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서진 기자 (angela2537@naver.com)

시작은 늘 들뜬 마음만큼 어렵다. 스물한 살 여름방학의 기억은 전부 교내 청소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첫 기사 준비에 있다. 학교 행정실의, 용역업체 사무실의, 노동자 휴게실의 문을 두드렸다. 양 캠퍼스 건물을 뛰어다니며 층별 휴게실의 위치를 기록했다. 자과캠 청소노동자 권 반장님의 하루를 동행하며 수세미를 들고 계단을 닦았다. 힘든 건 몸이 아니라 어찌할 줄 모르던 내 서툶이었다. 입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아 문 앞에서마다 망설였다. 친절하지 못한 답변 하나에 반나절이 서러웠다. 그리고 발간주 목요일 새벽, 몇 시간짜리 인터뷰 텍스트와 자료들을 펼쳐놓고 나는 좌절했다. 이 이야기를 다 해내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쓰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 줄 처음 알았더랬다. 간곡한 부탁으로 얻어낸 목소리는 한 마디도 덜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매수는 턱없이 부족했고 주어진 시간은 짧았으며 나는 반 페이지짜리 기사로 신춘문예에 나갈 사람마냥 매 문장과 흐름에 집착했다. 괴롭게 써낸 첫 기사는 내 자랑인 동시에 부끄러움이었다. 백 퍼센트를 써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내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이번 호에서 나는 내 마지막 기사를 다시 시작으로 끝맺을 수 있었다. 처음 써 보는 타 부서 지면이 주어진 덕분이었다. 내게 1p가 통째로 주어지다니! 들떴다. 동시에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무엇을’과 ‘어떻게’가 전부 내 몫이었다. 철저히 ‘써야 하는’ 소재를 찾았던 지난 일 년과 달리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파고들 수 있었다. 그러나 즐거움은 마음의 무게와 비례했다. 마감을 넘긴 시간까지 머리를 쥐어뜯다 지면을 간신히 마무리했다. 데자뷰 같은 처음의 감각.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백 퍼센트의 기사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안다. 백 퍼센트의 완성도가 좋은 기사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지금의 나라서 쓸 수 있는 기사를 썼고 그랬기에 더는 처음처럼 부끄럽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줄곧 그런 기사를 써왔던 것도 같다. 이때, 이 날들에 성대신문 보도부 기자로서의 내가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을 것들. n월 n일의 최서진만이 쓸 수 있었던 글들. 그래서 비록 기사는 중립의 언어라지만(심지어 나는 기자의 자아가 난입할 틈이 도통 없는 보도부 기사들만 써 왔지만) 내게는 내 흔적들이 너무 고유하다.

이제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원고도 닫을 때가 됐다. 아마 이후로도 오래 무언가를 쓰며 살겠지. 그러나 성대신문 지면만큼 나를 좌절하게 하고 동시에 절박하게 했던 곳이 또 찾아올까 싶다. 열렬한 고백처럼 마친다. 지난 일 년간 내가 빚진 세계들에게. 세상에게 건네 본 말과 물음들에게. 어리고도 간절했던 (호암관 삼 층의) 시간들에게. 

최서진 기자 seojunch@skkuw.com
최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