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가현 편집장 (dreamer7@skkuw.com)

더 좋은 글감이 있을 듯해 종일 뉴스를 뒤적였다. 한 학기에 8개의 신문을 펴낸다는 건 필자에게 허락된 지면의 기회도 8번뿐이라는 의미다. 편집장직을 맡으며 필자는 감사하게도 8번이나 글문을 열 수 있게 됐다. 문장 하나하나가 치열하게 쓰여야 하는 지면 위에 개인의 의견을 담는 일은 과분하면서도 애틋하다. 그렇기에 주어지는 기회마다 단 한 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 됐든 지금 하려는 말보다 나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더 심각하고, 보다 시의성 있고, 훨씬 중요한 말이다. 이 글을 펴내고 싶지 않아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는 동안 필자는 빨대로 음료를 마셨다. 엎지른 물을 닦기 위해 물티슈 몇 장을 사용했다. 분리수거를 미룬 채 쓰레기를 한곳에 몰아넣었다. 필자의 흔한 일상이었으므로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창밖의 풍경이 어딘가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신문의 발간 일정과 필자에게 남은 마감 기한 따위를 셈하다가, 문득, ‘원래도 꽃이 이렇게 이르게 피었던가?’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제 겨우 4월의 문을 열었는데 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3월 끝자락부터 하나둘 꽃이 피더니, 이제는 만발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각기 다른 시기에 개화할 꽃들이 기후위기로 인한 고온 현상으로 일찍 꽃망울을 터뜨린 까닭이다. 한번 주위를 둘러보자. 이상하지 않은가? 벚꽃과 개나리와 철쭉과 매화와 진달래가 순서를 지키지 않고 한 데 피어나 다채로운 정경을 만들어낸 것이 말이다.

 

코앞에 다가온 위기가 너무나 일상적이고 아름다운 탓일까,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식상할뿐더러 사람들에게 일말의 감흥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고민 끝에 환경을 주제로 글을 적어볼까 한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도 주위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조금 흔한 얘기인 것 같은데하고 걱정을 사기도 했다. 사방을 구르는 플라스틱 빨대와 마르지 않은 물티슈와 구분 않고 뒤섞인 쓰레기들 틈에서, 역사상 가장 아름다울 봄 풍경을 뒤로한 채 말이다.

 

분명 기후변화가 이제는 기후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던 때까지만 해도 필자에게 있어 재난은 영화나 소설 속에 그려지듯 참혹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봄이다. 벌꿀이 수분 시기를 놓치고 생태계가 혼란에 빠지는 중에도 바깥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봄이 언제까지 봄일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온실가스가 배출될 경우, 21세기 후반에 이르면 일부 지역에서는 벚꽃 개화 시기가 2월까지도 앞당겨질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해 겪었던 227.3일의 기상가뭄과 6월의 열대야는 본질적으로 이 봄과 멀리 있지 않다. 이 위기는 언제까지 아름다울 수 있을까?

 

독자에게 고백할 것이 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 글을 펴내도 될지 망설였다. 더 심각하고, 보다 시의성 있고, 훨씬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이 부끄러운 생각을 고백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어쩌면 당신 또한 환경 이야기를 지루하게 느껴본 일이 없는지, 이 봄을 막연히 아름답게만 여기진 않았는지 묻기 위해서. 이토록 아름다운 위기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