원회에 양 캠퍼스 총학생회장도 평의원 자격으로 참석하기 때문에 학우들이 학칙 제·개정에 의견을 내주면 대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연한 규칙은 관심으로부터

결국 학칙은 대학을 구성하는 수많은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을 정하는 동시에 효율적인 학교 운영을 위해 존재한다. 모든 공동체가 그렇듯,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불변의 규칙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규칙을 적용하고 바꾸는 것이 학칙의 존재 이유를 더욱 빛나게 해줄 것이다. 이를 위해선 규칙에 의해 인정받거나 제한받는 당사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학우들이 학칙의 근간과 효력, ·개정 과정에 관심을 가진다면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마땅히 누리고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길 차장은 학우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스스로가 그 이유와 기준을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재단=일정한 목적에 바친 재산을, 개인 소유가 아닌 독립된 것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법률적으로 구성된 법인.

사단=법률에 의해 법률적인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인정을 받은 법인.

법인=자연인이 아니면서 법에 의해 권리 능력이 부여되는 사람의 집단이나 재산. 법률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약관규제법=공정한 내용의 약관과 그 사용을 규제하는 법. 거래 상대방이 알아볼 수 있도록 약관을 굵고 큰 글자로 명확히 밝히고 설명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시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