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영주 기자 (0zoo@skkuw.com)

잘 써야지 다짐하고 쓰는 글은 항상 불편하고 부자연스럽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수습일기도 그렇게 될까 걱정이다. 나는 중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이는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차츰 깨닫는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도 부족하다. 초등학생 때 토론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이후로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전개하는 일도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왜 학보사에서 일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신기하다. 사실 학보사에 입사하는 것은 내 대학생활의 로망이었다. ‘대학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마냥 멋있어 보였고, 내가 쓴 기사를 학우들이 돌려 읽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어느덧 기자로 활동한 지 한 학기가 흘렀고, 이제는 수습기자가 아닌 준정기자 신분이다. 그러나 아직도 모르는 것투성이에 피드백도 제대로 못하는 초짜다. 방중활동을 하면서 벌써 7번의 기획회의를 거쳤고 거의 매일 부서회의를 진행했다. 매번 회의에 참여하면서 함께 일하는 신문사 사람들에게 느끼는 경외심이 날로 커져만 간다. 하나의 문건에서 떠오른 자신의 의견을 똑바르게 피력하고, 설득하는 사람들. 현직 기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의 높은 수준의 기사들. ‘내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고 벌써부터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우물쭈물하면서도 내 의견을 입 밖으로 꺼내놓는 연습도 해보고, 남들의 피드백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 기사다운 기사가 나오는 과정을 배운다. 뜬금없지만 내 좌우명은 ‘이 또한 지나가리’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힘들고 고되더라도 언젠가는 다 흘러갈 일이고, 내 기억 속에서 잊히기 마련이다. 내가 성대신문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깜깜한 어둠 속에 있는 것만 같을 때, 이 좌우명을 되새기며 버텨내기를 바란다.

이 수습일기는 타임캡슐이나 다름없다. 1년 후, 혹은 그 이후에 성대신문을 떠나면서 이 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어떤 감정이 떠오를까? 부디 그때의 내가 흐뭇하게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