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 개선과 실질적 대책마련 시급해

기자명 이상헌 기자 (goots@skku.edu)

지난 달 27일 울산지법 형사1부(재판장:고규정 부장판사)는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인 이 모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 모씨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후 울산 여성회, 울산 여성의 전화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지난달 29일에 발표한 「장애소녀 상습성폭행 50대에 “무죄”선고한 울산지법을 규탄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13세 소녀가 관계를 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미성년자를 5년 간 성폭행한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재판부의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여성단체의 문제지적
장애여성의 인권문제는 이전부터 제기돼 온 문제로 지난 94년 이후 발생한 △최미선 피살사건 △곽은미 실종사건 △오미선 타살사건 등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많은 사건들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여성단체들의 비판이 거센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각종 여성단체들은 △전국 16개 시도의 여성장애인전문상담소 설치 △사회 전반적인 소수자 인권인식의 배양 △여성장애인 인권향상을 위한 정책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여성단체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만 늘고있어, 당국의 미온적 대처가 인권을 침해당하는 여성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장명숙 소장은“정부가 여성장애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며 “남성들의 왜곡된 여성관과 가부장 문화의 대물림이 장애인여성 성폭력사건에 대한 관점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의 불합리성
현재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사건의 수사나 판결은 장애여성에 대한 전문적 인식이 부족한 △경찰 △검찰 △법원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에서 발간한 「여성장애인 성폭력의 특성과 대책마련」이라는 자료에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있다. 그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가 된 이후 그들은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 피해 후유증에 대한 배상을 받고자 해도 법률지식의 부족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을 위한 법적 지원은 성폭력 상담소들이 연계하고 있는 소수의 변호사들에 의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피해자들의 법적 지원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울산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을 판결한 고규정 부장판사의 판결문을 보면 장애여성의 고충을 알 수 있다. 고 판사는 “미성년자 또는 심신 미약자를 위계나 위력으로 간음 또는 추행할 경우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할 수 있지만 이는 친고죄에 해당되고 피의자와 피해자가 합의해 관계를 맺었다고 보이므로 무죄를 선고 한다”고 했다. 친고죄란 피해자가 직접 신고해야 범죄가 성립되는 것으로 성폭력의 경우 일반 여성에게 해당되는 법이다. 장애인에게 행해지는 성폭력은 비 친고죄로 제3자가 신고해도 죄가 성립되는 것임에도 불구, 재판부에서 친고죄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는 앞으로 장애여성들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는데 있어 그들의 위치를 불리하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장애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김효진 씨는 “여성이라는 조건만으로도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구조에서 장애여성의 삶은 더욱 힘겹다”고 이중고를 토로했다. 이어 김 씨는 “하지만 현실을 피하는 것 보다 자기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유일한 길”이라며 장애여성들에게 자기 결정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회의 편견과 신체적 장애만으로도 삶이 버거운 그들에게 우리는 당연히 보장받아야할 인권조차 존중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서는 사회나 장애인이 우선시 되는 사회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받는 것이 아닌 배려할 수 있는 성숙한 세상을 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