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여성들과의 교류 부족하면 그들만의 리그 될 수도

기자명 이경미 기자 (icechoux@skku.edu)

   
정치는 ‘50대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기존 인식이 무색할 만큼 여성 정치인들의 소식이 연일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17대 총선 비례대표의 경우 여성후보 91명이 출마해 47.9%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여성 비례대표 후보를 50% 이상 공천하도록 권고한 개정 정당법에 힘입은 성과로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한 여성계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그러나 그 실천의 과정에서 여성계 내부의 분화 조짐이 일고 있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실천 방법에 있어서 ‘제도적 차원의 정치세력화’와 ‘민주·소수운동의 원칙에 따른 정치세력화’로 나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균등한 기회 조성 시급”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17대 총선 후 30∼40명 내외의 여성들이 국회에 진출할 것으로 예측된다. 16대 국회의 여성 국회의원이 16명에 불과했음을 감안하면 두 배 가량 높아진 수치이지만, 전체 의원 수에 비하면 여성의 정치 참여율은 여전히 낮다. 학계에서는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기 힘든 원인에 대해 △가부장적인 사회 문화 △남성우월주의로 인한 여성들의 자신감 상실 △자녀양육문제 △경제활동에 따른 제약으로 인한 정치자금 조달문제 등을 꼽고 있다.

한국 여성단체연합의 김금옥 정책국장은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며 “현재로서는 최소한의 양적인 확장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성정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개혁적·민주적인 내용을 운동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 여성과의 교류가 더 중요”

반면 여성주의 저널 ‘일다’는‘여성국회보내기 운동 방향타 돌려야’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총선을 앞두고 여성계의 운동이 여성 국회의원 비율을 올리는 것에만 치중돼 있음을 지적하며 여성 유권자 운동과의 연계를 강조했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공동대표: 이수자·임옥희, 이하: 여이연)의 문현아 연구원 역시 “여성의 정치 세력화라는 말이 현실 정치계에서 여성세력의 확장이라는 의미로만 통용되고 있다”며 “이러한 관점은 촛불집회를 비롯한 대중운동을 정치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여성신문은 보수정당의 여성대표 사진 아래 ‘여성정치의 개화기를 알리는 서곡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문장을 삽입, 정당에 관계없이 여성후보를 지지한다는 인상을 줘 진보 성향이 강한 여성운동 사회에 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논란을 두고 일각에서는 “호주제 폐지 문제를 두고 반대하는 당의 여성의원과 찬성하는 당의 남성의원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들은 국회에 생물학적 여성의 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여성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 연구원은 “집단화되지 않은 여성 정치인들은 기존의 남성위주 정치 문화에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며 단순히 성별을 근거로 여성들에게 정당을 뛰어넘는 동질성을 기대하는 태도를 경계했다. 과거 기성 정당에 속한 여성 정치인들이 호주제 폐지 등의 민감한 여성관련 사안에 대해, 당론을 이유로 여성계의 요구를 외면한 사실이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풀뿌리 여성유권자 운동

일반 여성들의 힘을 이용해 제도적 차원에서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이룰 수 있는 대안으로 미국의 ‘에밀리 리스트 운동’이 거론되고 있다. 1985년 미국에서 등장한 에밀리 리스트는 여성 유권자들에게 여성 후보자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이 선택한 후보에게 직접 돈을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기부자 네트워크이다. 이후 이들은 호주, 영국, 이탈리아 등으로 확산돼 진보적인 여성 정치인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또 여성 유권자들의 힘을 모으고 선거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도 십년 째 시행중이다. 미국에서 이 운동의 지지를 받고자 하는 후보는 민주당 소속으로 낙태 합법화에 찬성해야 한다.

문 연구원은 “한국에서도 조만간 이와 같은 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후보자 개개인의 정치적 신념, 여성주의적 입장 등을 고려해 굉장히 세분화된 기준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 여성에게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948년으로, 이듬해 안동 보궐선거에서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된 임영신 의원이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다. 이후 지난 15대 국회까지 여성의원 비율은 평균 3%에 불과할 정도로 남성 위주의 정치가 이뤄졌다. 김옥선 의원이 남장을 하고 정치 활동을 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는 우리의 불평등한 정치 지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남장 여성 국회의원’과 같은 사례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탄핵 이후 여성운동 내부에서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남에 따라, 여성계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