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우혁 (wh776500@skkuw.com)

 

초대형 모바일 뱅크런,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어  

해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예금자보호한도 낮은 편

미국 실리콘 밸리 은행(Silicon Valley Bank, 이하 SVB)이 파산한 데 이어 스위스 은행 크레디트 스위스와 독일의 도이치뱅크도 재정 문제가 발생하자, 은행의 안정성 문제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은행 파산 시 예금보험공사가 은행 대신 예금자에게 예금을 지급해주는 예금자 보호액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도 이 사안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오는 8월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SVB 파산의 원인은 무엇이고 우리나라 예금자보호한도 인상 문제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자.

40년 역사의 SVB, 막을 내리다
지난달 12일 40년의 역사를 가진 SVB가 단 36시간 만에 파산했다. SVB가 파산한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해 이뤄진 지속적인 금리 인상과 SVB의 투자 실패다. 금리가 오르자 SVB의 주 거래처였던 미국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SVB에 예금했던 돈을 대거 인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SVB는 기업들의 예금자금을 미국 장기 국채에 투자하고 있었는데 금리 인상으로 인해 보유하고 있던 국채의 가치가 폭락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거래처의 대규모 인출 요구에 SVB는 투자했던 자금을 어쩔 수 없이 헐값에 처분했고 그 결과 18억 달러(한화 약 2조 4천억 원)의 손실을 보게 됐다. 이 소식을 들은 예금자들은 예치해뒀던 자금을 회수하고자 모바일뱅킹으로 자금을 즉시 인출했고, 지난달 9일 하루 동안 전체 예금액의 24%인 420억 달러(한화 약 55조 5천억 원)가 빠져나갔다. 대규모 모바일 *뱅크런에 SVB가 더 이상 은행으로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미 금융당국은 다음날 SVB를 폐쇄했다. 우리 학교 경제학과 이승덕 교수는 “파산할 수도 있다는 정보만으로 예금자들이 즉각적으로 뱅크런을 했다”며 모바일 뱅크런이 SVB 파산을 가속화했다고 설명했다. 금리상승으로 인한 거시경제의 변화가 SVB 파산의 일차적 원인이었으나 모바일뱅킹을 통해 초고속 입출금이 가능해진 시대적 상황이 급속한 파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우리나라 은행은 괜찮을까요?

문제는 은행 파산 사태가 미국에만 국한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진투자증권 허재환 애널리스트는 “예금자에게 예금을 받아 기업에 대출해주는 은행은 인체로 비유하면 혈관에 해당한다”며 “은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결국 거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해당 국가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세계 경제는 직접적으로 자산을 공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국제 금융시장을 통해 모두 연결돼 있다. 실제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중소형 은행들이 파산한 후 리먼 브라더스와 같이 굳건해 보였던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들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SVB 파산으로 인한 공포감 때문에 우리나라도 지난달 DGB금융지주(-12.66%), 하나금융지주(–11.12%) 등 은행주들의 약세가 눈에 띄었다. 허 애널리스트는 “SVB 파산에 불안감을 느낀 은행들은 안전한 자금 확보를 위해 대출 기준을 높일 것이고, 대출이 둔화하면 돈이 풀리지 않아 거시경제도 함께 나빠질 수 있다”며 SVB 파산이 우리나라 은행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은행을 이용하는 다수의 고객이 모바일뱅킹을 사용하기 때문에 SVB 파산에 도화선 역할을 한 모바일 뱅크런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비대면 금융 거래 비율은 2015년 28.8%에서 지난해 51.2%까지 높아졌다. 우리나라 은행도 파산할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지자,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해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예금자보호한도, 이렇게 낮아도 돼? 

예금자보호한도는 금융사가 파산해 예금자에게 예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됐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금융사 대신 지급해줄 수 있는 예금의 최대한도다. 한도의 범위는 정부 부처인 금융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예금자보호한도를 설정해 예금자를 보호하고 동시에 거시경제 측면에서 금융 안전을 지킬 수 있다. 

