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나래 기자 (wingnara1201@skkuw.com)

인문학을 좋아하던 대학생, 당시의 청춘 담론에 도전해

변호사로서 제2의 인생, 글쓰기는 삶의 균형을 맞추는 비결

“숨 쉴 틈 없이 바쁜 일상에서도 글쓰기를 통해 삶을 차분히 살아갈 수 있다.” 작가이자 문화평론가, 그리고 변호사인 정지우의 말이다. 그는 20대부터 『청춘 인문학』과 『분노사회』 등 청춘을 대변하는 책을 출간하며 우리 사회를 날카롭게 조망했다. 30대에 들어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있다. 2021년에는 법무법인 다래에서 변호사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언제나 한계를 정하지 않는 삶을 살아온 정지우 작가를 만났다.

정지우 작가. 사진| 김나래 기자 wingnara1201@
정지우 작가. 사진| 김나래 기자 wingnara1201@

어린 시절부터 작가를 꿈꿨다고.
어릴 땐 책보다는 게임을 좋아했어요. 중학생 때 스토리가 있는 게임을 즐겁게 하고 엔딩을 봤는데 그 여운이 너무 강했어요. 이후 재밌는 게임 스토리를 내가 소설로 쓰겠다고 마음먹었죠. 학창 시절엔 게임 스토리 작가나 판타지 작가를 꿈꿨어요.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서 요즘의 웹소설 같은 글을 계속 썼죠. 소설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반응을 묻기도 했어요. 

작가라는 꿈에 한 발짝 다가가고자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대학생이 되니 판타지 소설이 조금 유치하게 느껴졌어요. 이에 본격적인 문학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소설로 많은 신춘문예에 지원했지만 매번 떨어졌죠. 굳이 소설이라는 장르로 한계를 둘 필요가 없다고 느껴 그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에세이로 쓰기 시작했어요. 


대학 시절은 어떻게 보냈는지. 
국어국문학과에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음운학이나 우리 문학에 대해 주로 배워 세련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하긴 어려웠기 때문이에요. 대신 심리나 철학 개념도 다루는 비평 수업이 흥미로워 철학과를 이중전공했죠.

작가를 꿈꿨음에도 글을 쓸 수 있는 문예 창작 동아리나 학보사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학생회나 학과 활동도 하지 않았죠. 대신 혼자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을 공부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몰두했어요. 배경지식이 얕은 상황에서 다른 친구들과 토론하기보다는 혼자 공부해 20대 후반에 지성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대학 때 독서 모임을 주도적으로 만든 적도 있어요. 기존 동아리에 들어가 그곳에 적응하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누리고 싶었어요.


2012년 데뷔작인 『청춘 인문학』은 어떻게 쓰게 됐는지.
당시 청춘 담론이 유행하고 있었어요. 경제학자 우석훈 선생님의 『88만 원 세대』나 김난도 교수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주목받았죠. 저도 그런 책들을 재밌게 읽었어요. 하지만 기성세대 교수님과 작가님의 ‘청춘은 원래 이런 거니 괜찮다’거나 ‘청춘의 장래가 암담하니 변화해야 한다’는 말씀이 모두 공감되진 않았어요. 20대로서 내가 보내는 청춘과는 괴리가 있다고 느꼈죠. 청춘을 누구보다 잘 아는 20대인 내가 청춘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청춘 인문학』을 썼어요. 우리 청춘들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이를 인문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서술했죠.

책 『청춘 인문학』 ⓒ정지우 작가 제공
책 『청춘 인문학』 ⓒ정지우 작가 제공

문화평론가라는 직업도 갖고 있는데.
20대에는 나이와 얼굴을 모두 숨기고 작가 활동을 했어요. 20대 작가의 출판에 대해 담론장이나 언론이 크게 주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20대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대등한 관계로 담론에 참여하고 싶었죠. 

그러다 2016년 CBS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하 세바시)’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처음 얼굴을 드러냈어요. ‘젊은 세대의 양성 혐오를 읽는 몇 가지 코드’를 주제로 강연했는데 세바시 제작진 측이 문화평론가라는 직업으로 저를 소개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죠. 그 이후론 상황에 따라 때론 작가, 때론 문화평론가로 소개돼요. 문화평론가라는 직업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의 연장선에 있어 두 가지를 완전히 구분할 순 없어요. 

매일경제와 아시아경제 등에 사회·문화의 폭넓은 주제를 두고 평론한 칼럼을 싣고 있어요. 매일경제의 ‘정지우의 밀레니얼 시각’ 코너에서는 최근 ‘청년세대 소비문화와 저출생의 관계’나 ‘故 이우영 작가와 저작권 분쟁’ 등을 다뤘죠. 이전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한겨레 등에 기고하기도 했어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브런치에도 매일 사회와 삶에 대해 고찰한 에세이를 게재해요. 세바시 이후로는 강연도 종종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칼럼과 책의 주된 소재인 청년 담론에 대해 가장 많이 강연했어요.


집필한 다양한 책을 소개해 준다면.
공저를 합치면 20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어요. 앞서 언급된 『청춘 인문학』과 『분노사회』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이나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등은 인문학 교양 저서예요. 『고전에 기대는 시간』에서는 『데미안』이나 『위대한 개츠비』 등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서양 고전들을 △청춘 △욕망 △운명 △타인의 카테고리로 나눠 해석했어요.

2018년 로스쿨 입학 이후로는 에세이집만 출간하고 있어요. 매일 에세이를 쓰다 보니 몇 년 후에는 카테고리별로 책 한 권 분량이 되더라고요. 사랑과 육아에 대한 내용을 모아 『너는 나의 시절이다』를, 사회와 청년세대에 대한 글을 모아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를 출간했죠. 올해 나온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에서는 제 경험을 토대로 사랑에 대한 인문학자들의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고자 했어요. 

