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여성·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삶

기자명 이경미 기자 (icechoux@skku.edu)

지난 수요일 오후 7시 반. 명동성당 들머리에는 백여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이라는 주제로 독립영화가 상영되기 때문이었다.

시린 겨울부터 이 곳을 지켜온 이주노동자들과 건설노동자들은 새 봄까지 고스란히 외로운 싸움에 바쳐야했다. 영화 상영은 지쳐있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선물이었다. 사회당 당원인 김보라(서강대)양은 후배들과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는 “메이데이 교양을 위해 비디오를 찾다가 이곳에 오게 됐다”며 “노동자들 중에서도 더욱 소외 받는 이들의 현실을 정확히 알고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제 막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철의 노동자’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간이 스크린에는 점점 푸른빛이 선명하게 떠올라왔다.

감독이기보다는 영화활동가로, 동지로 불리고 싶은 사람들. 김미례 영화활동가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건설현장에서 생긴 일’은 건설노조의 소위 ‘노가다’라고 불리는 근무 조건을 개선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다.

“건설노조가 천막을 치면, 이주노동자들마저 내쫓겠다는 명동성당 측 이야기에 마음이 무겁다…” 영화는 다소 우울하게 시작했다. 파업이 세 군데에서 동시에 이뤄지자, 잘 곳이 많아 좋다는 건설노조 박대규 위원장의 자조 섞인 농담이 영화 속에 그대로 묻어 나왔다. 투쟁을 하던 노조원들이 폭력, 협박 등의 죄목으로 수배 당하고 남은 이들은 거리로 내몰리는 지금의 건설 현장은 하루 평균 여덟 명의 노동자가 죽을 정도로 무방비 상태다.
건설노조 문귀용 조합원은 “가슴이 아프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냐”며 담담한 듯 말했지만 바로 옆의 여성이 “그렇게 많이 우시더니…”라고 말하자 머쓱하게 웃고 만다.

막간을 이용해 박정숙 영화활동가가 직접 바닥에 엎드려 음향과 영상 등을 조절한다. 영화 ‘소금’은 철도 여성 노동자들의 고충, 특히 여성의 고유 권리이기도 한 모성이 침해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박 영화활동가는 “철도 여성 노동자 열명 중 여섯명이 유산을 경험하고 있다”며 소외된 사람들 간의 연대를 강조했다.

철도 노동자들은 24시간 교대 근무로 하루 온종일 쉬지 못하고 일한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몸이 아파도 보건 휴가조차 제대로 쓸 수 없다. 임신을 하더라도 대부분이 일할 수 없을 때까지 근무를 계속하며 심지어는 일하다 양수가 터져 아이를 낳기도 한다. 철도 현장 특유의 소음과 흔들리는 열차는 유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런 사실을 여성부에 진정했던 노조의 한 여성 간부는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철도 여성 노동자는 아이들을 놀이방이나 가족에게 맡긴다. 어머니와 아이가 만나는 장면. 이제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작은 얼굴로 엄마 품을 파고들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힘들었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영화인 ‘노동자다 아니다’는 지난 3월, 스위스 프리부르그 국제영화제에서 김미례 영화활동가에게 다큐멘터리 상을 안겨준 수작이다. 레미콘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낡은 레미콘 한 대를 분양 받고 정규직 노동자에서 개인사업자로 신분을 강제전환 당했다. 이는 곧 노동조합을 결성해 교섭활동을 할 수 없다는 의미로, 각종 노동기본권과 사회적 보호장치의 적용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아침에 세수하고 나와서 집에 가면 씻고 잘 텐데 작업장에 화장실이 왜 필요하냐며 화장실, 세면장 하나 만들어 주지 않는” 회사에 항의조차 할 수 없는 레미콘 노동자들의 현실. 관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공허하고 슬픈 울림이 허공을 맴돌았다.

영화가 끝나자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이내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작은 스크린 앞에 모여 웃고 울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열한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주노동자 하심씨는 “철도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은 정말 답답하고 가슴 아프다”며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농성을 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수이기 때문에, 약자이기 때문에 서로의 처지에 더욱 공감하고 강한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투쟁의 장기화와 패배의 기로에 놓여있는 이주노동자와 건설노동자들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아직 영화의 여운에 젖어있는 관객들의 눈시울에 십자가의 붉은 빛이 내려앉는다.‘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라는 한 작가의 기도와 같이, 그 붉은 빛 속에 성령이 깃들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