한편 IMF 당시, 우리나라는 거시경제 안정화와 폭넓은 예금자 보호를 위해 예금자보호한도를 두지 않고 예금액 전액을 보호했다. 그러나 전액을 보호하자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가 됐고, 이에 2001년 예금자보호한도가 5천만 원으로 정해져 이후 23년 동안 동결됐다. 반면에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예금자보호한도를 인상했다. 이 교수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 타격이 상대적으로 약했다”며 우리나라가 예금자보호한도를 인상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예금자보호한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낮은 수치다. 미국의 경우 예금자보호한도가 25만 달러로 우리 돈으로 약 3억 2천만 원 정도고 독일은 11만 달러로 약 1억 4천만 원 정도다. 국가별 1인당 국내총생산(이하 GDP) 대비 예금자보호한도 비율도 우리나라가 1.3배로 미국 3.33배, 일본 2.27배 등에 비해 낮다. 일반적으로 GDP가 상승하면 고객의 예금액도 함께 상승한다. 실제로 2001년 대비 2021년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약 2.7배 상승했고, 예금액은 약 5배 상승했다. 따라서 GDP 대비 예금자보호한도가 낮을 경우, 예금자보호한도가 예금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는 등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예금자보호한도 변천내역과 주요국 1인당 예금 보호한도.
일러스트 | 홍윤지 외부기자 webmaster@

예금자보호한도 인상, 다양한 논의 이뤄져

이에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정치권과 금융권의 목소리가 증가하고 있다. 예금자보호한도를 인상하면 은행 파산 시 예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예금자들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고 뱅크런의 비율을 낮출 수 있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예금액의 일부만 *지급준비금으로 남겨두는 부분지급준비제도를 따르기 때문에, 대규모 뱅크런으로 인한 파산의 위험성을 항시 안고 있다. 이 교수는 “은행이 안고 있는 위험 요소 때문에 예금자들은 작은 불안에도 인출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금자보호한도를 인상하면 이에 따라 촉발되는 대규모 인출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금자보호한도가 우리 경제 규모에 맞지 않는 점도 한도 인상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2001년에 비해 현재 180%나 상승했음에도 예금자보호한도는 그대로였다. 이에 우리나라의 GDP가 오른 만큼 국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됐으니 그에 맞게 예금자보호한도를 올리는 방향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먼저, 예금자보호한도를 인상하면 금융회사에서 부담하는 예금 보험료가 올라가는데 인상된 보험료는 은행에서 예금 금리를 인하해 충당한다. 따라서 예금자들이 받을 이자가 줄어들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예금자보호한도가 인상되면 은행들은 위험성이 큰 투자를 감행하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High Risk-High Return)의 투자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교수는 “예금보험공사가 많은 액수를 보호해줄 경우 은행은 투자했다가 실패하더라도 손실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 예금액을 더 위험한 곳에 투자할 경제적 유인이 생긴다”고 말했다. 
 

예금자보호한도 인상, 우리의 일상과 맞닿은 중요한 문제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은 청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 학교 김창우(철학 19) 학우는 “사회초년생인 청년은 예금자금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보니 예금자보호한도 인상 문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고 답했다. 예금자보호한도 인상 문제가 당장은 청년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고금리 여파로 정부가 청년 저축을 장려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예금자보호한도는 청년에게 멀기만 한 문제는 아니다. 청년 저축 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는 오는 6월 청년도약계좌를 출시한다. 청년도약계좌에 5년간 월 70만 원을 저축하면 5천만 원을 모을 수 있다. 한 은행에 청년도약계좌 외에 일반 예금 등 다른 예금 계좌를 보유할 경우, 청년도 5천만 원 이상의 예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예금자보호제도는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과 같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회보장제도의 성격을 띠고 있어, 오는 8월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여부의 결정이 내려질 경우에 이후에 쉽게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교수는 “예금자보호한도는 1년 혹은 5년마다 정기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다가올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청년들이 이번 금융위원회의 결정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사태.

◆지급준비금=금융기관이 예금 등 금전채무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부분을 의무적으로 보유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