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소윤·임규리 (webmaster@skkuw.com)

자유로워 보였던 당신의 선택이 사실 의도된 것이라면 어떨까. 강압이 아닌 부드러운 개입을 뜻하는 넛지(Nudge)는 인간의 선택이 유도될 수 있음을 전제한다. 바로 이 효과를 적용한 ‘넛지 디자인’은 외형을 넘어 인간의 내면적까지도 디자인한다. 나아가 넛지 디자인은 공공의 가치와도 결합해 사회를 더 바람직한 쪽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 선한 힘은 결코 강요하지 않으나, 때로는 강제성보다도 더 강력하다. 그리고 이는 사소한 시도와 관심에서 출발했다. 매일 지나친 일상 속에도 미처 인지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우리를 변화시키는 넛지 디자인이 있다.

① 건강 기부 계단

밟으면 소리가 나고 기부도 되는 계단이 있다. ‘건강 기부 계단(피아노 음악 계단)’이다. 건강 기부 계단은 피아노 소리와 기부 시스템으로 흥미를 유발해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도록 이끈다. 계단을 밟으면 단마다 다양한 피아노 소리가 나오며 한 이용자당 10원의 적립금이 계단 옆 전광판에 기록된다. 사진 속 부산 경성대‧부경대 역 계단은 지난해 기준 누적 770만여 명의 사용자와 총 1억 2천만 원의 기부액을 달성해 저소득 어린이 후원을 도왔다. 절전 효과와 더불어 건강한 계단 이용 생활화 그리고 기부문화 정착까지 유도하는 대표적 넛지 디자인이다.

 

② 노면 색깔 유도선

도로를 달리다 보면 여러 색의 ‘노면 색깔 유도선’이 눈에 띈다. 이는 운전자들에게 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넛지 디자인으로, 안산 분기점 사망사고에 안타까움을 느낀 한국도로공사 윤석덕 차장이 낸 아이디어다. 주로 교통량이 많아 혼잡한 도로 등지에서 볼 수 있으며 분홍색, 연한 녹색, 녹색 등으로 표시된다. 노면 색깔 유도선은 강렬한 색을 따라 운전하게 되는 심리를 이용해 복잡한 도로에서 운전자의 차선 변경을 저절로 줄인다. 한국도로공사에서 지난 2017년 고속도로 분기점과 나들목 76곳을 조사한 결과, 노면 색깔 유도선 설치 후 교통사고는 약 27% 감소했다. 지난 2021년 노면 색깔 유도선은 법제화까지 이뤄지며 그 효과를 인정받았다. 


③ 옐로 카펫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는 노란 삼각형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린이 교통안전을 위한 설치물인 ‘옐로카펫’이다. 옐로카펫은 안전한 대기 구역을 노랗게 칠해 무의식적으로 어린이들이 그 위에서 신호를 기다리도록 한다. 또한 어린이가 더 잘 보이게 해 운전자의 주목과 감속을 유도한다. 실제로 도로교통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옐로카펫 설치 시 초등학생 이하 보행자의 횡단보도 대기선 내 대기 비율이 약 24.7%p 상승했다. 또한 한국교통대의 연구 결과, 운전자의 보행자 인지율은 25.4%p 높아져 교통사고 감소에 기여했다.


④ 꽁초픽

 

‘꽁초픽’은 담배꽁초 무단투기를 막으려 서울시 영등포구가 제작한 담배꽁초 수거함이다. ‘꽁초’와 ‘픽(pick)’의 합성어로, 상단에 질문이 적혀있고 하단 양쪽에 답변이 있어 원하는 쪽에 담배꽁초를 버리도록 유도한다. 일례로 ‘영등포 대표 공원은?’이라는 질문과 함께 영등포 공원과 선유도 공원이라는 두 선택지가 표시된 꽁초픽이 있다. 꽁초픽은 지난 2015년 상권 밀집 지역에 우선 설치됐다가 지난해 기준 영등포구에만 240여 개로 확대됐다. 이는 청결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친환경 넛지 디자인이 됐다.


⑤ 장수 의자

 

횡단보도 옆의 신호등 기둥에는 작은 의자가 하나 달려 있다. ‘장수 의자’라 불리는 이 시설물에는 교통약자의 무단횡단을 막겠다는 취지가 담겼다. 교통약자 무단횡단의 원인이 불편한 몸으로 신호를 오래 기다리기 어렵다는 데에 있음을 발견한 유창훈 경찰관이 남양주 별내파출소장으로 재직 당시 고안했다. 장수 의자는 보행자의 앉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유도함으로써 무단횡단을 줄인다. 한국디자인포럼의 연구에 따르면 교통약자 응답자의 84%가 이 시설의 필요성에 공감하기도 했다. 이처럼 장수 의자는 무단횡단 금지라는 강제성보다 쉬어가는 배려를 제공함으로써 이들에게 필요한 넛지 디자인이 됐다.


⑥ 무지개 식판

 

매일 전국의 급식에서 발생하는 수백 톤의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꼽힌 것은 다름 아닌 식판에 그어진 작은 선이었다.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실제 학생들의 섭취량보다 식판에 담기는 음식량이 더 많기 때문임을 양정중학교 학생들이 포착한 것에서 이 디자인이 시작됐다. 음식의 적정량을 표시한 무지개 식판은 사람들이 음식량을 적절히 조절하도록 유도한다. 실제 학급에서 열흘간 이 식판을 사용한 결과, 잔반이 약 70% 줄어들었다. 단지 선을 몇 개 그어 놓은 식판만으로 음식물 쓰레기의 발생과 처리 문제를 개선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⑦ 벽화 마을

 

화사한 벽화는 밝은 마을 분위기를 조성해 낙후되고 무질서했던 마을을 주민들이 질서 있게 유지하도록 만든다. 정돈된 환경은 주민의 외부 활동과 상호작용, 그리고 외부인의 유입까지도 이끈다. 이를 통한 지역사회의 활동성 증대는 마을에 대한 자연적 감시를 강화해 범죄 불안감의 감소에도 영향을 준다. 그러나 벽화로 인한 방문객의 과도한 유입은 범죄 건수의 증가를 초래하기도 했다. 사진 속 부산 감천 문화마을은 비슷한 환경의 인근 마을과 비교해 벽화설치 전후 2년간 노상 범죄 건수를 33%까지 유의미하게 줄였다. 그러나 지나친 관광지화로 전후 5년간의 노상 범죄가 다시 비교 집단에 비해 11% 증가했다. 넛지 디자인 효과의 지속성을 확보하려는 계속된 관리와 함께, 사람들의 변화가 가져올 또 다른 문제에 대한 대비와 관심이 필요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