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송선교 기자 (ddoong0404@naver.com)

내가 쓴 기사를 잘 읽지 않는다. 애정이 없어서도, 귀찮아서도 아니다. 그 기사들은 사실 내 기사가 아니다.

 

첫 기사를 쓰던 때를 기억한다. 열정 가득한 모습만이 떠오른다. 문화인들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설렘을 느꼈고, 학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다움을 느꼈다. 기사를 쓰는 건 그런 내 세상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내 세상을 잘 담아낸 만족스러운 기사가 나왔고 성취를 느꼈다. 자부할 수 있는 내 기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기사를 쓰던 때를 기억한다. 열심히 탐사한 내 세상을 기사에 잘 담았다. 필요한 내용을 잘 다룬 좋은 기사라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성취를 느낄 수 없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느낀 세상을 잘 담았다고 해서 좋은 기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성실히 취재한 것을 성실히 담아냈다면 그것은 그저 잘 쓰인 기사일 뿐, ‘좋은 기사가 아니다. 이 기사도, 지난 나의 모든 기사도 더는 편히 자부할 수 없었다.

 

좋은 기사는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설렘과 인간다움을 보고 흥미를 느껴 문화를 한번 체험해보는 변화, 문제의식을 보고 공감해 목소리를 내는 변화 말이다. , 내 세상이 당신의 세상으로 확장되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좋은 기사는 내가 쓰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만드는 것이다.

 

추가로, 당신의 변화가 비로소 세상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소망이 있다. 체험이 모여 문화가 발전했으면 좋겠다. 목소리가 모여 제도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기사에 담긴 것이 더는 내 세상도, 당신의 세상도 아닌 것이 되기를 바란다.

 

이에 나는 기꺼이 내 기사를 당신에게 내어주겠다. 내 세상이 당신의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내 기사의 주인이 당신이기를 바란다. 당신이 주인인 기사가 비로소 세상에 변화를 불러오고 더는 우리의 세상을 담는 것이 아니게 되면, 그때 기념품처럼 기사를 다시 돌려받겠다. 당신이 만든 좋은 기사를 뻔뻔히 내 기사라고 자부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이번 기사를 쓰는 지금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당신의 기사를 대필했다. 취재하며 지새운 밤부터 지면에 찍힌 활자까지도 이제 온전히 당신의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길 바란다. ‘B급 코드는 재미있고 편안한 문화일까, 혹은 엉성하고 저급한 문화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의의가 있을까. 생각해봤다면, 새롭게 행동해볼 준비가 됐는가? ‘좋은 기사를 선물 받을 훗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