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기자 (webmaster@skkuw.com)

“대표님, 대표님의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대표님이 그렇게 질문하시면,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다시 하셔야 합니다.”

나는 20년 넘게 국내 굴지의 유통회사에서 바이어로, 또 MD 전략팀장으로, 그리고 점장으로 일했다. 대표이사에게 중요한 보고를 하다가 답답해진 마음에 내뱉은 저 말 한마디로 회의실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내 질문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앞뒤 안 가린 내 태도가 문제인가?

우리 시대(?)는 겸손(shy)이 미덕이었다. 아니, 겸손을 강요당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새로 부임한 대표가 열변을 토했다. ‘MZ’가 대세인 이 시대에 우리는 더욱 ‘고객 중심적’인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긴, 코로나가 휩쓸고 간 이후 그나마 오프라인 매출을 끝까지 멱살잡이 한 건 그나마 ‘명품 매출’이었으니, ‘고객’을 모든 결정의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대표의 생각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다행히도(?)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오류와 한 가지의 결핍이 있다. 먼저 우리가 흔히 ‘MZ’라고 정의하는 고객들은 그들을 이름할 수 있는 어떤 이름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나는 흔히 이것을 ‘양자역학’에 비유하곤 하는데, 유명한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처럼, 우리가 그들을 ‘MZ’로 규정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MZ’이길 거부한다는 것이다. 결국 ‘MZ’들을 절대 어떤 특징이나 성질로 정의하거나 그룹핑해선 안된다. 그렇다면 유통은 어떻게 이런 고객들은 유인해야 할까? 위에서 말한 두 번째 오류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의 고객은 유통이나 마케팅이 추구해야 할 가치 그 자체였다. 하지만 옛날처럼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한다고, 주차장까지 물건을 들어다 준다고 해서 고객들이 지갑을 여는 것은 아니다. 오픈런으로 아침부터 고객들이 길게 늘어선 매장에선 고객들의 편의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바야흐로 고객을 바라보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고객이 우리를 바라보게 해야 한다. 이 시대의 쿨한 브랜드는 고객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다. 고객 스스로가 그들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대다 아예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것도 의도적이지 않게 말이다. 이것을 요즘 말로 ‘찐(authentic)’이라고 한다.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중략)…난 한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돼! 추앙해요!”

작년에 ⌜나의 해방일지⌟를 재미없게(?) 보다가, “쾅!”하고 머리를 얻어맞은 순간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결핍이라고 했던 한가지는 바로 ‘재미(fun)’다.

이제 스무 살이 된 우리집 큰 아이는 한 때 카세트 테이프를 수집했다. 그걸로 음악을 들어본 적도, 사용해 본 적도 없을 텐데,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꼭 카세트 테이프로 소장했다.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이 바로 ‘재밌잖아!’였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근데 MZ 고객을 붙잡아야 한다며 국내 굴지의 유통 기업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직도 ‘고객중심’이라고? 헐…무슨 말이 필요한가? 재미(fun)도 없고 감동(authentic)도 없다.

지난 학기 처음으로 강의를 시작하며 마주한 나의 첫 제자들은 험난했던 코로나를 뚫고 살아남아 처음으로 오프라인 수업을 경험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전반적으로 ‘very shy’했다. 오프라인 수업을 했지만 온라인 수업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내 주변 꼰대들에게 이러한 실정을 토로했더니 하나같이 시대를 탓하고, 젊은 세대의 태도를 개탄했다. 실은 나도 겸손을 강요받던 우리 때와는 다르게, ‘shy하다는 게 뭐예요?’하는 당돌한(?) 시대적 정신 쯤을 기대했었나 보다.

그런데 그들의 shy를 마주하다 보니, 이게 좀 설렜다. 뭐라고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들의  복잡 미묘한 ‘shy한 기운’이 새로운 시대에 날 추앙하게 만들 것만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들이 대면에서 보인 shy한 태도와는 달리 그들이 보내는 메세지나 이메일, 그리고 그들이 관심 있는 분야에 있어 럭비공 처럼 돌변하는 ‘똘끼’ 같은 것들은 굉장히 energetic 했다.

그러다 귀에 꽂힌 게 뉴진스의 신곡 ⌜Super Shy⌟다. 난 그들을 단지 ‘very shy’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super shy’하다고 노래하더라. 

“…You don’t even know my name, Do ya? 누구보다도 I’m super shy super shy but wait a minute while I make you mine…”

아…이런 감성을 우리 같은 기성세대는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추앙할 뿐이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학교 캠퍼스엔 또다시 이런 super shy들이 넘쳐나겠지. 그래,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일들 투성이인 세상이지만, 된다고 생각하면 또 재미난 일투성이다. 

나는 이번 학기 우리 학생들이 이런 거 한번 해보면 재미(fun)있을 것 같다. 세상이 우리를 추앙하게 만드는 것. 

“날 추앙해요!” 

재미있지 않나?

류현석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교수
류현석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