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봄이 왔다. 열흘 정도 앞당겨 왔다. 개나리, 진달래 뿐 아니라 벚꽃까지 피어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담 너머로 보이는 비원의 숲도 옅은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일년 중 비원 숲의 색깔이 가장 아름다운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점심 식사 후 햇살을 받으며 한차례 걷고 싶을 때다. 오후 한때 잠시 책을 덮고 봄바람에 실려오는 꽃내음을 맡으면서 교정을 거닐고 싶을 때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학교가 너무 좁다. 학생은 너무 많다. 단위면적당 인구밀도가 너무 높다. 녹음 우거진 숲도 없다. 자연을 즐길 공간도 없다. 조용히 사색하며 걸을 분위기가 못된다.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좁은 공간에서 사람에 치여 지내야 하는 게 우리의 처지다.
본시 학문은 한가롭고 여유 있게 소요(逍遙)하는 가운데 싹텄다. 물론 시절이 달라졌으니 과거와 같은 분위기만 고집할 수는 없다. 그래도 책에 열중하다가 잠시 숨 돌릴 공간은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걸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장소는 필요하다.
본교에는 이러한 공간이 전혀 없다. 연구실과 교실도 부족한 터에 무슨 배부른 말이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본교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연구 및 강의공간의 확보가 무엇보다 절실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학교가 사색공간의 필요성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현실 여건이 어려워도 생각이 있으면 대책 마련을 위해 지혜를 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자리를 빌어 학교 당국에 몇 가지를 주문하고자 한다.
첫째, 사색공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길 바란다. 연구 및 강의공간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생각이 숨쉴 수 있는 공간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연구와 공부에 지친 구성원들이 찾을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전체 부지가 절대적으로 좁은 것은 사실이지만, 학교 당국이 공간활용의 효율성을 보다 높여 생각의 안식공간을 마련하는데 좀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둘째, 공간의 협소함을 문화적 성숙함으로 풀어갈 것을 제안하고 싶다. 우리 대학의 공간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학내의 문화적 역량을 심화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정신적으로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칸트(I. Kant)는 평생 그의 고향인 쾨니히스베르그를 떠나 본 적이 없지만, 그는 우주 전체의 문제를 사유할 수 있었다. 우리 학생들도 좁은 성대의 공간을 벗어날 수 없지만 이러한 사유능력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이들의 문화적 소양을 배양시킬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접한 지역에 부지를 마련해 학내 공간을 분산시키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최근 대학로에는 상명대학, 동덕여대 등 여러 대학이 진출하여 소규모 캠퍼스를 마련하고 있다. 본교는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러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하루 빨리 이러한 쪽에도 눈을 돌려 공간 문제의 숨통이 트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