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송선교 편집장 (songsong@skkuw.com)

중학교 시절, 반 대항 축구대회의 주최자로서 심판을 봤던 적이 있다. 사뭇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대회였다.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되기 직전, 공이 골라인에 걸친 지점쯤에서 골키퍼에게 잡혔다. 골인지 노 골인지를 따지며 양 팀에서 어필했다. 필자가 머뭇거리자 돌연 선수들끼리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더웠지만 이마에 흐른 것은 분명 식은땀이었으리라. 아수라장이 된 운동장에서 외쳤다. “노 골! 공이 라인을 넘었는지 확실하지 않을 때는 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합니다!” 대회를 시작하며 만든 한 쪽짜리 규정집의 항목 중 하나였다.

중학생 수준에서 만든 규정집이 얼마나 대단했겠느냐마는, 해당 항목은 그날 학생들의 싸움을 멈췄고 심판인 필자의 식은땀을 닦아줬다. 심판은 비단 반칙을 가려내기 위함뿐만 아니라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던 날이었다. 더불어, 규정집과 같은 시스템은 선수뿐만 아니라 심판까지 보호할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한편 지난 방학 동안은 학교에서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렸다. 학부모의 갑질에 서울서이초의 한 교사는 자살했다. 이를 계기로 2021년 의정부호원초에서 두 교사가 자살한 사건, 한 특수교사가 유명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직위 해제된 사건 등이 세상 위로 드러났다. 필자는 이 사건들에서 중학교 시절의 하루를 떠올린다. 이들을 보호해줄 심판은 대체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교사가 직위 해제를 당하거나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학교 관리자와 교육청 등의 심판은 적절한 대처를 보이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동복지법과 학생인권조례 등의 시스템은 교사를 향한 갑질을 오히려 더욱 부추기고 있기나 마찬가지였다. 심판과 시스템이 고장 난 것이다.

최근에는 인사캠과 가장 가까운 학교 중 하나인 서울과학고에서 영재 소년 백강현 군이 자퇴했다. 자퇴 과정에서 백 군의 학부모는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며 선생님들이 학교폭력위원회 소집이나 경찰 고발을 만류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중등영재교육의 최전선으로 여겨지는 이 학교에서도 심판과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던 걸까.

그렇다면 다시 의문을 가져보자. 심판과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그들은 누가 심판하는가? 필자는 가히 언론과 당신을 답하겠다. 직위 해제된 교사는 복직됐으며 두 호원초 교사의 사망 사건의 진상은 뒤늦게나마 조사되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과 서울과학고는 백 군과 관련한 학교폭력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심판과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언론이 사건들을 앞다퉈 비판하고 시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낸 덕분이다. 본지 또한 이번 호의 10면에서 특수교사를 보호하기에 역부족인 현재의 시스템을 지적했고 관련 법안의 개정을 요구한 교사들의 목소리를 담기도 했다.

그래서 고장 난 심판과 시스템이 다시 돌아온 것이냐 묻는다면, 글쎄. 이제 그들을 향한 심판은 우리의 몫이다.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는 들리지 않을 때까지, 변화를 면면히 지켜보며 당신의 시선과 목소리로 심판하길 바란다. 성대신문도 대학언론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며 함께할 것을 약속하겠다.

송선교 편집장
송선교 편집장