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나래 부편집장 (naraekim3460@naver.com)

본 칼럼은 영화 <애프터썬>의 내용과 결말을 담았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영화 <애프터썬>은 감상 직후에는 그 여운이, 다른 매체를 통해 전문가의 해석을 들은 뒤에는 해석에 의한 충격이 크기 때문이다. 

“아빠한테는 뭐든지 말해도 되는 거 알지? 아빠도 다 해본 거니까 뭐든 얘기해도 괜찮아. 그런 일 있으면 말해줘, 알았지?” 두 부녀가 떠 있는 아름다운 바다와도 같이, 부모의 아량은 한없이 넓다. 이 장면을 보며 나의 삶에 절대적인 지지자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말을 남긴 뒤 아빠가 떠나버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처음에는 ‘이럴 거면 그렇게 말하지 말지’하고 원망스럽지 않을까. 이후에는 내 곁을 지키려 안간힘을 썼음에도 그러지 못했을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며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까. 

11살인 소녀 소피와 아빠 캘럼은 단둘이 터키를 여행한다. 이혼한 가정이기에 서로 떨어져 사는 아빠와 소피가 시간을 보내고자 여행을 떠난 것이다. 여행은 그야말로 휴양 여행으로, 둘은 한 호텔에 오래 머무르며 수영장, 바다 등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아빠는 다이빙 자격증이 없음에도 이를 프로그램 측에 속이고서라도 소피에게 바닷속 모습을 보여주려 하기도 하고, 소피의 손을 이끌고 수영장에 들어가 수구를 하며 재미있는 하루를 만들어주려 한다. 

영화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소피가 참 어른스럽다는 점이었다. 호텔에서 만난 언니 오빠들의 애정행각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엄마와 아빠의 이혼도 역시 속 깊게 이해한다. 오히려 이러한 소피의 모습과 대비돼 때로는 아빠가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소피는 호텔에서 열린 장기자랑에 몰래 참가를 신청한다. 이름이 호명된 뒤 소피가 무대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며 아빠가 나오도록 유도함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소피를 외면하는데, 이 모습은 특히 안타깝다. 여행 중 어느 밤, 아빠가 호텔방 안에서 혼자 잠들어버려 소피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프런트 직원의 도움으로 방에는 무사히 들어가지만, 소피는 이러한 아빠의 모습조차 이해해주고 그를 탓하지 않는다.

소피는 아빠의 행동을 이해해줬지만, 아빠를 몰랐다. 아빠에게 행동을 되묻거나 투정하지 않았을 뿐, 동시에 아빠의 상황과 마음까지는 알지 못했다. 너무 어렸으니까. 닫힌 방에서 아이까지 외면하며 아빠가 무얼 했는지, 아빠가 왜 이렇게 나에게 잘해줬는지. 아빠는 이미 떠날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는 괜찮을 거예요, 당연히 괜찮을 겁니다.” 영화 내내 캠코더로 이것저것을 기록해두는 소피가, 스쿠버다이빙을 한 아빠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부모는 우리 기억 속에 위험한 일을 해도 언제나 괜찮고 내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하니까. 필자가 소피의 아빠를 그의 이름이 아닌 아빠라 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소피이고, 엄마는 엄마고 아빠는 아빠다. 어른이 된다면 부모의 개인적인 삶, 그리고 그들의 닿을 수 없는 깊은 허무를 체감할 수 있을까? 어디서나 날 위해 비출 줄 알았던 태양이 없어진다면. 

김나래 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