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장애인연합 성폭력상담소 신희원 상담원을 만나

기자명 이경미 기자 (icechoux@skku.edu)

■사회적으로 호평을 받았던 영화 ‘오아시스’가 여성 장애인들에게는 또 한번의 사회적 폭력을 가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우선 성폭력을 당한 공주가 종두에게 전화 연락을 하는 설정 자체가 상식 밖의 일이다. 여성은 성폭력을 당하고도 가해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남성 중심적 시각과, 여성 장애인은 남성의 폭력에 의해서 성에 눈뜬다는 비장애인 중심의 사고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후반부에도 경관이 공주를 가리키며 종두에게 “저런 아이에게 어떻게 성욕을 느끼느냐”는 요지의 발언을 하는데, 이는 여성 장애인을 무성적인 존재로 인식했기에 가능한 말이다. 영화는 여성 장애인의 현실적 위치를 잘 반영하고 있지만 성폭력으로 출발한 공주와 종두의 관계를 남녀의 사랑으로 미화시킨 것은 그 여파가 클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여성 장애인들이 겪는 사회적 폭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남녀 차별적 문화를 가진 우리 사회에서는 똑같은 장애인이라도 남성 장애인은 업어서 학교에 데려다 주는 반면 여성 장애인은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듯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면 직업 선택의 폭 역시 좁아질 수밖에 없고,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므로 이성을 만날 기회도 드물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 장애인들을 강간 뿐 아니라 언어폭력, 학대, 방임 등 일상적 폭력에 노출시킨다. 또한 영화 오아시스와 같이 미디어에서도 폭력이 드러날 수 있고, 장애인 이동권, 생활 시설에 대한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도 사회적 폭력의 범주에 들어간다.

■여성 장애인들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떻다고 보는가.
여성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많은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있는 여성 장애인을 도와주고자 휠체어를 미는 경우가 있는데, 사전 양해가 없다면 이는 매우 무례한 일이다. 장애인들에게 휠체어란 신체의 일부와도 같기 때문이다. 또 남성들의 경우 여성 장애인들을 안아 올려 이동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 장애인들은 그런 방법이 휠체어를 미는 것보다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여성 장애인들은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낀다. 시각 장애인의 흰 지팡이를 빼앗고 팔짱을 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돕고자 한다면 먼저 어떻게 도와주는 것이 좋은지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법적·제도적 이해는 어떤가.
여성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전문 상담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사건이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경찰 수사에서부터 여성 장애인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낮아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는다. 정신지체 장애 여성들의 경우 숫자나 시간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경찰들은 몇 번, 언제와 같은 형식적 수치에 치중해 피해자들을 다그친다. 여성 장애인들은 피해 상황을 일관되게 서술하므로 그것이 중요한 증거로 인정받아야 한다. 사건 수사부터 법 집행까지 모든 과정이 남성 중심적인 사고의 틀에서 이뤄지므로 이러한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

■사건 해결에 악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법 조항이 있다면.
현재 여성단체들은 성폭력특별법 8조 개정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조항은 피해자가 항거 불능의 상태인지를 판단하게 돼 있는데, 실제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장애유형에 대한 고려가 없어 가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쉽게 말해 정신지체 여성에게는 “신체적 결함이 없는데 왜 가해자를 밀어내지 않았느냐”, 지체장애 여성에게는 “정신이 또렷한데 왜 싫다고 말하지 않았느냐”는 식이다. 장애 자체가 항거불능의 상태를 입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성폭력 특별법도 장애 유형별로 세분화된 접근이 가능하도록 개정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