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가희 (gahee@skkuw.com)

1930년대부터 이발의 대중화가 이뤄져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 활용되기도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머리카락을 이발하지 않던 과거와 달리, 현대에는 이발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나아가 머리카락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발의 의미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

이발, 근대화의 상징이 되다
과거 우리나라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 여겨 머리카락을 주기적으로 자르지 않고 상투를 틀었다. 본격적인 이발이 시작된 것은 1896년(고종 32년), 전국에 단발령이 시행된 후였다. 당시 친일 내각은 짧은 머리가 위생적이고 작업에 편리하다는 명분으로 상투를 자르고 삭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본 순경이 거리에 가위를 들고 머리카락을 잘라버리는 등 단발령은 매우 강제적으로 이뤄져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단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근대화 시기에 시작됐다. 1919년 3‧1운동의 중심 세력인 임시정부요인이 ‘하이칼라 스타일’을 한 후부터다. 하이칼라 스타일은 머리카락을 밑의 가장자리만 깎고 윗부분은 기르는 서양식 남성 헤어스타일이다. 삼육보건대 뷰티융합과 안미령 교수는 “임시정부요인들은 국가의 근대적 개혁을 위해 활동하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단발을 했고, 이는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던 시대의 요구와도 맞아떨어졌다”며 “그와 함께 단발의 실용적인 역할도 간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1920년대부터 점차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하이칼라 스타일이 시작돼 1930년대에 단발의 대중화가 이뤄졌다. 여성 헤어스타일 또한 1920년대부터 단발머리가 유행해 ‘모던 걸’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할 정도였다. 1930년대에는 이화학당을 중심으로 여학생들에게 단발머리가 유행하면서 일반 여성에게까지도 유행하게 됐다. 단발령으로 시작된 이발은 점차 보편적인 것으로 자리 잡아 근대화의 상징이 됐다. 
 

하이칼라 스타일을 한 유길준의 모습. ⓒ'KBS역사저널 그날' 유튜브 캡처
하이칼라 스타일을 한 유길준의 모습. ⓒ'KBS역사저널 그날' 유튜브 캡처


개성 표출을 위한 이발
1960년대부터는 이발이 시대에 맞춰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행위로 확장됐다. 특히 1960년대 말부터 히피문화가 이에 큰 영향을 끼쳤다. 히피는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사회 통념을 거부하며 자유를 추구하던 집단으로, 자유를 상징하는 긴 머리가 특징이다. 안 교수는 “세계적으로 히피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우리나라도 청바지와 통기타, 장발의 헤어스타일이 개인의 자유라는 청년층의 정체성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1982년 두발 자율화가 시행되면서 학생들 또한 개성 있는 스타일을 추구하게 됐다. 대표적으로 앞머리를 세우는 스타일인 일명 ‘자존심 머리’와 미용 기구의 보급으로 파마 스타일 또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 시기부터 남녀 구분 없이 머리의 기장이 다양해지고 부분 염색 등 새로운 스타일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적 성장에 맞춰 자유로워진 사회적 분위기에 헤어스타일 또한 다양해지며 이발은 미용을 위한 수단으로 나아갔다.

'자존심 머리'를 한 가수 김완선. ⓒ'김완선TV' 유튜브 캡처
'자존심 머리'를 한 가수 김완선. ⓒ'김완선TV' 유튜브 캡처


2010년대부터는 헤어스타일 유행이 약 5년의 짧은 주기로 빠르게 바뀌었다. 인터넷과 SNS의 활성화가 헤어스타일의 유행을 가속화했다. 이처럼 헤어스타일은 사회적 분위기와 유행에 맞춰 변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최근 들어 시대의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자기만의 개성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요즘 사람들은 시대의 유행보다는 자기만의 감성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추구하게 됐다”며 “특히 청년층은 헤어스타일을 포함한 외모 관리에 힘쓰며 자신만의 개성을 구축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발에 사회적 의미가 더해지다
한편,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지난해 9월, 이란에서는 히잡을 쓰지 않아 경찰에 체포된 여성이 불분명한 사유로 사망하자 이를 규탄하는 히잡 시위가 발생했다. 당시 여성들은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를 외치며 머리카락을 잘라 당국에 항의를 표했다. 이는 SNS를 통해 널리 퍼졌고 이란 여성들과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동영상이 게재됐다.

이발 후 잘린 머리카락을 기부하는 것이 사회적 선행의 가치를 가지기도 한다. 기부된 머리카락은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암 환자들을 위한 가발을 제작하는 데 사용된다. 안 교수는 “이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기부를 실천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확대하는 데 일조한다”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나누는 작은 행동이 큰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발은 단발령 이래로 근대화를 상징하는 요소에서 점차 개인의 개성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발전해 왔다. 최근에는 단순한 미용적 성격에서 벗어나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