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가현 편집장 (dreamer7@skkuw.com)

지난달 25일, 작은 돼지 한 마리가 화두에 올랐다. 대구 북구 대현동에서 이슬람사원 건축을 둘러싸고 지속되던 갈등 탓이다. 이슬람사원의 건립을 막고자 하는 의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의 교리가 이용된 것이다.

이 충격적인 모습은 단지 이번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2021년 2월에 공사 중지 행정명령이 내려진 이후, 대구에 위치한 이슬람사원 건축 부지는 줄곧 법적 공방의 무대였다. 이슬람사원을 건립하고자 하는 신자들과 이를 막고자 하는 주민들 사이의 갈등은 지난해 9월에 이르러 공사를 막지 말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면서 더욱 격양됐다. 이슬람사원 건립반대비상대책위는 공사장 앞에 돼지머리를 가져가 시위했다. 이 역시 이슬람교의 교리를 이용한 것으로, 반대비대위는 날이 풀려 돼지머리가 부패하기 시작하자 이를 막기 위해 업소용 냉장고를 구매하기도 했다. 일부 주민은 공사 부지에 기름을 뿌려 과태료 처분을 받거나 돼지고기를 가져와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건립을 두고 공방이 이어져 온 세월만큼 해법을 둘러싼 논의도 계속됐다. 일대의 이슬람교도 대부분이 유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해 구와 대학 단위에서 해법이 등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며, 실제로 경북대 부지 내 이슬람사원 건립에 대한 방책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타 종교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기각됐다. 명료한 타협점을 찾지 못한 이슬람사원 건립은 원색적인 비난과 폭력적인 반대 속에서 벌써 몇 해째 언론을 들뜨게 했다 가라앉히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 폭력의 양상은 낯설지 않다. 돼지머리를 전시하는 행위와 작은 돼지를 입양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지난해 5월, 우리 학교 에브리타임에서는 비건 학식 시범 운영과 관련한 불만이 조롱 투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채식주의자들 앞에서 ‘나는 육식주의자’라 이야기하며 웃던 사람들의 모습은 놀라울 것 없이 흔한 일상 중 하나였다. 의견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조롱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제 뜻을 관철하거나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드러나는 공격성과 표출되는 폭력은 부끄럽게도 우리 사회의 일면이다. 오늘날을 ‘혐오사회’라 부르는 이유다.

어느 순간부터 개인의 불가해한 영역은 마땅히 공격해도 좋을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모양이다. 이념이 생존의 수단이자 전쟁의 도구였던 시절은 진작에 끝이 났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좌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빨갱이는 죽여야 한다’는 당시의 야만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좁디좁은 한반도 땅을 출신으로, 인종으로, 종교로, 지향으로 나누고 잘라 자신이 속하지 않은 곳을 향해 휘두르는 이 폭력들은 왜 멈추지 않을까. 왜 어떤 갈등은 필연적이고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것처럼 보일까. 왜 그 순간에 우리는 아득해지고 영영 환영받지 못할 존재가 되어버릴까.

어쩌면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양보하고 배려해달라는 말은 너무나 피상적이어서 누구의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폭력의 근원이자 이 총자루 없는 21세기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이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원히 불가해 속에서 헤매더라도 우리는 기꺼이 이해를 도전해야 한다. 타인을 조롱하고 상처입히는 일은 나의 승리가 아니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나의 패배가 아니기에. 혐오하고 혐오스러운 사회에서, 분명 우리의 이해는 더 다정해질 필요가 있다.

김가현 편집장
김가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