책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정지우 작가 제공
책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정지우 작가 제공

최근 변호사가 됐다고.
작가로서의 수입은 너무 불안정해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어요. 따라서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거나 작가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30대 초반까지 글만 쓰고 살아왔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면 스스로의 한계에 머무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죠. 두렵더라도 조금이라도 젊을 때 도전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변호사뿐만 아니라 기자와 PD에도 관심 있어 로스쿨과 언론고시를 함께 준비했어요. 세 직업 모두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운용할 수 있어 끌렸죠. 2년을 준비해 로스쿨에 합격했고 이후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2021년 변호사가 된 뒤 작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지식재산분쟁 사건을 담당하기도 하고 손해배상이나 사기 등 각종 민·형사 사건도 처리하고 있어요. 변호사가 되고 제가 현실의 한가운데 들어온 사람이라는 것을 체감해요. 작가와 문화평론가로서는 현실과의 거리 두기가 가장 중요했어요. 한 걸음 물러나 세상을 바라봤죠. 하지만 변호사 일은 우리 사회의 가장 치열한 욕망과 투쟁, 절망의 현장에 뛰어드는 일이에요. 삶의 현장성을 많이 느낄 수 있지만 동시에 현실에 파묻혀 피로를 느끼기도 하죠. 하지만 변호사와 구분되는 작가로서의 세계가 따로 있으니 삶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 같아요.


변호사 일을 하는 와중에도 글을 꾸준히 작성하는 비결은.
저는 매일 밤 하루를 정리하며 글을 써요. 하루 동안 스쳐 지나갔던 생각들을 차분하게 되짚어 봐요. 글은 삶을 조절하고 나를 붙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것이기에 바쁠수록 글쓰기는 더 편해져요. 이것이 글쓰기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기도 한다고.
1년에 한두 번 SNS에서 수강생을 모집해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신청자가 100명이 넘을 때도 있어요. 진정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분들이 긴 시간 함께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 큰 의지를 지닌 열 분을 선발해 약 2개월간 수업을 진행해요. 매 수업시간마다 글을 작성해 오시면 참여자들이 서로 피드백하는 형태예요. 수강생분들 모두가 타인으로부터 진심 어린 코멘트를 받을 기회를 소중히 여기시더라고요.

메일리(maily.so)라는 플랫폼에서 여러 작가분들과 ‘세상의 모든 문화’라는 뉴스레터를 발행 중이에요. 처음엔 혼자 운영했어요. 수강생분들이 수업이 끝나도 꾸준히 글을 쓰실 지면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분들을 대상으로 필진을 모집했죠. 그것이 규모가 커져 현재 20명의 작가가 함께 문화에 대해 다양한 글을 집필하고 있고 구독자가 2,100명이 넘어요. 올해 다음카카오에서 콘텐츠 제휴 요청이 들어와 다음 메인화면에도 실리고 있어요. 이 뉴스레터를 통해 작가로 데뷔하거나 책을 출간하신 분도 많아 뿌듯하죠.

메일리 ‘세상의 모든 문화’ 뉴스레터 페이지.  ⓒ메일리 홈페이지 캡처
메일리 ‘세상의 모든 문화’ 뉴스레터 페이지.  ⓒ메일리 홈페이지 캡처
정지우 작가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의 모습. ⓒ정지우 작가 제공


글쓰기를 중요히 여기는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하기 위해 내 생각을 본인의 언어로 써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요즘 에브리타임이나 블라인드 등의 커뮤니티나 각종 SNS에 청년들이 글을 많이 쓰잖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 글을 쓰는 거예요. 하지만 조금 더 조리 있게 글을 쓴다면 더 많은 사람이 귀를 기울여 줄 것이고 내 글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죠. 글쓰기의 중요성과 글을 쓰는 팁을 담아 2021년에는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를 출간했어요. 지난해 6월 EBS 비즈니스 리뷰에서 ‘삶을 바꾸는 매일 글쓰기’를 주제로 원데이스쿨을 진행하기도 했죠.

BS 비즈니스 리뷰에서 원데이스쿨을 진행하는 정지우 작가의 모습. ⓒEBS 비즈니스 리뷰 유튜브 캡처
BS 비즈니스 리뷰에서 원데이스쿨을 진행하는 정지우 작가의 모습. ⓒEBS 비즈니스 리뷰 유튜브 캡처


작가로서 자신이 꼭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타인에게 휩쓸리지 말자는 것이에요. 글을 쓰거나 읽는 사람 모두 남에게 휩쓸리지 말고 스스로 삶을 돌아보며 사회를 바라보는 고유한 관점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어요. 저는 제 글을 통해 타인을 훈계하려는 생각은 없어요. 다만 내 생각이 일반적 견해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밝히는 거예요. 등단해야만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매일 쓰는 글이 내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그 글을 통해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는다면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목표는.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원하는 방식으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목표예요. 제게는 그것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으로 여겨져요. 같은 맥락에서 현재 글쓰기 수업이나 뉴스레터를 운영하는 것처럼 작가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겠다는 목표도 있어요. 덧붙이자면 올해는 ‘저작권법’과 ‘성장’에 관한 책이 출간될 예정이고 다른 작가분들과 함께 쓴 ‘인생’에 관한 책도 나올 예정이에요.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들마다 각자의 시간이 있어요. 남들이 앞서가고 나만 뒤처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인생에는 우월하다는 개념이 없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어찌 보면 35세에 첫 취업을 했고 20대 때 앞서간다고 느낀 사람들이 실제로 앞서가는 것도 아니에요. 서두르기보다는 각자의 시간과 각자 삶의 방식을 찾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