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성공을 갈망하는 시대다. 성공의 종류는 다양하다. 문제는 성공도 사로잡히면 집착과 중독이 된다. 성공은 더 큰 성공만 갈망하게 하고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심한 경우,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고, 때론 인생이 망가진다. 그렇다면, 성공하는 인생은 무엇일까? 이점에서 아래 이야기는 Easter(부활절)를 맞아 생각거리를 남긴다.   

기원전 9세기 시리아에 한 장군이 있었다. 그는 전쟁마다 거듭 승전해서 육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왕과 백성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의 지위, 부, 명예는 최고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는 나병환자였다. 그는 병을 고쳐보고자 애써 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어느 날, 자기 집안에 있는 어린 히브리 여종이 자기 고향의 신유의 은사가 있는 예언자를 한 명 소개했다. 그는 그 예언자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당시 시리아(아람)는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국이었다. 그는 성공한 사람답게 먼저 아람 왕을 찾아가 추천 서신을 받았고, 치유되면 예언자에게 줄 금과 은도 두둑이 준비했다. 그는 성공한 사람답게 준비와 예비가 철저했다. 

시리아의 총사령관이 온다고 하자, 이스라엘 왕실은 발칵 뒤집혔다. 병을 빌미로 고치지 못하면 침공할지도 모른다고 신하들은 왕에게 말했다. 예언자는 걱정하지 말고 자기에게 보내라고 했다. 장군 일행이 예언자 집에 도착했다. 예언자는 직접 마중 나와 보지 않고, 사환을 통해 요단강에 내려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전달했다. 본인이 직접 나와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아랫사람을 시켜 명령을 하달하니 장군은 화가 났다. 그는 시리아 왕의 서신과 자기의 지위에 맞는 대접을 기대했다. 어쩌면, 그는 성공한 사람답게 자신이 준비한 왕의 서신과 금은보화로 예언자의 완치를 사려 했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실 예언자의 요구는 아주 쉬웠다. 아주 쉬워서, 아주 어려웠다. 강에서 몸을 일곱 번만 씻으면 됐는데, 자기의 성공 공식과 너무나 달라서 어려웠다. 고국으로 그냥 돌아가려고 한 그를 붙든 것은 신하들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시키는 대로 해보자고 했다. 그들의 만류에 마지못해 몸을 담갔다. 한 번, 두 번... 여섯 번째까지 아무 일이 없었다가 7번째 몸을 강에 담그니, 거짓말처럼 그의 피부는 아기 피부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도 아무 손색이 없다. 성공한 사람의 성공방식을 보기 좋게 뒤집어 주어 그렇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살아남은 이유는 숨은 주인공이 한 명 더 있어서다. 

바로 어린 노예 여종이다. 당시는 전쟁이 나면, 승자가 패자의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남자는 어른이고 아이고 모조리 죽였고, 여자는 욕을 보이고 죽였다. 어린 여자들만 노예로 쓰기 위해 승자 나라로 데려갔다. 틀림없이 그녀도 전쟁으로 나라를 잃고, 부모를 잃었을 것이다. 전쟁을 총 지휘한 사람의 집에 노예로 들어갔으니, 그녀에게 총사령관인 그는 나라와 부모의 원수였다. 통상적인 사람이었으면, 그를 살해하는 것이 자기 인생의 목표였을 것이고 이를 성취하는 것만이 자기 인생의 성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참혹한 전쟁이 빚은 결과가 자기 인생의 목표가 되고, 자기를 지배하는 주인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이 파생한 비극적인 복수의 칼은 하늘에 맡겼고, 자기는 보복의 마음을 비웠다. 그렇게 하자, 새로운 눈이 열렸다. 강국의 총사령관인 그가 자기보다 더 불쌍해 보였다. 여종은 그와 달리 지위도 돈도 명예도 없었지만, 이를 모두 가진 그를 도리어 자기 땅에 사는 유능한 예언자를 소개하여 완치의 길을 열어주었다. 원수지간일 수 있는 관계를 생명의 은인지간으로 바꾸는 사람이 되었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나라는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뉘었다. 후자는 전자보다 먼저 철저히 멸망했다. 그런데도 이 장군과 여종의 이야기는 열왕기하에 살아남았다. 장군과 여종을 보면, 자기의 성공 방식을 부인하는 것, 혹은 자기가 처했던 참혹한 상황이 자기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진짜 성공으로 가는 첫 발걸음인지 모르겠다.   

 

 

 

이중원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